 조귀순(포천시 가산면 출생, 수필가)
“엄마! 머리커트하고 올게요. 상가에 새로 생긴 미용실이 잘 깎는다네요?”
고등학생인 아들 녀석이 새로 생긴 미용실로 머리를 자르러 간다고 했다. 남자들이 이발소가 아닌 미용실을 이용하는 게 어디 어제 오늘 일인가.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갔었던 이발관이 떠올랐다. 말미에는 이발관이 두개 있었다. 상점이라야 약방이 대각선으로 두개 있었고 식료잡화를 파는 상회가 두세 개, 그 뒤쪽으로 소아마비아저씨의 한약방이 있었고 바로 옆에는 쌀집과 사료 집이 있었다. 이발관 하나는 약방을 지나 지소 쪽 가까이에 있었고, 내가 가던 곳은 바로 합승버스정유소 옆이었다.
당시 여자아이들의 머리는 단발머리라 하여 앞머리는 눈썹 위에서 한일자(-)자로 똑 바르게 자르고, 옆머리는 귀 볼이 보일락 말락 한 길이로 뱅 돌려 깎았다. 초등학교 졸업 앨범을 보면 가수 김상희씨의 머리모양이 많이 있다.
머리는 대부분 엄마들이 깎아 주었다. 여름에는 웃옷을 벗겨놓고 마당이나 봉당에서, 겨울에는 햇살고운 날 툇마루에 앉혀놓고 커다란 보자기를 머리만 보이게 뒤집어 씌웠다.
“외로 돌려봐. 옳지. ”
처음엔 말을 잘 들었다. 그러나 목둘레를 아무리 야물게 여미고 옷핀을 꽂아도 스며 든 머리카락이 따가워 몸을 비틀기 시작한다. 여름에는 땀이 나서 머리카락이 들러붙어 따갑고, 겨울에는 차가운 가위가 살갗에 닿는 게 싫어서 자꾸만 고개를 이리저리 뺐다.
“고개를 빤드시 해야 칭아가 안 나지.”
어머니가 두 손에 힘을 주며 고개를 반드시 곧추세워 놓아도 금방 한쪽으로 기울었다. 똑바로 못하겠느냐고 꿀밤을 한대 맞으면 그만 깎겠다고 발버둥친다. 쥐가 뜯어먹은 것 같아 보기 흉하다고 하여야 잠시 가만히 있다가도 다시 움직거려 가위 끝에 귀 끝을 집히고 말았다. 참는 것에 질력이 났으니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며 훌쩍인다. 서러울 것도 없는데 닭똥 같은 눈물에 머리카락이 엉켜 붙어 참 볼만도 했다.
그런 가운데에서 나는 가끔 이발관에 갔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이따금씩 아버지가 데리고 가셨다. 이발관 아저씨는 단발머리가 아닌 상고머리로 깎아 주었다. 머리를 다 다듬고 나면 연탄난로 연통에 비누거품이 묻은 솔을 두어 번 문질러, 부글부글한 거품을 뒤통수 밑머리에 바른다. 면도날을 낡은 가죽 띠에 쓱쓱 문지르고는, 고개를 한껏 가로 젖히고 삭삭 소리가 나게 비누거품을 밀어냈다. 면도를 해고 난로위에 있던 양동이의 따뜻한 물로 머리도 감겨 주었다. 두개의 거울로 뒷머리를 보면 파르르하니 깔끔했다. 뒤통수가 툭 나와 너무 잘 어울린다니 기분도 좋았다.
특히 설 명절에는 빠뜨리지 않고 꼭 갔었는데 그때는 이발관 안에 긴 의자에 아버지와 함께 온 사내아이들이 쭉 앉아 기다렸다. 동네에서 야매로 이발을 해주는 아저씨에게 늘 빡빡 밀고 다녔던 노마도 그때만은 더벅머리를 다듬으려 왔으니 그야말로 대목이었던 것이다.
그때 일을 떠올리자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딸만 가진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목욕탕 가는 게 그렇게 부럽다더니, 혹 아버지께서도 그런 마음이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 비록 아들은 아니지만 막내딸인 나를 데리고 가셨던 것일까. 아니, 남편도 혹시 그런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얼른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는 아이를 불렀다.
“얘, 내일 아빠랑 함께 이발소에 한번 가지 않으련?”
아이는 생뚱맞게 웬 이발소냐는 듯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다 그냥 미용실로 가겠다고 나갔다.
지금은 육십 중반을 훌쩍 넘기셨을 그 아저씨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실지…. 돌아오는 설날에는 친정 가는 길에 한번 둘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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