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내 곳곳 현수막에 걸려있는 “포천탄생 600년 사업”은 기존에 포천군지에 연혁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하려다가, 포천군지에 1018년 전부터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나서야 허둥지둥 자료를 검토하고 위원회를 소집했지만, 내용을 보완하는 과정에서도 반론을 철저하게 배제하여 공정성이 결여되었다는 의견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포천군지』를 비롯해서 『조선왕조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기록된 바로는, 고려 때부터 포천이라는 지명을 사용한 근거가 제시되어 철저한 자료 검증이 필요했지만, 이 과정에서 연혁위원회는 고려시대에 포천이라는 지명을 사용했던 기록들을 애써 외면하면서, 친분이 있는 학자를 참여시켜 기존의 입장을 변론하기도 했다.
그런데 필자가 연구한 자료에 의하면, 역사적 진실과 신뢰가 높고 기록하는 사관의 독립성과 비밀이 보장되었던,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1권 총서 89번째 기사를 비롯한 태종이전 기록에 이미 “포천”이라는 지명을 사용한 기록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 성종 때 노사신·양성지·강희맹 등에 명하여 완성한 『동국여지승람』을, 성종 17년에 증산ㆍ수정하고 연산군 5년에 개수를 거쳐 중종(中宗) 25년에 증보된 “『신증동국여지승람』 6권 경기 114쪽”에도 고려 공양왕 2년에도 포천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데 2012년 10월 포천시 연혁 검토위원회는 조선후기 『문헌고략』을 근거로 ‘포천’ 지명사용 시점을 조선 태종 13년(1413)으로 확정해버렸다. 하지만 지명확정의 근거사료라고 밝힌『문헌고략』이라는 자료는, 서문이나 발문이 없어 편자와 간행년도 그리고 간행처도 알 수 없어 그 신뢰도에 상당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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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기존에 포천군지의 지명사용 시점이 확정되기도 전에, 시청 홈페이지에 태종 13년에 처음으로 포천이라는 지명을 사용했다는 내용을 계속 게시한 것과, 2차 연혁검토위원회에서 “1984년 포천군지에 수록된 내용은 당시 군지를 집필한 필자가 추측하여 쓴 것으로 보이며, … 간행시 오류로 판단된다.”는 자료를 배포한 것은 경솔한 조치였다.
또한 연혁위원회 회의 자료를 기안한 시 담당자가 군지편찬당시 집필자가 추측으로 기록했다고 하는 1984년 당시 군지 연혁을 집필근거에는, 고려 초 포천으로 고쳤다는 내용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사업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자료를 확인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집필자의 실수로 치부하고 밀어붙인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었다. <참고사진1, 1984년 당시 군지 연혁 집필근거>
그러므로 서문이나 발문이 없는『문헌고략』이라는 자료로, 이미 고려 때부터 포천이라는 지명을 사용했다는 기록인 『조선왕조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포천군읍지』에 나오는 근거를 덮어버리기에는 그 타당성과 객관성, 그리고 보편성도 부족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제2차 포천시 연혁검토위원회 때 지자체 담당자가 제시한 자료에도 “1765년, 영조 41년 간행한 『여지도서』 경기 포천현 건치연혁 …고려 초기에 포천(抱川)으로 고치고, 성종14년에 단련사를 두었다가, 목종 8년에 파하였다.” 는 기록과,
“광무(고종) 3년 1899년 간행한 『포천군읍지』 건치연혁, …고려 초기에 포천(抱川)으로 고치고, 성종 14년에 단련사를 두었다가, 목종8년에 파하였다.… ” 는 기록을 제시하여, 이미 고려 때부터 포천이라는 지명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600년 사업을 강행하려고 했다는 의구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참고사진2, 제2차 포천시 연혁검토위원회자료 >
그런데 행정안전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의 국가DB사업으로 구축된 한국학중앙연구원 왕실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에는, 『문헌고략』이라는 책은 서문, 발문이 없어 편자, 간행연도 미상이고, 그나마 간행년도만 알려진 책도 정조말경 1794년 이후 필사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연혁검토위에서 포천지명 사용시점으로 확정한 『문헌고략』은 영조 33년 1757~1765년에 편찬한 『여지도서』보다 30여년이나 뒤에 간행되어, 사료적 가치나 간행 년대에서도 지명을 확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기록자 미상, 편집자 미상의 부실한 근거자료로 가지고, 그나마 정리되어 있는 기록을 지우고, 임의로 기록을 바꾸는 것은 두고두고 문제가 될 수 있으니, 공인된 다른 명확한 근거자료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포천탄생 1018년”으로 해야 옳을 것이다.
그리고 “太宗十三年 改 爲縣監(태종십삼년 개 위현감)” ‘현감’으로 고쳤다는 내용을 근거로 현승격 600년을 기념한다는 것도,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는 군·현의 이름은 있으나 관리가 파견되지 않은 속군과 속현이 존재하였기에, 기존에 존재하던 고을에 현감이라는 지방관을 정식으로 두었다는 기록으로, 포천현 승격 600년이라고 기념하는 것도 의미를 둘만한 내용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