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위대한 임금이신 세종대왕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대왕은 새벽 두 시가 되면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고, 날이 밝으면 신하들을 만나 정사를 보았으며, 신하를 교대로 만나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를 물었으며, 임지로 가는 수령에게 백성을 사랑하라고 타일렀다고 한다. 또한 경연에 나가 학문에 몰두하고, 내전에 들어가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다가, 밤중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밤낮으로 그리고 촌음을 아껴가며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30여년을 통치하시어 그를 해동의 요순(堯舜)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렇게 백성을 가엽시여기는 성군의 능력은 우리는 왕세자의 교육, 혹은 국왕교육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선시대의 왕세자 교육의 흥미로운 예화가 있다.
효명세자의 입학식인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1817년 3월 11일, 순조의 맏아들인 효명세자의 입학식이 거행되었다. 창덕궁을 출발하여 성균관에 도착한 세자는 학생복으로 갈아입었고, 대성전에 들어가 만세의 스승인 공자의 신주 앞에 술잔을 올렸다고 한다. 이어서 대성전의 제례가 끝나면 세자는 명륜당으로 가서 스승에게 가르침을 청했는데, 이를 속수례(束修禮)라고 한다.
이는 조선시대 학생이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려면 먼저 제자로 받아줄 것을 허락받아야 했다. 배움을 구하는 자세이자 스승과 제자의 첫 인연을 맺는 절차이기도 했던 ‘속수례’는 학생은 정중한 예를 차리고 예물을 준비해 찾아갔는데, 스승에게 드리는 최소의 예물이 바로 속수였다고 한다.
세자도 성균관의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요청할 때 예의를 갖춰서 스승에게 속수례를 치렀는데 이는 국조오례의에 실릴 정도로 중요한 국가전례로 기록되어 있다. 세자는 스승에게 갖춰야 할 예절을 깍듯이 실천했는데, 스승에게 가르침을 청하며 간단한 예물을 올렸고, 이동할 때 스승에게 격이 높은 동쪽 계단을 양보했으며, 강의실에 들어가 스승에게 먼저 절을 올렸고, 수업 내내 책상을 놓지 않고 땅바닥에 엎드려서 책을 보았다는 것이다.
이는 지식보다는 학문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배움을 구하는 겸허한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유아기에 이뤄지는 강학청 교육에는 한글이나 체조 수업이 있었지만, 세자로 책봉된 이후의 교육은 유교 경전과 역사서가 기본 교재였다. 사서와 삼경을 위주로 하는 경전 교육은 덕성을 함양시키는 교육이었고, 중국과 한국의 역사서를 익히는 것은 역사적 지식과 안목이 요구되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역사서로는 『조감』, 『자성편』, 『국조보감』, 『갱장록』, 『모훈집요』 같은 책이 있었는데, 이는 조선의 태조부터 정조까지 역대 국왕들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조선은 성리학에 학문적 바탕을 둔 국가였으므로 성리학 교재도 많았다. 성리학 교재에는 중국 책이 많았지만, 이황이 편찬한 『주자서절요』, 이이의 『성학집요』, 정조의 『주서백선』 같은 책도 활용되었다. 또한 조선시대의 국왕은 시인이었다. 국왕 뿐 아니라 유학자가 모두 시인이었다. 국왕은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 신하들과 어울려 시를 지었고, 궁궐에 혼자 있으면 혼자서 시를 지었다. 아끼는 신하가 사망하면 그의 영혼을 위로하는 글을 지었다. 국왕이나 유학자의 문집에서 시집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시 짓는 일이 그만큼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국왕은 서예나 그림, 음악에도 일정한 수련을 쌓았다. 국왕의 글씨는 어필(御筆)이라 하는데, 선조, 효종, 숙종, 영조, 정조의 글씨는 예술작품이라고 할 정도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오늘날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지성과 감성을 고루 발달시키는 교육을 받았다고 하겠다.
최근의 교육현장에서 교권추락을 나타내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그 가운데에서 교권 침해의 가장 많은 비중이 학부모와 학생이라는데 경악을 금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요즈음의 부모들은 조선시대의 왕세자교육과 정반대의 길로 가는 경향이다. 인성이나 감성보다는 암기위주의 지식교육에 몰두하고 있는 소위 교육고객이라는 학부모들의 마음가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죽하면 고위층이나 재벌가의 자녀들의 외국인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하여 위장결혼도 마다하지 않는 이 나라 부유층을 보면서, 그리고 자녀교육을 위하여 기러기 아빠 생활도 감당하는 이들을 보면서 교육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는 입학시즌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스승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속수례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그리고 시와 예를 겸비하는 현대적 지성인 교육프로그램을 주창한다. 교육은 믿음과 신뢰에서 싹트는 무형의 구성체이다. 지식과 감상, 그리고 덕성을 어려서부터 길러주어야 진정한 리더로 거듭날 수 있는 바탕이 되리라 기대하는 바이다.
이철웅 / 의정부용현초등학교 교장, 교육학박사, 전 포천교육지원청 교육장, 포천신문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