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의 열녀함양박씨전(烈女咸陽朴氏傳)에는 이러한 내용이 들어있다. 형제는 이름난 벼슬아치였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남의 벼슬길을 막는 문제를 두고 논의했다. 곁에서 말없이 듣던 어머니가 그 연유를 묻는다. 아들이 대답하기를 “그 선대에 과부가 있었는데 바깥 말이 많았습니다.” 어머니가 묻는다. “규방의 일을 어찌 알았느냐?” 아들이 대답한다. “풍문이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정색을 하며 꾸짖는다. “바람은 소리만 있지 형체가 없다. 눈으로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다. 허공에서 일어나 능히 만물을 떠서 움직이게 한다. 어찌 형상 없는 일로 떠서 움직이는 가운데서 남을 논하느냐? 하물며 너희도 과부의 자식이 아니냐?” 형제는 그만 참담한 마음에 할 말을 잃고서 의론을 거두고 말았다.
근거도 없는 비방과 유언비어가 사람 잡는 세상이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니 찾아도 자취가 없고, 살펴도 형체가 없다. 근거도 없는 얘기도 한 번, 두 번 듣다보면 정말 그런가 싶다. 세 번 들으면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랴” 하며 사실로 굳어진다.
한서(漢書) 중산정왕전(中山靖王傳)에는 이러한 이야기도 나온다. “뭇 사람의 입김에 산도 떠내려가고, 모기 소리가 모여 우뢰가 된다. 패거리를 지으니 범을 때려잡고, 열 사내가 작당하자 쇠공이가 휜다.” 이 말은 중산정왕이 자신을 참소하는 말에 대하여 천자 앞에서 해명하는 말이다.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했으면 이랬을까. 조선 선조임금 때의 임재(林悌)는 오죽하였으면 사직하는 상소를 올리며 “모기 떼 소리가 우뢰와 같고 쌓인 비방이 뻐를 다 녹인다”고 한탄 했겠는가?
현대에도 소인배들의 시기와 모함으로 나라를 일으킬 만한 유능한 인물들이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아깝게 사라짐이 얼마나 많은가. 인터넷 비방 글을 견디지 못하고 유명 연예인들이 아까운 젊은 나이에 자결을 하겠는가.
공자님께서는 “조금씩 젖어드는 헐뜯음과 살에 와 닿는 참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아야 현명하다고 할 만하다”고 말씀 하셨다. 건강한 사회에는 뜬 비방이 발을 못 붙인다. 정직한 사람을 시기, 모함, 견제함이 판을 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는 증거이다. 악한 자들이 남을 나쁜 길로 내몰면서 저만 바르다고 떠든다.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패에 목숨을 건 판이라 후세의 시비나 세상의 평가쯤은 안중에도 없다.
당장에 이기면 된다는 수작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런데 그 전술이 번번이 먹혀들어가는 세상이니 여기에 무슨 현명함과 원대함이 있겠는가? 역사를 살펴보면, 춘추시대 오나라의 만고의 충신 오자서도 간신 백비의 모함에 의해 죽었고, 충신오자서가 없는 오나라는 망했고, 어리석은 오왕부차도 죽어야했고, 결국 시기와 모함에 능했던 간신 백비도 역사에 더러운 이름만 남기고 참혹하게 죽어야했다, 결국 악한 자들도 악한 끝을 보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