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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 칼럼] 청렴과 강직으로 군왕을 가르친 학자

- 성재 허전 선생 이야기(2)
이희용 기자 / heeyeong1@hanmail.net입력 : 2013년 06월 09일
↑↑ 이희용 칼럼니스트, 포천신문 자문위원
ⓒ (주)포천신문사
성재 허전은 1864년 3월 김해에 부임하자마자 고을에 백성들을 따뜻하게 보살폈으며, 안으로 관리들을 결속하고 법에 따라 엄격하게 다스는 내용의 회유문(回諭文)을 반포하여 목민관으로서 올바른 자세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80세 이상 노인들을 위로하여 쌀과 고기를 내려서 민심을 달랬으며 향약을 새롭게 하여 향교 벽에 게시하고, 약장(約長)을 뽑아 매월 조문을 읽고 상벌을 내리게 하여 심한 자는 관에서 다스리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김해에 모셔져 있는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릉을 배알하고, 관내에 있는 서원을 참배함으로써 유학자로서의 자세도 보여 주었으며, 유학진흥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서 이 지역의 유생들을 모아 향교에서 ‘향음주례’를 시행하고, 김해향교 유생들에게 옛날의 법도를 회복하는데 힘쓰고자 하는 회유문을 내리니, 인근의 많은 유생들이 모여 들었는데, 이를 계기로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명륜당에 모여 강학을 했다고 한다,

이듬해인 1865년 봄에는 자신이 거처인 공여당(公餘堂)을 개방하여 인근의 학자들을 맞이했는데, 이때 그에게 와서 배우기를 청하는 자가 1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렇게 봄에는 문도들과 더불어 ‘향음주례’를 행하고, 가을에는 남명 조식선생이 자주 찾았다는 함허정(涵虛亭)에 모여 강학을 했다고 한다.

1866년 2월에는 신산서원(新山書院)의 원장이 되어 남명선생이 학문을 수양했던 산해정을 찾아 문도들과 강학을 했고, 4월에는 어려운 가운데에 휴가를 얻어서 경상도내 여러 사당과 서원을 방문했는데, 이르는 곳 마다 50~60명의 문도들이 모인 강학은 성황을 이루었고, 5월에는 함안의 합강정(合江亭)에 모여, 유람을 하고 그때 지은 시를 모아 ‘용화동주록(龍華同舟錄)’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그는 김해부사로 재직하면서 아전들이 민생을 해칠까 염려하여 추호도 사사로운 마음을 가지지 못하도록 경계를 했고, 백성들에게도 바른 도리를 마음을 두고 본업에 열심히 노력하여 옳지 못한 일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였으니, 이런 치적이 조정에 보고되어 임금이 친히 글을 내려 칭송을 하고 상으로 겉옷과 속옷 한 벌을 내렸다고 한다.

이때 임금이 성재에게 내린 글에는 “경이 김해부에 부임함으로부터 선비들은 스승을 얻은 자랑이 있었고, 이제 성적을 보니 백성들은 유임을 간절히 원하니 진실로 옛날의 어진 수령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김해의 선비들과 백성들은 성재의 유임을 간절히 바랬지만, 짧기만 했던 3년의 임기를 채우자 곧바로 부호군(副護軍)에 영전되어 서울로 올라가게 되고, 이때에 수백 명의 김해 백성들과 유생들은 아쉬움과 고마운 마음으로 전송을 했고, 인연을 맺은 일부 제자들은 스승을 따라 서울로 올라가기도 했다

이렇게 허전은 김해부사 3년 동안 추우나 더우나 한결 같이 하여 백성들을 만날 때는 반드시 도포와 갓을 단정히 하고 사무를 보았으며, 김해를 떠나 있으면서도 1878년 대호군의 직책으로 가락국 수로왕릉에 전호(殿號)를 내리고 능관(陵官)을 둘 것을 상소하니, 조정에서 이를 받아들여 침전(寢殿)을 개축하여 숭선전(崇善殿)이라고 사액하고 능참봉을 두어 김씨와 허씨들이 번갈아 소임을 맡게 했다.

90세 되던 해인 1886년 6월에 병을 앓아 9월에는 병이 더욱 깊어지니 자신의 상례를 간략하게 하도록 하고 자신이 지은 ‘사의(士儀)’와 ‘가의(家儀)’를 규범으로 하여 후손들을 가르칠 것을 당부하기도 하였고, 이해 9월 23일 강직한 성품으로 선정을 베푼 진정한 선비는 구순으로 일생을 마치니, 부음을 들은 임금은 조회를 그치고 시장을 철시토록 명하여 그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1888년에는 문헌(文憲)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포천이 낳은 참 선비 성재 허전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은 학덕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제자들은 산청에서 성재문집을 간행했으며, 1927년 김해에서는 취정재(就正齋)를 건립하고 영정각을 세워 김해 백성들에게 끼친 공을 지금까지 기리고 있다. 문집으로 원집(原集) 33권, 속집(續集) 6권, 부록(附錄) 6권 등 45권, 단행본으로는 사의(士儀), 사의절요(士儀節要), 철명편(哲命篇)등 9권이 전한다.

성재 허전이 90평생의 생에서 김해부사로 재직한 3년은 짧은 순간에 불과하지만, 이 기간 동안 그의 문하에 출입했던 많은 선비들이 이후 강우유맥의 주도적 세력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은 그의 영향이 얼마나 지대했는가를 알 수 있지만, 그의 학덕을 기리고자 제자들이 건립했다는 산청에 이택당과 김해 취정재를 찾는 발길이 뜸하다고 하니, 허전의 고향인 포천에 후손들과 지자체 그리고 문화원 상호간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지난 2008년 4월 2일 성재 허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이택당(麗澤堂) 재실 내에 영정을 모신 물산영당(勿山影堂)의 당임(堂任)들이 "선생의 고향인 경기도에 영정을 모셔 많은 이들에게 기호(畿湖) 남인학자로서 유림의 종장(宗匠)을 지낸 선생의 큰 뜻과 공덕을 널리 알리고자 했다"며 허전(許傳) 선생의 영정을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가 지역박물관을 준비하지 않고 행사나 이벤트 등으로 예산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그분이 태어나고 자라난 고향인 포천에 영정을 모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남는 것은, 너무도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연연한 것은 아닌지, 무엇이 진정한 애향인가를 올바로 인식하여 객관적인 지역학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이 희 용
대진대학교 박사과정원우회장, 한국스카우트경기북부연맹 이사, 전경기도예총부회장, 포천시수능시험장유치위원장, 포천신문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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