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시장市場 market 재화·용역이 거래되어 가격이 결정되는 장소 또는 메커니즘’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시장의 개념은 다양하게 사용되며 그 종류 또한 많다. 크고 작은 다양한 시장 가운데 그래도 사람 냄새가 풍기는 곳이 바로 재래시장이다. 서울 도봉구 안방학동에 있는 오래된 시장이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도깨비시장이라 부른다.
시장 이름이 왜? 도깨비시장인지, 유래를 아는 사람은 없다. 도깨비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동화책에도 자주 등장하는 도깨비는 머리에 양 뿔이 달렸고 눈에는 붉은 광채가 번득이고 허연 이빨 사이로 새빨간 피를 흘리며 손에는 도깨비 방망이를 들었다. 또한, 술 취한 아버지와 밤새껏 씨름한 놈이 도깨비이다. 도깨비는 호랑이와 함께 순진한 아이가 가장 무서워했던 공포의 대상이었는데도 요즈음 아이들은 영악하여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도깨비시장이란 이름 하나로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있다. 시장 사람들은 가장 일찍 일어나고 가장 늦게 잠자리에 드는 일벌레들이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도깨비시장은 삶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안방학동 하면 도봉산 능선 아래 있는 조용한 동으로서 서울 시내에서 보기 드물게 공기가 깨끗한 전형적인 주택가이다. 방학동(放鶴洞)을 한자 풀이해보면 학이 내려앉는 조용하고 한가로운 동네라는 뜻이다. 그리고 안방학동은 도롯가에서 좀 더 깊숙이 들어 있는 동네이다.
골목길은 막힘 없이 잘 정비되어 시원하게 뚫려 있어 좋다. 또한, 눈살 찌푸리게 할 만한 유흥업소가 없다는 것이 주택가로서 최상의 입지조건이다. 약간 불편한 점은 전철이 동네 중심가로 통과하지 않아 교통이 좀 불편하다는 것이다. 88올림픽 열리던 해, 이곳에 처음 이사 와서 15년 동안 살아오면서 정이 참 많이 들었다. 처음 이사 왔을 때에는 길눈이 어두워 집을 못 찾고 동네를 몇 바퀴 빙빙 돈 경우가 있다. 한두 해 살다 보니 동네가 속속들이 손바닥 안에 들어왔다.
이곳으로 이사 와서 몇 주가 지난 어느 일요일 오후, 동네아주머니들이 모여 수다 떠는 소리를 엿들었다. 도깨비시장에 가면 다른 시장보다 저렴하게 물건을 살 수가 있다는 입소문이 펴져 인접 동에서조차 도깨비시장을 찾는다면서 조잘대는 수다에 신이 났다. 도깨비시장, 이름만 들어도 호기심이 생겨나 시장에 당장 달려가고 싶은 충동 때문에 미칠 것만 같다. 도깨비가 많아서 도깨비시장인가? 아니면 도깨비 방망이처럼 뚝딱! 두들기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물건을 살 수가 있어 도깨비 시장인가?
아내를 따라 시장에 들어서면서 이곳저곳 사람들의 왁자지껄하며 떠들어대는 소리가 바로 사람 사는 소리요, 삶에 소리이다. 비좁은 통로에는 보통사람이 지나치는 저잣거리이다.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 매점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은 포근한 어머니의 젖가슴 같다. 찐빵과 만두로 한 끼를 때우는 삶, 가난은 단 한 푼이라도 벌어 볼까 해서 좌판에 쑥, 미나리, 시금치 다발을 올려놓고 시간을 잡아두고 있는 당신의 검버섯 핀 얼굴에 남루한 옷차림, 거칠게 굵어진 손마디엔 천 원짜리 지폐 몇 닢만 나부댄다.
그 손은 나의 어머니, 아버지 얼굴이다. 신 나게 요것 저것 구경하고 생필품 몇 가지 사다가도 당신을 쳐다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그곳을 뜨지 못하고 머뭇머뭇 오랫동안 서 있었다. 좋은 세상에서 그나마 이만큼 풍요로움을 맛보면서 사는 것은 당신들의 은공이라 생각한다. 그 옛날 살림살이에 비하면 얼마나 풍족하고 행복인가, 당신께 고마워서 큰절을 올려야만 할 것 같다.
‘맛 좋은 찐빵 있어요!’ ‘맛 좋은 참외 있어요!’ ‘값싼 옷 팔아요!’ ‘순대 드시고 가세요!’
얼마나 생동감 있는 정겨움인가, 한바탕 요란했던 도깨비시장도 어둠이 깔리고 전등 불빛이 하나, 둘 꺼지면 고요가 찾아온다. 깜깜한 밤하늘에는 별들만 소곤댄다. 정이 듬뿍 들었던 안방학동을 떠나온 몸이라지만, 틈틈이 도깨비시장에 들러 사람 살아가는 숨소리에 마음을 젖히면서 사람냄새를 안주 삼아 털털한 막걸리 한잔에 취하고 싶다. 썰렁한 경기침체에도 도깨비시장, 구석구석에는 애절한 몸부림과 행복한 웃음이 함께 살아간다. 유년시절, 5일 장날에 부모 뒤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면서 눈깔사탕 사 달라고 응석 부리던 추억이 문득 생각난다. 지금 나는 어른 장돌뱅이로 도깨비시장을 서성대고 있다.
한승원 도움말 한 폭의 풍속도처럼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글이다. 자기 눈 부신 빛을 부드럽게 하고 세상 사람들과 어우러져 사는 화광동진(和光同塵), 이런 글들을 많이 모아 책을 묶어보시기 바랍니다. -『월간 에세이』 2006년 6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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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년 03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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