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자에게 ‘너무 심한 말을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유롭게 말할 수 없거나 그럴 용기가 없다면 그 직책을 수락하거나 그 직책에 남아 있어서는 안된다. 위정자의 참모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직언(直言), 즉 바른 말을 서슴없이 해야 하는 것이다.”
럼스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의 말이다. 위정자 또한 바른 말을 들을 줄 아는 혜안을 지녀야 함은 필수 조건이라 하겠다. 어리석은 위정자에게 바른 말을 하는 것은 귀한 구슬로 날짐승을 쏘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오.
중국 역사를 통해 가장 유능했던 황제는 당(唐)태종 이세민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가 위대한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강직하고 불의와 타협을 모르는 강골한으로 바른 말과 충언을 하는 훌륭한 위징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세민이 태자시절 위징과의 첫 만남에서 서슴없이 한 첫번째 진언은 간신을 멀리하라는 것이었다.
모든 직책은 그 직책에 걸맞는 능력과 도덕성과 실력으로만 판단해야지 아첨을 잘하고 비위를 맞추기 위해 듣기 좋은 말만하는 사람 즉 간신들에게 직책을 맡기면 그 때부터 그 나라와 기관과 단체는 기울기 마련이다.
당태종이 즉위 초 한번은 모든 신하들과 조회를 마치고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화가 나서 내실로 들어오며 황후에게 말한다.
“그 촌놈을 꼭 죽여 버려야지 분통이 터져서 견딜 수가 없다”
이렇게 씩씩대며 소리치자 황후가 “누가 황제를 이토록 분노하게 만들었느냐”고 묻는다. 이에 당태종이 “위징이란 놈이 조회 때마다 나의 화를 돋우고 욕보인단 말이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황후는 아무 말 없이 물러났다가 한참 후에 화려하게 황후의 예복을 갖추고 들어와 당태종에게 큰 절을 올리며 경하한다.
당태종이 놀라서 왜 갑자기 예를 갖추고 그러느냐고 물으니, 황후가 대답하기를 “君明臣直(군명신직 : 임금이 밝으면 신하는 곧다)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위징이 곧아 황제의 노여움을 살 정도로 바른 말을 하는 것을 보니 황제폐하의 밝으심이 크게 드러나는지라 경하 드리옵니다” 하며 큰 절을 올린다. 당태종은 자신의 협소했음을 크게 뉘우치고 화를 풀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 후 어느 날 청렴하고 충직한 신하 방현령과 왕규가 관원의 과거시험을 맡고 있었는데 어사 권만기가 약점을 잡고 그 불공평함을 상소해 당태종이 조사를 명하자 위징이 이를 반대했다,
위징의 논리는 이러했다. 방현령과 왕규는 오랫동안 충직함을 보여 중요한 일을 맡긴 만큼 한두 가지의 소소한 잘못을 가지고 시비를 따진다면 대체 즉, 황제의 위엄이 손상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권만기 같은 소인배는 싸움질이나 하는 것을 강직함으로 여기고, 간교함과 교활함과 잔꾀를 지혜로 여기며, 모함하고 고자질하는 것을 충성으로 여기니 이런 자들로 인하여 여러 신하들이 조심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군신간의 믿음(信)까지 무너져서는 안될 것이라고 진언했다.
당태종은 위징의 충언에 따라 이 일을 불문에 부쳤고, 방현령과 왕규는 후에 나라에 큰 공헌을 남겼으며, 권만기는 얼마 후 간특함이 들어나 크게 죄를 입었다. 이렇게 강직하면서도 편협하지 않은 것이 위징의 큰 인물됨이었다. 그 후 당태종은 고구려 정벌에 실패하고 한쪽 눈을 잃고 참담한 모습으로 당나라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절규했다.
“위징이 있었다면 나에게 어찌 이런 참패가 있으리오.”
현재 우리나라는 남북이 치열하게 대치하고 있는데 박근혜대통령에게는 의(義)로운 사람을 구해 줄 황후도 의(義)로운 위징도 보이지 않으니 국민은 불안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위징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