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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 칼럼] 포천의 큰선비 허전(許傳) 선생


이희용 기자 / heeyeong1@hanmail.net입력 : 2013년 05월 30일
↑↑ 이희용 칼럼니스트, 포천신문 자문위원
ⓒ (주)포천신문사
예로부터 우리 고을에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라를 지키신 충신과 청백리를 비롯해서, 효행으로 본이 되었던 효자와 열녀를 비롯한 많은 인걸들이, 오랜 세월 속에서 이 땅의 역사 속에 깊이 자리하여 지금도 그 고귀한 숨결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조선 후기 성호 이익(李瀷)을 이어 기호(畿湖)의 남인학자로서 당대유림의 종장(宗匠)이 되어 영남 퇴계학파를 계승했던, 18세기 우리나라 유림을 대표하는 중요한 인물인 성재(性齋) 허전(許傳)이 우리고장 포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사승이 달라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업적을 선양하는 기록이나 움직임이 거의 없어 그분의 행적을 돌아보고 지금도 포천에 살고 있는 양천허씨 문중의 분발을 독려한다.

허전(許傳)은 1797년(정조 21)에 포천현 본동에서 출생하여 1886년(고종 23)에 향년 90세로 생을 마친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양천(陽川)이고 자는 이로(以老)이며 호는 성재(性齋)이다. 흔치 않은 일이지만 경기도 출신의 학자가 영남학파(嶺男學派)의 계보를 잇는 거유가 되었다는 것은 이례적이면서도 의미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허전은 타고난 바탕이 영특하였으며 어려서 가학을 이어 받아 먼저 효경을 읽었다. 관례가 끝나자 아우와 함께 하려 황덕길(黃德吉)의 문하에 종유하여 학문을 익혔으며, 성호 이익의 제자인 순암 안정복으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그는 39세 때 증광시 문과에 급제를 해 승문원(承文院)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의 벼슬이 내려졌고, 44세 때는 성품이 강직한 성재를 조정에선 달갑게 생각하지 않아 외직인 기린도 찰방으로 나가게 되었는데, 마침 그 지역에 흉년이 들고 호랑이 출몰도 잦아 백성들이 모두 그물을 쳐놓고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성재가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사나운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하니 호랑이로 인한 해로움만 생각할 것이 못된다.”하고 그물을 걷게 했더니, 호환이 없어졌고 이렇게 백성들을 잘 다스렸기에 안찰사 조두순이 성적을 최고로 매기면서 말하기를 “지금 이 세상에 기린이 없다고 들었는데 기린이 여기에 있었구나.”라고 칭찬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런 선정(善政)에도 불구하고 허전은 이듬해인 45세 때 벼슬을 잃게 되는데, 그 이유가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이 관할역을 지나가다가 무리한 요구를 하자 이를 거절하였고 이 일로 사신이 돌아오는 길에 무고를 하여 파직이 되기도 했다.

얼마 후 다시 등용되어 성균관 전적, 사헌부 정언, 이조좌랑, 사헌부 지평 등의 벼슬을 역임하고 52세 때 다시 함평현감으로 부임하는데, 함평은 백성의 풍속이 투박하여 정사를 베풀 수 없을 정도였으므로 “나는 이제부터 형률로써 백성들을 다스리지 않겠다.”하고 형벌기구를 모두 없애 버리고, 송사가 있으면 효도 공경 친목의 도리로써 깨우쳤으며, 경내의 학도들을 뽑아 향교에 모아놓고 경전, 사서(史書)등을 익히게도 했다.

뿐만 아니라 허전은 누구보다도 예법에 조예가 깊었다. 경연에 나가 임금에게 예전(禮典) 편수를 주청하면서, “무릇 예란 것은 존비귀천(尊卑貴賤)의 등급을 높이고 내리는 질서 정연한 것으로 어지럽힐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는 하늘의 이치이며 인간의 행동 법칙입니다. 나라가 있고서는 하루라도 없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순임금이 급히 예법 책을 편찬한 까닭입니다. … 지금 사치가 넘치는 기풍이 성하니 사치의 버릇이 넘치면 나라가 어찌 되겠으며 백성이 어찌 백성답겠습니까. 예전을 편수하여 풍속을 이끄시면 옛날 선왕들과 치적이 비슷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임금의 바른 도리를 강론하면서 학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리고 64세 때에는 예서(禮書)인 사의(士儀)를 완성했다. 고금의 예설을 널리 구하여 경전의 요지에 맞도록 편찬한 책으로, 조선 오백년 예학의 결산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으며, 풍부한 학문적 소양으로 임금을 위해 경연에서 많은 강론을 펼쳤으며 여러 저서들을 편찬하기도 했다. 당시 정승인 조두순은 “왕을 도울만한 인재”라고 칭찬을 하기도 했다.

성재 허전이 68세 되던 해 2월에 우부승지로 되어 경연에서 ‘효경’을 강론한 것을 끝으로 그해 3월 김해도호부사를 제수 받아 임지로 부임하게 되는데, 이것이 영남의 선비들과 인연이 되어 영남 강우학파의 큰 획을 긋는 계기가 되었다.

대체로 영남학파의 학풍을 형성에 있어 서울에서 바라볼 때 낙동강(洛東江)의 우측(右側)에 위치해 있는 오늘의 경남지역과 경북 서남부의 일부지역을 통칭하는 경상우도 지역을 학술적 용어로 강우(江右)라고 지칭하며, 남명(南冥) 조식(曺植)과 그의 문도들이 경의(敬義)의 학풍을 학문적인 흐름을 주도 하고 있으며, 경상좌도는 주로 퇴계 이황의 문도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성향은 인조반정(仁朝反政)이후 북인(北人)이 몰락하면서 이 지역은 역대 정권에서 철저히 소외되었지만, 그 학풍은 여전히 잠복되어 흐르다가, 조선말기 1862(철종 13)년 임술년에 진주에서 일어나 삼남(三南) 및 전국으로 번져 갔던 농민 항쟁인 임술민란(壬戌民亂)을 전후로 하여 수많은 학자들이 흥기하면서 일대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한편 영남학통의 두 종장(宗匠)인 퇴계선생과 남명선생의 학문을 아울러 학문을 대성한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학풍은, 인조(仁祖) 이후 북인(北人)의 몰락으로 학자의 진출이 막히면서 조선후기 200년 동안 잠복되어 흐르다가, 같은 학문계통을 경기지역인 근기지방(近畿地方)으로 전파한 미수(眉수) 허목(許穆)의 학통을 계승한 성재 허전은 한강 정구와 남명 조식의 학문의 맥을 이어가는 지역적 동질성을 회복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포천이 낳은 큰 선비 성재 허전은, 남명조식과 퇴계 이황-한강 정구-미수 허목-성호 이익-순암 안정복-하려 황덕길로 이어지는 기호남인의 학맥을 정통으로 계승한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다음호에 계속)

이 희 용
대진대학교 박사과정원우회장, 한국스카우트경기북부연맹 이사, 전경기도예총부회장, 포천시수능시험장유치위원장, 포천신문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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