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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박동규] 독립선언서 바른 표기로 독립정신 선양하자

- 비문·문헌·교과서의 선언서 한자오기를 수정하다
박동규 기자 / wwwop3451@hanmir.com입력 : 2013년 03월 01일
↑↑ 박동규 포천 영북노인대학장, 포천한시회 회장, 전 영북고등학교 교장
ⓒ (주)포천신문사
독립선언서는 1919년 3월 1일, 일제(日帝)에 합방(合邦)된 조국을 독립하고자 조선인의 거족적(擧族的)인 독립운동의 지표(指標)이며 민족의 결의를 담은 금과옥조(金科玉條)의 장전(章典)이다. 이 선언서는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 선생이 작성하고 의암(義庵) 손병희(孫秉熙) 선생을 비롯한 33명의 민족대표가 서명한 선언서로 세계만방(世界萬邦)에 선언하고, 삼천리 방방곡곡(坊坊曲曲)에 선포하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선언에 앞서 2월 26일, 보성사(普成社)에서 2만 1천매를 인쇄하여 28일 1천5백매를 학생들에게 배포하고 그 나머지를 기타지역과 각 지방에 배포했다. 33명의 대표는 3월 1일 12시 인사동 명월관(明月館)에서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선생이 선언서 낭독으로 조선(朝鮮)의 독립을 선언했다.

3월 1일 2시, 탑골공원에서는 배포 받은 선언서 1천5 백부를 배포(配布) 낭독(朗讀)하고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자주독립을 외쳤다. 그 당시에 낭독(朗讀)하고 살포(撒布)했던 독립선언서가 현재 천안독립기념관에 소장(所藏)하고 있는 기미독립선언서가 원본(原本)이요 정본(正本)이다.

200년 1월11일, 탑골공원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서울 종로 2가 탑골공원 성지(聖地)에는 독립선언서비가 3 가지가 모형(模型)으로 1980년 3월에 세웠다. 왼쪽에는 선언서를 영문(英文)으로 번역한 영문선언서 비, 중앙에는 선언서의 한자를 남북조(南北朝) 시대의 북위서체(北魏書體)로 필사(筆寫)· 각석(刻石)한 선언서 비, 오른쪽에는 국어로 옮긴 비가 세워져 있다. 그렇지만 정작 선언서원본의 비는 서있지 않아 다른 비와 같은 규모(規模)의 새로운 비를 하루 빨리 세워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독립선언서는 고어문체(古語文體)로 국한문(國漢文) 혼용(混用)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일반국민이 접하여 독해(讀解)하기가 쉽지 않다. 중앙의 북위서체 선언서 비의 한자는 강희자전(康熙字典)의 서체와 다른 서체로 천안독립기념관에 소장(所藏)한 원본의 한자와는 다른 이체자(異體字)가 250여 자로 일반국민이 독해하는데 어려움이 많아서 국민이 접해서 읽기를 기피(忌避)해서 무관심속에서 33여 년이 지났다.

↑↑ 필자가 독립선언서 비문을 원본과 대조해 보고 있다.
ⓒ (주)포천신문사

우리나라의 한자 표기는 문교부 고시(告示)에 따라 강희자전 해서(楷書)로 표기(標記)하도록 법령으로 ‘중등학교에서는 강희자전에 바탕을 둔 명조체(明朝體) 해서(楷書)로 표준으로 삼는다.’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격(國格)의 국민헌장(國民憲章)인 독립선언서를 다르게 표기(標記)하거나 이체자로 표기할 수 없으며, 단 한 글자라도 달리 표기를 할 수 없다. 약자(略字)· 간자(簡字)· 속자(俗字) 등으로 표기할 수 없으며 지도과정에는 한자표기를 융통성 있게 다룰 수 있지만 원본은 원본 그대로 표기(標記)하고 보존(保存)해야 할 뿐 아니라, 동양· 한문문화(東洋· 漢文文化圈)의 외국인이 수시로 방문하는 곳으로 원본 그대로 강희자전 해서체(楷書體)로 표기해야 그들도 독해(讀解)하게 된다.

