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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의 세상보기] 상춘곡(賞春曲)


김성열 기자 / kims@daejin.ac.kr입력 : 2013년 05월 10일
↑↑ 김성렬 대진대 교수, 포천신문 칼럼위원장
ⓒ (주)포천신문사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더니(春來不似春) 이번 봄은 유난히 날씨가 사나웠다. 4월인데도 겨울옷을 선뜻 벗어던질 수 없었고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비가 내렸으며 심지어 눈까지 내렸다. 4월의 눈은 이제 처음 경험하는 것도 아니지만 ‘봄날씨가 너무 한다’는 푸념이 절로 나오는 날씨였다. 이런 푸념 속에는 실상 은근한 걱정도 실려 있는 것인데, 아무래도 이상기후 또는 환경의 변화가 이처럼 불측한 날씨를 불러온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그것이다.

그러나 요 며칠 전 집 앞에 있는 야산을 올랐더니 이런 걱정은 기우라는 듯이 아름다운 춘화도가 펼쳐져 있었다. 연루비색 벚꽃과 진달래, 연두빛 신록들이 어우러져 자연이 그린 아름다운 수채화가 환상마냥 봄의 대기 중에 걸려 있는 것이다. 등성이로 올라가는 오르막을 오르는데 쏟아지는 양광과 그에 흠뻑 몸을 적신 연푸른 교목들로 숲길은 환한 봄꿈이었다. 관목이나 철쭉, 싸리꽃, 금낭화들처럼 키가 작은 것은 저들대로 저마다 무리지어 연록, 분홍, 하양, 빨강색으로 선명한 교태를 뽐낸다. 눈이 취하여서인지 귀에는 이들이 내지르는 “봄이야, 봄이야. 우리들 시간이야”는 외침까지 들리는 성 싶었다.

이상기후니 어쩌니 해도 봄은 찾아온 것이다. 경제도 좋지 않다 하고 북한이 야료를 부리고 있어 일말의 불안도 있으니만큼 찾아온 계절의 반가움은 예년에 비해 더하다. 옛 선비들이 세속을 떠나 맑은 시냇가의 초가삼간에서 풍월(風月) 주인이 되어 봄을 반기고 즐기는 ‘상춘곡(賞春曲)’을 지은 심정을 이제야 조금 엿볼 수 있을 듯도 하다.

“복숭아꽃 살구꽃은 석양 중에 피어 있고, 푸른 버들 향그런 풀은 가랑비 속에 푸르구나. 칼로 새겼는지 붓으로 그렸는지 조물주의 신통한 조화 물물(物物)마다 희한쿠나”라고 노래한 불우헌(不憂軒) 정극인(1401~1481)의 가사는 고등학교 때 배운 것이지만 그의 풍류가 이제사 여실한 것은 그만큼 나의 생활이 얼마나 자연에서 멀어져 있었던 것인가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문종이 수양대군에게 몰려나자 향리로 퇴거하여 후진을 가르치며 자연과 함께 반평생을 살았던 정극인이기에 자연의 아름다움은 누구에게보다 절실했을 것이며 그 속에서 그는 자신의 호처럼 진정 근심없는 여생을 살았으리라.

공원으로 꾸며진 집앞의 자그만 동산을 거닐고서는 큰 자연에나 속해 본 것처럼 회포를 늘어놓는 것도 남부끄러운 일일까 싶다. 그러나 깊은 산맥을 몇 박 몇 일 종주해 본 적도 없고 그저 인근의 산이나 몇 시간 오르는 게 고작인 하이킹 족이라 해서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귀하지 않을 일은 없다. 그럼에도, 소설가 은희경이 그의 근작 『태연한 인생』에서, 자연이라 하지만 그 속에 속한 것들의 악착스럽고 천박스럽기조차 한 부산함보다는 차라리 도시의 건조한 우수를 더 사랑한다는 언급은 위악적이나마 날카롭다.

아닌 게 아니라 숲 속의 나무들은 태풍과 쏟아지는 비에 꺾이기를 부지기수로 하며 아름다운 꽃들도 그 몽우리를 틔울 때 산고가 없지 않았을 터이다. 산새들의 기기묘묘한 노래 소리도 사실은 생존을 위한 그들만의 경보음이고 짝을 짓기 위한 절박한 구애의 신호음이기 쉽다. 그러니 자연의 아름다움을 상찬하고 즐기는 것은 너무 일방적인 자기도취에 불과한 것이지는 않을까?

봄에서 희극이 기원하고 여름에서 낭만적 이야기가, 가을에서는 비극이, 겨울에서는 아이러니한 이야기가 비롯한다고 본 것은 신화비평가 노드롭 프라이였다. 봄은 활기차고 즐거우니 희극적 정서의 근본이고 여름은 풍성하고 활기찬 만큼 낭만적 정서의 근원이며 가을은 모든 것이 익지만 동시에 저무는 계절이니 비극의 바탕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겨울이 아이러니한 정서 또는 이야기의 바탕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겨울은 모든 것이 죽음으로 드는 계절이다. 잎은 떨어져 썩고 열매는 떨어져 땅 속에 묻히고 동물들은 동면에 든다. 사람들도 이 때 유독 운명을 달리 하는 경우가 많은 법이다. 이처럼 모든 것이 캄캄한 죽음 속에 드는 듯 하지만 썩은 잎을 거름으로 열매에서는 싹이 자라고 마른 나무는 언 땅에서나마 물기를 빨아들여 새로운 잎을 준비하는 것이니 겨울은 죽음과 삶이 동시에 교차하는 계절인 것이다.

모든 것이 죽음에 든듯하나 실은 그 속에 새로운 생명이 움트고 있으니 이야말로 아이러니라는 것이다. 봄은 그토록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재생과 신생을 맞이하는 계절이니 즐겁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매 자그만 공원에서나마 꽃과 신록을 대하고 자연을 상찬하고 즐기는 것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기도취의 오두방정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자연을 즐기기 위해서는 산을 찾는 것이 역시 제일이다. 높고 우람한 산을 찾을 필요도 없고 오히려 얕은 등성이가 이어지는 야산들을 걷는 것이 제격이다. 여럿이 무리지어서 가져온 소찬들을 내놓고 막갈리 한 잔이면 산중의 만찬이 벌어지는 산행도 좋지만 봄을 속속들이 즐기기엔 역시 혼자서 가는 조용한 산행이 제격이다. 땀방울깨나 떨군 후 믹스커피나 한 잔 타서 눈 아래 펼쳐진 숲들을 굽어보면 힐링이 따로 없다. 돈 들 일도 없고 언제라도 소박하게 즐길 수 있는 산행이 그래서 좋다.

그나저나 온갖 조리를 들어가며 봄을 상찬하고 산을 예찬하는 이런 심사는 무엇인가. 나이가 든 조짐에 다름 아니렷다?

김성렬 / 대진대 문화콘텐츠연구소장, 문예창작학과 교수, 포천신문 칼럼위원장
김성열 기자 / kims@daejin.ac.kr입력 : 2013년 0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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