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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출 에세이=61] 재미있는 우리말 ‘풋낯’


김형출 기자 / mjmc00@hanmail.net입력 : 2013년 05월 27일
 
↑↑ 김형출 시인, 수필가
ⓒ (주)포천신문사 
우리말 사전을 펼치면 정겨운 말들이 참 많다. 우리가 우리말을 받아드릴 준비가 부족해서 낯설고 서먹서먹하지만 언젠가는 우리말이 우리 곁에서 사랑받을 날이 있으리라. 나도 요즈음 우리말 사전을 펼쳐놓고 낯선 낱말을 익히고 있다. 익숙하지 못해 금방 잊어버리지만, 기억에 남아 있는 말도 더러 있다. 어릴 적부터 사용했던 말들이다.

달무리, 안날, 난데, 논틀길, 남새, 마디다, 북데기, 군불, 삭신, 생목, 늦깎이, 낫낫하다, 여의다, 등 어떤 말은 우리 고장 사투리인 줄 알았다. 개인 생각인데 현 시점에서 우리말로만 된 문학창작물을 선보인다면 독자의 반응은 별로다. 우리말로 된 시(詩) 한 편 감상하는 데도 이해를 잘못해 우리말 사전을 펼쳐놓고 해석하고 뜻을 찾아내려면 머리가 지근거린다. 이런 복잡한 걸 누가 읽겠어, 하지만, 우선 누군가가 먼저 시도하고 관심을 가질 때 우리말 붐은 일어나리라고 본다.

알고 있다는 것, 안다는 것, 잘 안다는 것, 모르고 있다는 것, 모른다는 것, 전혀 모른다는 것, 그 사이에 쭈뼛쭈뼛 은근슬쩍 그냥 지나치고 마는 풋낯, 지나치다 보면 미안해서 다시 돌아보게 되나 보다.

사람과의 관계는 묘해서 서로서로 ‘사이’로 인연처럼 맺고 있지, 가장 멀고도 가까운 사이인 ‘가시버시’는 살면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한마음 한뜻으로 꿋꿋하게 헤쳐나가야 한다. 이런 말은 오늘날 유효기간이 지난 호랑이 담배 피던 옛이야기는 아닐 테지만, 유행 지난 것은 맞는 것 같다. 검은 머리가 파 뿌리 될 때까지 사랑하겠노라 서약한 그 남자 여자일까? 돌아서면 남남 되는 것을 검은 머리가 파 뿌리 될 때까지 어떻게 붙어 사러! 현대는 실용주의 세상이잖아!

우리나라 민법의 혈연관계는 무척 세분되어 있지. 나를 중심으로 배우자, 직계 혈족과 그 배우자, 8촌 이내의 방계 혈족과 그 배우자, 그리고 4촌 이내의 인족(姻族)을 일컬어 친족이라 한다. 친족은 아니지만 이러저러하게 연분이 닿는 먼 친척 벌 대는 관계를 ‘결찌’라 하지.

사돈은 혼인한 자녀의 그 배우자의 부모를 말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그렇지만 형제자매 등도 보통 사돈이라고 부르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는 ‘곁사돈’이 된다. 곁사돈은 방계(傍系) 간에 있는 사돈, 방계란 형제자매나 4촌, 6촌 등의 관계에 있는 같은 항렬의 친족을 말한다. 겹혼인으로 맺어진 사돈 관계를 ‘겹사돈’이라 하지.

‘너나들이’는 서로 ‘너’, ‘나’ 하고 터놓고 허물없이 지내는 가까운 사이를 말한다. 우리말은 높임말이 다양하게 발달하여 있어 웬만한 사이가 아니면 함부로 반말하지 않는다. 서로 반말을 하여도 불쾌한 생각이 들지 않고 허물없는 막역한 사이다. 이런 친구 한둘만 곁에 있어도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지.

‘뜨게부부’ 참 재미있는 우리말 같다.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남녀를 뜻한다. 오늘날 젊은이들에 유행한다는 ‘동거부부’를 말한다. 한 번 살아보고 마음에 들면 결혼한다는 ‘예비부부’와는 차원이 다르다. 예비부부는 결혼을 전제하에 동거하는 부부이다. 지금은 동거는 하데,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 부부를 ‘흉내 낸 부부’가 바로 뜨게부부이다. ‘뜨게’ 라는 말은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는데 ‘옷감을 잘라 본을 뜨다, 의 뜨다가 그런 뜻이라 이해하면 된다. ‘뜨게’는 ‘뜨다’에서 갈래 친 말로 쓰였다.

‘삼이웃’은 내가 좋아하는 우리말이다. 그래서 내 블로그 이름을 ‘삼이웃’으로 짓기도 했었다. 이쪽저쪽의 가까운 이웃이다. 삼이웃은 이웃사촌이라는 말과 상통한다. 삼(三)자는 가장 안정적인 숫자에 속한다. 이곳저곳에 치우침 없이 균형을 유지하는 안정적인 숫자가 삼(三)인 것이다. 특정적인 이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이웃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이외에도 ‘자치동갑’이란 우리말이 있다. 나이차이가 조금 나지만 서로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를 말한다. 주변에 이런 사람들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너무 친해서 부럽기까지 한다. 나도 이런 경험이 있다. 우리 사관학교 동기생은 나이가 한두 살에서부터 서너 살 차이가 난다. 현역이나 재수 등으로 늦게 입대한 사람도 있고 고등학교 갓 졸업하고 바로 들어온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호칭 문제로 처음에는 조금 곤란해지기도 하지만, 그냥 동기생이니까 이해하고 친구처럼 대하게 된다. 자치동갑은 ‘띠동갑’하고는 다르다. 띠동갑은 같은 띠의 해에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동창생과 동기생은 서로 자치동갑인 셈이다.

너나들이 삼이웃이, 남들이, 결찌, 뜨게부부, 자치동갑을 알면 얼마나 알아, 참 정겹고 소담스러운 우리말이다. 우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겨우 낯을 아는 정도의 사이인 ‘풋낯’(서로 겨우 낯을 아는 정도의 사이)에 대해 감정이 서먹하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정말 복잡하다. 아는 사람 때문에 부담스러울 때가 있고 모르는 사람 때문에 속 시원할 때가 있을 것이다. 모르면서 안면이 좀 있는 사이일 때 마주치면 인사하기도 안 하기도 좀 쑥스럽고 그렇다고 모르는 척하기도 그렇고 아무튼 이러한 관계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생기고 슬쩍 눈인사만 하고 그냥 지나치는 관계이다.

같은 동 아파트 통로에서 엘리베이터를 탄 중간층 아주머니를 풋낯이라 생각했고 인사를 했는데 아무 말도 없이 멀뚱멀뚱 천장만 쳐다볼 때 민망해서 혼났다. 그다음에도 그 아주머니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었는데 내게 눈인사를 먼저 건네줘서 기분이 참 좋았다.*일부 내용은 『우리말 풀이사전』 서해문집(2010)을 참조

김형출 / 시인, 수필가, 포천신문 시민기자
김형출 기자 / mjmc00@hanmail.net입력 : 2013년 0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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