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는 정권을 잡고난 후 대통령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다. 전통적으로 청와대와 여당은 방미성과를 기반으로 해서 통치를 위한 추진력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박 대통령은 빼어난 한복 맵시와 영어실력을 보여주면서 미국 정계와 국내외 한인들과 미국 동포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미 하원에서 막힘없는 영어로 연설하면서 여러 차례 박수를 받는 모습은 그런대로 보기에도 좋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을 보좌해야할 윤창중의 성추행사건이 알려지면서 어렵게 창출해낸 그녀의 방미성과는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는 비극적 상황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대통령이 하원연설을 위해 바쁘게 준비하는 동안 대변인은 나이 어린 인턴과의 술자리에 골몰했다. 그가 여자인턴과 늦도록 술을 마신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데, 새벽에 거의 알몸상태로 다시 불러 성추행을 했다는 것이다. 화가 난 인턴과 룸메이트는 미국경찰에 성추행을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교민사회는 그의 부도덕한 행위로 대해 같은 민족으로서 수치심으로 얼굴을 들 수 없을 뿐 아니라, 국가의 이미지 손상은 수조에 달한다고 보도된 바 있다.
이러한 비극이 올 수 있다는 불길한 전조는 청와대 전대변인 윤창중의 임명당시부터 잉태되고 있었다. 그는 야권인사에 대해서 막말을 해대어 언어폭력의 상징으로 지적되어왔다. 그는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에 대해 “종북세력들이 점령군 완장을 차고 몰려가 서울시 산하 단체의 모든 요직을 꿰차고 '김정일 장군님 만세' 함성을 터트릴 것”이라고 극우적 발언을 했을 뿐 아니라 “문재인 후보가 대선에서 당선되면 종북시대의 거대한 서막을 알리며 종북세력의 창궐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색깔론을 주창하고, 안철수 후보에게는 “젖비린내난다”고 비아냥대었다. 그야말로 근거 없는 언어폭력을 야당인사에게 퍼부음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대변인 자리를 꿰찼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그의 대변인 임명을 줄기차게 반대했었다. 박 대통령은 그에 대한 인사를 “전문성과 그 외 여러가지 때문에”라는 모호한 배경설명만으로 임명을 강행하였다. 수많은 국민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서 대통령은 귀를 기울어야 했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막말이나 좋지 않은 평판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윤 전대변인을 청와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내세운 것인가에 대해서 국민들은 의아하기만 하다. 그렇게 신임하던 자가 대통령이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 최대의 배신행위를 할 수 있을까. 이것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사권자인 박 대통령에게 책임의 화살이 날아가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윤창중류의 인사들이 내세우는 보수주의는 철저한 도덕의식에 근거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미국의 경우 보수주의는 청교도주의를 바탕으로 철저한 도덕과 윤리, 전통을 전면에 내세워 건전한 가정을 지키기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보수인사들이나 사이트들이 윤창중의 성추행에 대한 피해자의 진술에 대해서 음모가능성을 운운하고, “가슴도 아니고 엉덩이 갖고 뭘 그래?”라든지 “미국은 한국의 문화와 다르다”는 식으로 윤창중을 감싸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참으로 몰지각하고 무식한 소치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어서 그의 잘못을 벌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민에게 약속을 해도 성이 차지 않는데 말이다.
특히 범법자인 윤창중이 “미시 유에스에이(Missy USA)의 친노종북 세력에게 당한 듯하다”라든지 “경범죄로 신고 된 사안인데, 성폭행을 해서 그 사람을 목 졸라 죽이기라도 한 분위기”라는 식의 옹호는 결코 실추된 국가적 이미지나 평판을 회복할 수 없다. 또한 청와대 책임자가 미국에서 윤창중을 한국으로 빼돌렸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면 관련된 인사들은 책임지고 옷을 벗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책임이 국가를 이끌어야할 대통령에게 모든 화살이 돌아가지 않겠는가. 국민들은 경제적 위기에 직면한 박근혜정권이 성공하기 바라고 있으며 이번 사태가 지혜롭게 잘 해결되기 바라는 것이다.
성추행은 정상적인 남녀간의 사랑을 모르는 자들이 벌이는 정신적 장애이며, 육체적 폭력이다. 필자는 사회의 지도자들이 국민들의 모범이 되지 못하고 추태를 보이지 않기 위해서 진정한 사랑을 배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랑을 모르는 남자”란 시를 적어보았다.
그 남자 참 외로웠던가 보다 그 바쁜 와중에도 딸 같은 인턴 불러서 술 따르라고 하다니 아직도 그 남자 가족은 아비는 갑이고 딸은 을인가 외로운 그 남자 얼마나 쓸쓸했으면 새벽이 다가오는데 사랑을 달라고 졸랐을까
그 남자 참 그리웠던가 보다 밤늦도록 술시중 들게 하다 보낸 딸 같은 아이 새벽이 오도록 못 잊어 의관정제도 안한 채 침실로 불러 민망한 꼴 보이다니 황망하게 돌아서는 젊은 처자 불같이 화가 난지라 아비 같은 그 남자의 외로움도 모르고 허락 없이 성추행을 했다고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은 사랑을 모르는 그 남자에게 참 사랑을 알게 하려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