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진의 연재 수필]아빠 어렸을 적에(15)

우리 4학년 교실은 동쪽 언덕 위에 있는데 세 학급만 나무로만 지은 교실입니다.

교실은 바닥은 마루로 되어 있었는데, 가끔 소나무로 켠 마루에는 옹이 자국이 있어 구멍이 동전 크기만큼 뻥 뚫린 곳이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유리구슬이나 동그란 별 딱지를 학교에 가져와 놀다 걸리면 빼앗아 그 구멍에 넣으십니다.

숙제를 해오지 않아서 청소를 하고 일채와 나는 따로 남았습니다.

교실 밖 하단에는 환풍 구멍이 있는데 언덕이라 석양에 지는 햇빛이 들어 옹이구멍으로 바라보니 딱지와 구슬, 그리고 동전과 크레용, 몽당연필이 무수히 보입니다.

“야, 우리 저기 들어가서 딱지 꺼내자!”

그것을 본 나와 일채는 환풍 구멍으로 들어가 꺼내기로 하였습니다.

유난히도 키가 작고 왜소한 나는 머리만 겨우 들어가는 환풍 구멍으로 머리를 밀어 넣은 다음 한 팔씩 밀어 넣으니 쉽게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야, 여기 구슬 무진장 많다. 앗싸아… 십 원짜리 동전두 주웠다.”

먼저 들어간 내가 즐거운 비명을 질렀습니다.

일채는 머리가 커서 들어 올 수 없을 것 같더니, 어떻게 용케도 머리를 옆으로 뉘어 디밀고 들어왔습니다.

“야, 우리 그러지 말고 여기서 주운 것은 사이좋게 똑같이 나누어 갖자.”

내가 제안하자 일채가 고개를 끄떡거렸습니다.

교실의 마루 밑은 그야말로 요지경 속입니다. 무수히 많은 먼지와 종이 속에서도 십 원짜리 동전 과 오 원짜리, 십 환짜리 동전, 오십 환짜리 지폐, 그리고 일 원짜리 지폐와 십 원짜리 지폐를 주울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교실이 생기고 교실 밑으로 들어가 아이들은 우리가 처음인가 봅니다.

“야, 우리 재수 대빵 좋다 그치?”

우리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별 딱지, 몽당연필, 크레용 도막, 종이로 까는 색연필, 연필 깎는 칼, 컴퍼스, 대나무로 만든 30cm짜리 자, 유리구슬 등의 수많은 노획물에 먼지꾸러기가 되는 것쯤은 견딜 수 있었습니다.

“야, 날이 어둡나봐! 너무 캄캄해진다. 야, 우리 여기서 나가자.”

“그래 난 일루 나갈 테니까 너는 저 구멍으로 나가.”

교실 밑바닥을 샅샅이 뒤진 우리는 밖으로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구멍 밖에 노획물을 내 놓고 나는 머리부터 빠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요.

“야, 큰일 났다. 못나가겠어?”

일채가 나오는 것이 문제입니다. 환풍 구멍은 셋이 있었는데, 먼저 들어 올 때의 구멍이 아닌 다른 구멍으로 나가려 하였던 일채는 그만 머리가 걸려 잘 나올 수가 없나 봅니다.

일채는 나가려고 아무리 노력 하였지만 그럴수록 힘만 빠져 갑니다. 급기야 일채는 엉엉 소리 내어 웁니다.

겁이 더럭 난 나는 교무실로 달려갔습니다.

“무슨 일이냐? 웬일이야?”

때 마침 담임선생님께서는 퇴근하려던 참이라시며 무슨 일이 있느냐며 먼지꾸러기가 된 내게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으셨습니다.

“일채가 교실 밑에 들어가서 못 나와요!”

“어디, 어디?”

선생님께서는 성급히 물으시며 나를 앞장 세워 따라 교실 앞으로 오셨습니다.

“일채야, 들리니?”

선생님께서는 환풍 구멍을 들여다보시며 안타깝게 부르셨습니다.

“예.”

일채는 기어들어가듯 모기 목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잠깐만 기다려라!”

선생님께서는 어디에선가 장도리 망치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나무로 짠 사각 틀을 뜯어내시고 일채를 구해 주셨습니다.

“임마, 그런데 들어가면 어떻게 해! 이제 다시는 들어가지 마라!”

선생님은 한숨을 돌리시며 우리들을 나무라셨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그 먼 하굣길을 기뻐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왔습니다.

이튿날, 그 환풍 구멍은 철망으로 폐쇄되었습니다. (계속)

김 순 진
시인, 소설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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