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禮)에 대한 『논어(論語)』에서의 설명은 과거 선왕들의 모습을 돌이켜 현재 닮아야 할 모습으로 제시하며, 예를 통한 절제하는 자세를 통하여 사회적 안정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쓰임에 대해「학이편」에서는 “유자(제자이름)가 말하길 예의 쓰임은 화(和)와 귀합(貴合)이 되니, 선왕의 도(道)는 이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그래서 작은 일과 큰일에는 모두 이것을 따른 것이고, 이것으로 행하지 못할 것이 있으니, 화(和)를 알아서 화하기만 하고, 예(禮)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행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위정편」에서는 “번지(樊遲)가 수레를 몰고 있었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공손씨(公孫氏)가 나에게 효(孝)를 묻기에 나는 어김이 없으라고 대답하였다. 번지가 무엇을 이른 것입니까? 하자 말씀하시길 살아계시면 예로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 장사지내고, 예로 제사지내는 것이다.”고 하였다.
그리고「요왈편(堯曰篇)」에서는 “소중히 여겼던 것은 백성의 식생활과 상례(喪禮)와 제례(祭禮)였다.”고 지적하면서 효라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효는 가장 작은 공동체인 가족관계의 균형을 잡아주는 중심이고, 부모를 진심으로 모시는 것은 살아계실 때만 아니라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도 지속되는데 상례와 제례는 그 행위의 상징성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다.
강조한다면 부모가 살아계실 때와 똑같이 밥상을 차리고 음식을 장만하여 그 기일(忌日)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가족과 친족 구성원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같은 뿌리에서 나왔고 그 줄기로 이어져 말단 가지의 잎사귀로 퍼져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확인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자가 상례와 제례를 중시했던 것도 살아계실 때 모시고 장사지내고 제사지내는 것들은 구체적으로 예(禮)에 입각하여 행동양식을 규정한 것이고, 식생활 또한 효를 실천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면서, 민(民)을 편안하고 배부른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야 교육에도 전념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계시는 부모를 모시고, 상례, 제례를 치르는 예법은 공자가 강조한 예법이 현실에 근거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악(禮樂)에 대한 언급에 대하여 『논어(論語)』「팔일편(八佾篇)」에는 “사람으로서 인(仁)하지 못하면 예를 어떻게 사용하며, 사람으로서 인하지 못하면 악(樂)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여 예악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였다. 인함은 사람의 가장 기본이 되는 덕목이면서 필수요소라고 하면서 예와 악을 발동시켜 인간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으로 「소백편(泰伯篇)」의 내용을 확인하면 “詩에서 착한 것을 좋아하고 나쁜 것을 싫어하는 마음을 흥기시키며, 예에 서며, 악에서 완성한다.” 고 하면서 공자는 『시경(詩經)』을 매우 중요시 했다. 특히 「위정편」에서 공자는 “시 삼백 편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다는 것이다(思無邪).”라고 하여, 제자들에게 시를 말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는 것을 많이 강조했다.
시에는 부(賦)․비(比)․흥(興)이라는 시(詩)의 세 가지 표현 기교가 있어 품격 있는 고급 문학이라고 할 수 있고, 『시경(詩經)』에 전하는 시중에서 많은 부분이 민간에서 구전된 민간전래 풍속시가로서, 갖가지 군상의 인간들의 선함과 악함을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시를 통해 인간과 세속을 통찰하는 눈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詩)를 통해 예(禮)를 바로 세울 수 있고 시의 표현법을 통해 악(樂)을 정비하면 인간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 진다는 것이다.
그리고「자장편(子張篇)」에서 “예는 그 사치하기 보다는 차라리 검소하여야 하고, 상(喪)은 형식적으로 잘 치르기보다 차라리 슬퍼하여야 한다.” “자유(제자이름)가 말하길 상례는 슬픔을 극진히 할 뿐이다.” 그래서 예의 본질은 그 예를 치르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진실한가의 문제이다.
상례(喪禮)를 치를 때 규모와 질을 따지며 형식에 치중하는 모습이 많지만 이것만이 그 상례를 치르는 전부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에 치중하면 상례의 예를 시행하는데 비례(非禮)로 규정할 수 있다. 또한 상례는 그 슬픔을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예로써 승화시켜 인간 내면을 상하지 않은 범위에서 치르는 것이 극진함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공자는 『논어』에서 도라는 것은 성인․군자로서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하는 것이고 정치에 있어 바른 방법, 정치 방도를 말하고 있는데, 백성을 섬기는 천자라면 백성의 지원이 있기에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백성들의 마음이 떠나게 되면 천의 뜻도 떠났으니 천자는 제후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고, 제후에게 간 권력은 제후들이 천자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백성들을 괴롭히고, 제후들끼리 다투게 되는 상황으로 몰고 가며 예악이 나올 수 없는 자들 사이에서 만들어 지니 그 사회의 풍속은 혼란스러워 진다. 결국에는 나라 전체가 빠른 시일 안에 패망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주마간산으로 열거했지만 『논어』에서는 인과 예를 가장 기본이 되는 덕목으로 하였고, 이를 실천하는데 공자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말하는데, 인간의 기본적 가치에서 출발하여 그 범위를 확대해나가, 결국 ‘사해지내 개형제야(四海之內 皆兄弟也)’ 즉 ‘세상에 살고 있는 모두가 형제’라는 동양사상의 정수를 실천할 수 있는 토대이고 발판이 되었다.
이 희 용 대진대학교 동양철학 박사과정, 등단시인, 연극연출가, 제3대 포천시예총회장, 광릉숲생태문학회장, 한국스카우트경기북부연맹 직선이사, 전 경기도예총부회장, 포천시수능시험장유치위원장, 포천신문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