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이해조의 ‘자유종’과 시민 대종

홍을표 이해조문학회 회장

이해조와 <자유종>

동농 이해조(李海朝)는 포천이 낳은 개화기의 가장 뛰어난 선각자 중의 한 사람이다. 19세 때 이미 과거제도의 관문인 초시(初試)에 급제하였으며 25세라는 약관에‘大東斯文會’라는 한시를 즐기던 유학자들의 모임에 동호인으로 참가할 정도의 실력을 지녔다.

그의 한학에 대한 조예는 부친 이철용과 당대 최고의 학자이며 온건 개화파의 거두였던 운양 김윤식(金允植)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김윤식은 이해조의 신교육 사상과 개화 사상, 그리고 애국계몽 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해조는 계몽 운동의 대중성을 높이기 위하여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빙공착영(憑空捉影), 즉 허구를 빙자하여 사실의 그림자를 포착한다는 그의 독창적인 소설관은 허무맹랑하고 구름잡는 이야기는 철저히 배격하고 오로지  당대의 중요한 현실 문제를 다루어 그 모순을 드러내어 대중을 계몽하고자 했다. 1903년 무렵부터 제국신문, 황성신문, 매일신보 등의 문화부 기자, 편집부장을 역임하며, 신문의 지면을 통하여 자신의 작품을 연재했으니, 그의 작품이 세상에 나와 수많은 대중들이 그것을 탐독하게끔 하여 봉건적 굴레를 벗어나 근대적 각성을 하는 데 지대한 영향 을 미치기 시작한 지 이미 100년이 넘었다.

그의 조부 이재만은 노론에 속하고 대원군의 측근으로 일하다 1883년 민씨 정권에 의해 처형되었다. 부친 이철용은 헌종대(代)에 참봉과 진사로서 대원군에게서 포천 신평리 일대의 땅을 받아 포천에 화야의숙(華野義塾)이라는 사립학교를 설립했다. 뒤에 이해조는 이 학교를 청성제일학교(靑城第一學校)로 개명하여 운영했다. 이 학교는 당시로는 상당히 우수한 학교였으나 몇 해 뒤에는 경영난과 공립학교만 설치한다는 방침에 의거 폐교하기에 이르렀지만 이 학교가 오늘날 포천 근대 교육의 시초이다.

이 때를 배경으로 썼던 소설이 바로 그의 대표작 <자유종>이다. 1908년 2월에는 양기탁, 이준, 노익형, 주시경과 함께 ‘광무사’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제국신문사 내에 임시사무소를 내어 국채 1300만환을 보상하기 위한 의연금 모금과 단연운동 즉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했다.

이와 같이 이해조는 높은 정치적 식견을 바탕으로, 사회 활동과 더불어 1927년 5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끊임없이 정열적인 작품 활동을 했다. 놀라운 의욕과 작가적 사명을 가지고 무려 40여 편이나 되는 신소설을 발표했다. 그런데도 그의 이러한 활동과 업적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은 그에 관한 자료 부실과 숱한 아호와 필명으로 인한 혼란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그가 살아온 당대의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한 우리들 후인들의 잘못이다. 이제라도 늦게나마 금년 초에 ‘이해조문학회’를 창립하게 된 것은 그 잘못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이다.

<자유종>에는 근대 국가의 주인이 될 국민의 계몽과 각성을 강조한 작품이다. 여기에는 신교육의 중요성과 남녀평등 사상이 바탕이 되어 있고, 국사 교육, 우리말 교육 등 교육 사상을 피력했다. 이 작품에 나타난 자유는 근대적인 개인의 각성이기도 하고 낡은 봉건적 굴레로부터의 자유이기도 하다. 남존여비 사상, 적서차별의 굴레, 지역차별, 신분차별의 낡은 폐습으로부터 자유이기도 하다. 허례허식화한 유교적 제사 의식에서 종교와 교육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자유이기도 하다.

중국에 의존하는 중화사상으로부터 자주독립을 추구하는 자유이고, 한문의 압도적 지배로부터 점차로 한글을 통한 보통 교육으로 나아가는 자유이기도 하다. 이해조는 이러한 자유로 각성된 국민들에 의해 일제의 침탈로부터 국가의 자주권을 회복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의 쟁취라고 생각했다.  <자유종>은 바로 이러한 애국 계몽적 문학 활동의 상징이다.

시민 대종과 자유종

포천시에서는 시 승격을 기념하는 사업으로서 시민 대종을 만든다고 한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시민 대종 건립에 대하여 여러 가지 논란이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시 승격은 경축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고 그 의미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역사 이래 최초로 군민(郡民)에서 시민(市民)으로 개화된 입장에 서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시민들이 주도하는 형식으로 시민 대종을 만든다면, 자발적인 시민들의 참여와 성원이 필수적일 것이다. 새로운 시의 모습을 시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뜻이 그 안에 포함된 것으로 생각한다.