필자는 선언서를 수정하는데 일조(一助)하고자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무총리,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교육과학기부, 국가권익위원회, 문화재청, 국가보훈처, 광복회, 서울특별시, 종로구청, 종로구의회 등 12개 부처장관에게 국민청원과 제안서를 2회씩이나 제출했고, 필자가 필사(筆寫)한 필사본(筆寫本)도 함께 보내주었다.

추진하기 위해 2010년 1월 29일, 대전의 정부청사 문화재청을 방문하여 선언서 원본의 비 건립에 동의(同意)를 얻었고, 2010년 2월 20일, 천안독립기념관을 직접 방문하여 각종 자료와 문헌(文獻)을 열람하고, 재확인하여 선언서 수정(修正)의 필요를 역설(力說)하며 협조를 요청했다.

각 부처장관에게 보낸 제안서· 청원서는 탑골공원을 관리하는 종로구청으로 모두 이첩(移牒)되어 3년간 추진하면서 24회나 구청과 탑골공원을 방문하여 수정을 촉구하기에 동분서주(東奔西走)했다. 독립정신을 선양(宣揚) 업무를 담당한 문화체육관광부, 국가보훈처, 광복회도 2회씩 방문하여 수정을 촉구했고, 국가권익위원회도 방문해 협조를 요청했다.

종로구청에서는 문화재자문위원회· 문화재보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수정의 당위성을 추인(追認)하고 최종 합의해 새 오석판(烏石版)에 선언서를 원문(原文)대로 필사(筆寫)·각석(刻石)해서 2011년 2월 9일, 중앙의 북위체 선언서 비석 위에 덧붙여 교체하게 되었다.

그러나 서예(書藝)· 전각(篆刻)의 대가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 선생 제자들이 당초 북위체 선언서 비의 원상복구를 강력히 요구해서 다시 문화재자문위원회· 문화재보호위원회에서 재심해서 원상대로 복구하게 되었고, 필자는 문화재보호위원회 재심회의에 동석해서 기존 비는 예술적·상징성이 있어 보존하되 새로운 원본선언서 비를 건립을 주장했고, 위원장으로부터 ‘독립선언서 원본 비를 세우기 위한 노 교장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

탑골공원 성지(聖地)에 정작 있어야 할 선언서원본의 비가 없으니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되어 있어 종로구청을 계속 방문하여 다른 비와 동일하게 같은 크기만큼의 새로운 비를 세울 것을 단신무원(單身無援)으로 계속 국민제안을 재촉구 했다.

종로구청에서는 2011년 7월 25일, 천안독립기념관에 소장(所藏)되어 있는 원본을 모사(模寫)해서 알루미늄 판에다가 선언서를 투명한 자료로 덮어서 왜소(矮小)하게 제작하여 손병희(孫秉熙) 선생 동상 앞 풀밭에 세워놓고서 종로구청에서는 민원인의 요청대로 세웠다고 강변(强辯)하면서 다만 선언서비의 크기를 기존비와 동일한 규모로 설치 못함을 양해를 필자에게 구해왔다. 선언서원본의 모사판(模寫板)이라도 설치했으니 이나마 교행(巧幸)하다고 할까. 이는 받아들일 수 없으며 새로운 비를 다른 비 크기로 세워야
한다.

중앙 비에 비하면 10분의 1 규모도 안 되어 1~2 명이 겨우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마저 활자(活字)가 선명치 않아 제대로 읽을 수 없어 민원을 우선 봉합(縫合)하려고 형식적으로 세워 놓았으니 국민의 지탄(指彈)받을 일이다.

이는 역사적 인식이 없이 무책임한 발상(發想)의 소치이다. 다른 3개의 비와 비교하면 너무 초라할 뿐 아니라 균형을 잃은 기형적(畸形的)인 공작물로 비(碑)와 판(板)의 제재(製材)도 식별(識別)하지 못하고 시설을 했으니 애국선열께 송구스럽기만 하다.

다중(多衆)이 함께 읽을 수 있는 규모의 선언서 비를 다른 비와 같게 석판(石板)에 필서(筆書)· 각석(刻石)해서 비다운 비를 새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확고한 신념으로 관계부처에 계속해서 추진을 촉구한다.

