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얼을 떠올리는 3월이 우리 곁에 다가오니, 유난히도 나라와 민족을 위하며 목숨마저 바치신 수많은 독립투사를 떠올려지고, 그 실천의 중심이었던 선열들의 업적을 생각하며 3·1운동의 정신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특히 그중에서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냈던 백암(白巖) 박은식(朴殷植) 선생은, 주자학자로 출발해 독립투사로 평생을 민족의 해방과 독립에 바쳤는데, 그분이 상해에서 1915년 출간한 우리 근대사를 엮은 책이『한국통사』인데, 이 책에는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 감옥에서 마지막 재판이 끝난 후에 두 동생에게 남긴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러일 전쟁에서 이긴 일본이 우리나라에 더욱 압력을 가하며, 이듬해에는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우리의 외교권마저 빼앗으니, 이에 분노를 느낀 안중근은 강원도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일본군과 싸운 화서학파의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그 후 한일신협약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의병 운동에 참가하고, 1908년 의병 부대의 참모장이 되어 일본국과 싸웠으며, 이듬해 뜻을 함께 하는 11명의 동지들과 죽음으로써 구국 투쟁을 벌일 것을 다짐한다.
같은 해 10월 만주 하얼빈 역에서 일제 침략의 우두머리인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쏘아 죽이고 체포되어 여러 차례 재판을 받았지만, 결국에는 이듬해 3월 뤼순 감옥에서 사형 당하고 말았다.
안중근의사는 사형선고를 받고도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주고, 우리나라의 주권을 회복하는 날을 기다렸다가 옮기어 고향 땅에 묻어 달라. 내가 천국에 가서 또한 우리국가 회복을 위해 전력할 터이니, 너희들은 나를 위해 우리 동포에게 고하라. 각기 국가의 책임을 부담하여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동심일력으로 공을 세우고 업을 수립하여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리면, 내 마땅히 기뻐 춤추며 만세를 외치겠노라.”고 하였다.
이날에 대해『한국통사』에는 “1910년 경술년 양력 3월 26일 상오 10시에 형장에 서서 혼연히 말씀하시되 나는 대한독립을 위하여 죽는 것이며, 동양평화를 위하여 죽는 것인데 죽는다고 무엇이 한스럽겠는가 하고, 드디어 한복으로 갈아입고 조용히 형을 받으시니, 그 때 연세 32세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사무치는 애국인가?
이렇게 우리의 조상들은 이렇게 빼앗긴 나라를 찾겠다고 이역만리에서 목숨을 던지며 애국을 실천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인데, 한국전쟁을 겪고 휴전 중인 남북대치상황에서,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점점 더 냉각되고 대치되는 국가안보의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은 물론 자식까지도 갖가지 핑계로 군대를 가지 않고 있으니 안보를 아이들 병정놀이로 알고 있는 것인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그리고 국방의 의무도 마치지 않은 공직자들이 어떻게 국가안보를 책임질 수 있으며, 무슨 낮으로 국민을 대할 수 있을 것인가? 가뜩이나 군복무 기간도 줄어들고 있고, 기강도 흐트러져 휴전선노크 귀순이라는 한심한 일도 벌어지고 있으니 한심한 지경이다.
게다가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고 미사일과 핵실험으로 국가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고, 병역의무에 대한 소중함을 경시하고 있는데도, 역대 정권의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비롯해 장관급 고위공직자의 40%가 병역 면제자들로 채워졌다고 하니 소가 웃을 일 아닌가? 이제 다시 3월이 되었고 민족의 원흉을 향해 총탄을 겨누었던 안중근의사가 말씀하신 “너희들은 각기 국가의 책임을 부담하여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동심일력으로 공을 세우고 업을 수립하라”는 유지를 염두에 두고 애국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서민의 자녀는 전방에서 피땀 흘리며 의무를 다하고, 이른바 지도층은 병역을 기피하는 것이 권력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일이 없게 하여, 나라와 민족의 국권회복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과, 전쟁터에서 이름도 없이 산화하신 호국영령들께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의 지도층이 되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희 용 / 대진대학교 동양철학 박사과정, 시인, 연극연출가, 제3대 포천시예총회장, 광릉숲생태문학회장, 한국스카우트경기북부연맹 감사, 전 경기도예총부회장, 포천시수능시험장유치추진위원장, 포천신문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