이해조문학회도 이러한 자발적인 시민의 일부로서 포천이 낳은 선각자인 이해조의 업적과 뜻을 포천시민과 함께 기리고, 포천을 진정한 문화적 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하여 시 승격을 기념하는 시민 대종 건립 사업에 이해조의 근대 정신을 결합시킬 필요성을 절감한다. 그래서 시민 대종의 이름을 이해조의 작품인 <자유종>으로 할 것을 아래의 근거로써 제안한다.

1. 이해조는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활동한 포천 출신의 선각자로서 당대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으나 이제 시로 승격되어 새로운 시대적 흐름을 함께 해야 할 이 시점에서 올바르게 평가하여 그 분의 시대 개혁 사상과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발전시켜야 할 책임이 우리 포천 시민에게 있다.

2. 시로 승격되는 것을 기념하여 시민 대종을 꼭 만들어야 한다면, 이해조의 대표작인 <자유종>을 그 이름으로 하는 것이 그 분을 기념하여 그 뜻을 역사에 길이길이 남기는 일이 되며 자유로운 시민 정신을 표상하는 그 작품의 의미를 포천시 승격을 통해 새롭게 살려내어 교육 문화 도시로서의 포천의 정체성(正體性)을 정립하는 일이 될 것이다.

3. 최근 국문학계에서도 신소설의 개척자로서 이해조를 새롭게 평가하고 있다. 이해조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그분의 훌륭한 업적을 재평가하여 국문학사에서 그의 위치를 바로잡고 있다. 이러한 때에 포천은 시로 승격되었고, 포천 시민들은 이제 자부심을 가지고 이해조의 선구자적인 업적을 기리고 발전시켜야 한다. 그것을 보다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도 시민 대종의 이름을 ‘자유종’이라고 명칭하면 범시민적 사업이 될 수 있다.

4. ‘이해조’는 많은 문화적 콘텐츠와 미래를 향한 비전을 담고 있다. 이해조는 우리 전통의 판소리 사설을 소설화하는 재창조를 했다. 우리도 그와 같이 그의 문학이 함유하고 있는 소설, 판소리적 요소, 연극적 요소 그리고 교육과 철학 사상 등을 통해 포천을 문화 도시로 발전시킬 문화 코드를 발굴하는 재창조를 할 수 있다. ‘자유종’ 브랜드를 잘 살리면 문화 관광 산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많은 콘텐츠가 나올 수 있다. 남한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땅인 포천에서 ‘자유종’이 울리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광복 60년을 맞이하는 금년에 이제 분단의 벽을 뚫고 새 시대의 태동을 알리는 신호가 아닐까? 군사시설보호구역, 상수도보호구역, 군인들의 이동갈비와 막걸리 등등의 이미지에서, 이제 ‘자유종’이 울리면 과거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새로운 희망의 소리, 철책의 굴레를 뛰어넘으려는 새로운 도약의 이미지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최근 욘사마 붐이 일고 춘천이 국제적인 명소로 되고 있는데 ‘자유종’은 이보다 더 큰 문화 콘텐츠이다.

자유종이 울린다

포천은 예로부터 산자수려할 뿐만 아니라 많은 인물을 배출한 곳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많은 위인과 학자들이 있다. 충절과 학문이 있는 선비의 고장이다. 면암 최익현 선생은 이해조의 스승인 운양 김윤식 선생을 “왜적을 불러들여 나라와 임금을 내맡긴 역적이므로 능지처참해야 한다”고 극언한 바 있다. 위정척사(衛正斥邪)와 개화(開化), 이 둘 중 어느 하나만 옳고 어느 하나는 그르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각자가 애국의 방법이 달랐을 뿐이다. 보수(保守)와 혁신(革新)으로 편가를 이유도 없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의 일이다. 이제 포천은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는 길목에 서 있다. 그 미래는 자유 정신으로 각성된 시민들이 만들어 간다. 자유로운 시민 정신은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하고 남을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대화하고 협력하지만 자기의 개성을 잃지 않는 화이부동(和而不同)과, 극단을 배격하고 상충을 통합하려는 중용(中庸)의 지혜가 있다면, 포천의 역사에서 이 양대 인맥과 사상은 새로운 창조의 큰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자유종’이 울린다. 그것은 천년의 한을 울리는 해원(解寃)의 소리이며, 역사의 새 장을 알리는 개벽(開闢)의 소리이며, 상극을 아우르는 화해(和解)의 소리이며, 화이부동하는 조화(調和)의 울림이며, 문화 교육 도시 포천의 신새벽을 알리는 개명(開明)의 울음이며, 남북 분단의 고통으로부터 해방(解放)되는 소리이며, 시민들의 참여와 협력의 합창(合唱) 소리이며, 희망찬 미래를 여는 창조(創造)의 아우성이다. ‘자유종’이 울린다. 그것도 해방 60돐을 맞아, 을사보호조약 100주년을 맞아, 1000여 년의 군(郡)을 벗어나 시(市)로 거듭나고자 하는 이 시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