↑↑ 독립선언서 원본 모사본
ⓒ (주)포천신문사

2013년 1월 30일, 행정안전부· 교육과학기술부· 문화체육관광부· 국가보훈처· 문화재청· 광복회 부처장관에게 새로운 비를 새로 세울 것을 국민제안 했고, 앞으로 계속해서 비를 세우는데 진력(盡力)할까 한다.

새로운 원본선언서 비 세우기와 고교 국어교과서 수정, 소장한 선언서 바른 표기 등을 위해 3년 동안 강력히 수정을 촉구해 이제 늦게나마 수정(修正)하게 되어 감복(感服)해 마지않는다.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을 비롯한 관종별(館種別) 도서관마다 소장(所藏)되어 있는 선언서원문, 각종문헌과 각종도서자료에서 수록된 선언서원문,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한 선언서원문 등에서 오기(誤記)한 한자를 지적해보면 대체적으로 공통된 오기한자는 ‘回穌’를 ‘回蘇’로, ‘懲辦(징판)’을 ‘懲辨(징변)’으로, ‘共倒同兦’을 ‘共倒同亡’으로, ‘주저(蹰躇)’를 ‘躊躇’로 오기하고 있다.

탁락(卓犖)· 주무(綢繆)· 기미(羈縻) 등의 독음(讀音)을 오기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인터넷에 저장되어 있는 선언서에는 오자가가 부지기수(不知其數)로 일일이 지적할 수 없으며 완벽하게 표기한 선언서는 23개를 검색했지만 한 곳도 바르게 표기(標記)한 선언서는 찾아 볼 수가 없었으니 실로 통탄할 일이다.

우리는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 국민의 합의로 원본대로 수정(修正)하는 계기를 삼아서 독립정신을 선양(宣揚)하고 애국선열의 애국의 얼을 현창(顯彰)토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광복 이후 65여 년 동안 소장(所藏)한 선언서의 오기(誤記), 3· 1절 행사에서 한자를 오기(誤記)· 오독(誤讀)하였고, 교과서에서의 한자 오기, 선언서 비문의 한자를 오기했는데 이는 선포 후 속자(俗子)를 통자(通字)로 전자(轉字)해 표기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다. 임의로 표기한 것은 애국선열(愛國先烈)께 송구스럽고 국민에게 부끄럽기가 이를 데 없다.

독립선언서는 우리 국격(國格)의 국민헌장이다. 우리 헌법전문에는 ‘유구(悠久)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 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法統)과 …’으로 표기(標記)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독립선언서는 우리의 헌법보다 최상위(最上位)의 국민헌장임으로 국민이 낭독해 독립정신을 고양(高揚)토록 하자.

교과부에서는 고교 교과서 수정을 2012학년에는 수정하겠다고 공약해 놓고 유예(猶豫)하고 있기에 재차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교과서 수정을 국민제안을 했더니 교과부로 이첩(移牒)되어 교과부 교과서정책과에서 ‘기미독립선언서 한자 오자 수정에 대한협조’ 공문으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국사편찬위원장,(주)한국검인정교과서에 심의를 통해서 선언서 원본대로 수정하여 2013년도 검정(檢定) 심사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협조하라는 공문이 시달되어 수정작업이 착착 진행되었다.

천재교육에서는 고등국어(상)권에 수록한 독립선언서의 한자 오자를 수정하여 출간(出刊)하게 되었다. 2013년 1월 22일, 천재교육으로부터 선언서의 한자를 수정했다는 통보와 새로 수정· 발간한 교과서를 접수했으니, 교과서 수정을 시도(試圖)하고 촉구한 지 만 2년 만에 수정을 보게 되어 실로 감격해 마지않는다.

독립선언서를 수록한 교과서를 찾아 확인하는데 서울의 출판사를 직접 방문하였고, 출판사에 전화로 확인하고 새 교과서를 구입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여러분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2012년 3월 1일, 탑골공원의 3·1절 추념식에 초청해 참석한 바 있었는데 나누어 준 유인물의 선언서에 오기(誤記)된 한자와 3·1절노래·선열추념가에서의 오자를 지적해 주었더니 내년도부터는 바르게 수정하겠다는 확약(確約)을 받았으니 금년도에는 수정한 선언서를 낭독하리라.

