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는 크고 작은 많은 광장들이 있다. 고대 로마시대에 큰 신전이나 공공건축물 앞쪽에는 ‘포럼(forum)’이라 불리우는 광장이 항상 붙어 다닌다. 수많은 신전과 주요 공공건축물이 많았던 바 로마시대 로마에는 수많은 포럼이 있었던 것이다.
그 전통이 현대에도 이어져 내려오면서 기독교화 된 로마에 고대 로마시대에 있던 신전을 대신하여 주로 교회가 주 건물이 되면서 그 앞에는 크고 작은 광장이 형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광장을 손꼽자면 종교적 색채를 띤 대규모의 광장이 성 베드로 광장이고 많은 거리의 화가와 공연예술가들의 무대가 되고 있는 대표적 문화광장이 나보나 광장이다.
나보나 광장은 고대 로마시대에 전차경기장으로 사용했던 곳이라 좁고 길게 뻗은 형태로 되어 있다. 이 광장에는 3개의 바로크 양식의 분수가 있는데 넵튠 분수, 모로 분수, 피우미 분수(Fontana Dei Fiumi)가 주변 건물들이 함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이 가운데 중앙에 있는 피우미 분수는 앞서 소개를 했던 성 베드로 성당 앞의 열주 광장을 디자인한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이집트에서 탈취해 온 높은 오벨리스크를 중앙에 두고 있는 이 분수는 지구의 4대강을 상징하고 있는데 이는 갠지스강, 나일강, 도나우강, 라플라타강을 표현한 것이다. 이 분수의 앞에는 이 광장의 주 건물인 성 아그네스 교회당이 자리잡고 있다. 이 교회당은 바로크 시대에 베르니니와 당대의 최고의 건축가 경합을 벌였던 보로미니의 작품이다. 교회당의 전면이 구불구불한 곡선을 특징으로 하는 바로크 건축물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이 건물 앞에 위치한 베르니니의 분수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대의 최고의 예술가임을 자청했던 베르니니는 자신의 라이벌인 보로미니가 이 교회를 건립하게 되자 그를 시기하는 마음에서 자신이 디자인한 4대강 분수 중 교회당 쪽으로는 물이 나오지 않게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각 강을 지키는 거인들 중 교회당 앞쪽으로 놓여 있는 라플라타강을 지키는 거인의 형상을 보면 교회당 위쪽을 바라보며 놀라서 한 손으로 허공을 떠받치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이 거인은 베르니니 자신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는 허접한 보로미니가 교회를 설계했으니 건물이 온전히 서 있지 못하고 곧 무너질 터이니 그렇게 되면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자신이 무너지는 건물을 떠받쳐서 대중을 구하겠노라고 희화화했다니 베르니니의 보로미니에 대한 질투심이 잘 드러난 모습이라 하겠다.
아그네스 교회당을 비롯한 주변의 건물들과 분수, 그리고 주변의 많은 노천 카페로 둘러싸인 광장은 수많은 거리의 화가들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작품판매와 초상화 그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어 성 베드로 광장에서의 엄숙함과는 대조적이다. 중간 중간 넓은 공간에서는 다양한 거리 공연도 끊임없이 이어져 로마의 대표적 문화광장의 모습을 만끽할 수 있다. 비어있는 빈 공간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담을 수 있는지 나보나 광장에서 그 귀한 교훈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