독립선언서는 광복 후 65여 년 간 오류(誤謬)된 선언서를 3·1절에 낭독하고, 국어교과서에 수록되면서 현재까지 장기간 오기된 채 교과서에 수록되고, 오기된 선언서를 중앙도서관을 비롯한 도서관 마다 소장(所藏)했던 것을 오늘에 이러러 늦게나마 비로소 수정하게 되었으니 천만다행이다.

필자는 선언서의 모사본(模寫本)과 필자가 직접 필사한 필사본(筆寫本) 120매의 복사본을 함께 동봉해서 독립정신을 선양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 국가보훈처, 광복회, 천안독립기념관,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한국도서관협회, 대한노인회, 지역도서관, 지역인사 등지에 보내어 선도적(先導的)으로 선언문을 바르게 수정(修正)하게 하고, 앞으로 더 많이 보급하도록 국민운동을 전개토록 촉구했다.

↑↑ 독립선언서원본 필자의 필사본
ⓒ (주)포천신문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선언서원본을 한국도서관협회에 협조를 얻어 월간지 <도서관문화>에 게재(揭載)하여 전국도서관에 보급해 달라고 국민제안서를 제출하여 협조하겠다는 문화체육관광부 도서관정보정책기획단장의 답신을 받았고, 2012년 12월 10일, 한국도서관협회 담당자로부터 3· 1절을 맞는 3월호 <도서관문화>에 선언서를 게재(揭載)하겠다는 통보를 보내왔다. 도서관협회 6337명 회원을 통해서 독립선언서원본을 배본(配本)하게 되어, 협회는 독립정신을 고양하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그동안 국무총리, 행정안전부, 교육과학기술부, 문화체육관광부, 국가보훈처, 문화재청 등 부처장관으로부터 선언서를 바르게 표기하고 보급하기 위한 노고에 대해서 경의(敬意)와 찬사(讚辭)를 보내왔다.

앞으로 선언서 수정의 배경과 과정, 독립선언서를 쉽게 독해할 수 있게 교수·학습용 독립선언서를 한데 모아 작은 책자를 간행(刊行)해서 관계부처와 뜻있는 이에게 나누어 줄까 한다. 관계부처에서는 국민으로 하여금 독립선언서를 원문(原文)대로 모사(模寫)하여 그 내용을 독해(讀解)할 능력을 길러서 독립정신을 고양(高揚)하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 독립선언서원본은 한주국종(漢主國從)의 문장이라 일반 국민이 독해(讀解)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원본은 그대로 보존하며, 교과서에나 3·1절 기념식·추념식에서는 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 선생이 국역(國譯)한 독립선언서를 채택해서 전 국민에게 보급하여 낭독(朗讀)하고 독해(讀解)해서 독립정신을 선양(宣揚)하도록 해야 한다.

한편, 정부는 독립정신을 고양하도록 해서 2013년 3월 1일 3.1절 경축식에서 이희승 선생의 국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게 되었다.

回憶 3·1獨立運動

精神獨立永源流 3·1독립 정신이 영원한 원류이리라,
己未宣言塔谷謀 기미선언을 탑골공원에서 도모하였네.

抗拒倭夷波海外 왜이에게 항거함이 해외에 파급되었고,
示威群民唱園頭 조선 민중 시위가 원두에서 고창하였네.

喊聲萬歲連街巷 만세의 함성이 가항까지 이어지고,
公約三章讀閣樓 공약삼장도 누각에서 낭독하였네.

回憶主權恢復史 주권의 회복 역사적 사실을 회억하며,
追崇烈士久延留 애국열사 추숭함이 오래도록 연류하리.


박동규 / 포천 영북노인대학장, 포천한시회 회장, 전 영북고등학교 교장
박동규 기자 / wwwop3451@hanmir.com입력 : 2013년 03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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