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추구하는 것이 민주주의적 가치인지, 아니면 편협한 경제적 국가주의인지 매우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필자는 지난 대선에서 가치관의 갈등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후진국이었을 뿐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조선의 왕정 전제국가와 일제의 식민주의에서 허덕였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인은 두 가지 장애물을 무사히 극복하고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자부심을 가질만 하다. 하지만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우리가 그 숙제를 바람직하게 해결했는지는 깊게 숙고해야 하다고 본다.
이번 대선 결과는 여야가 52대 48이라는 간발의 차이를 보여주면서 승리한 여당쪽도 그리 자신만만할 수 없다. 박근혜 정권이 출발하기도 전에 지지도는 48%대로 내려갔으니 앞으로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 자못 궁금할 정도이다. 물론 북핵문제로 국민들이 국가의 안위에 대하여 불안하게 생각하는 면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야당이 한미 FTA나 제주도 해군기지 이슈에 대해서 지나치게 좌편향된 태도를 취했던 것에 대한 반발표가 대선의 향방에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면 여야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반분된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조선왕조에 이어 일제의 식민정치에서 시달려온 우리 민족은 양반과 평민이라는 유교적 신분문제를 해결하고 민주주의적 자유에 대해서 갈급해왔다. 해방에 이어 이승만 독재에 대해 4.19 의거로 저항의식을 보여준 것은 이것을 반증해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연이어 5.16 쿠데타가 일어나 독재정치로 이어졌고 우리 민족의 또 하나의 장애물인 경제적 궁핍을 해결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나름의 평가를 받은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두 개가 역사적 사건이 차례로 일어났고, 자유와 궁핍이라는 민족적 명제를 제기하였던 것은 어느 쪽이 우선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수레의 두 바퀴의 동시적 존재라고 정의해야 될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코리올레이너스”는 이런 이율배반적인 두 명제의 갈등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영국은 1607년에 극심한 흉작이 들어 민중들은 식량부족으로 불만이 비등하게 된다. 그 결과 일어난 농민반란은 귀족들이 인클로저 방식으로 공용 농경지를 사유목축지로 변경하고 농민들을 농촌에서 내몰아낸 조치에 대한 반발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시위에 나선 민중들은 “굶주리기보다는 싸우다 죽기로 모두 결심했다”고 천명한다. 셰익스피어가 고대 로마인들의 식량고갈 문제를 극적 소재로 하여 17세기 초의 영국 민중들의 기근으로 인한 폭동을 다루고 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사실 로마의 식량부족은 귀족들이 곡류를 개인 창고에 비축해두고 독식함으로써 일어난 귀족들의 경제적 부정의라고 볼 수 있다. 마치 한국의 재벌들이 거대한 유통회사를 운영하면서 골목상권을 말살하는 것과 비유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일용품을 독점하여 가격을 조작함으로써 힘없는 소매상들이 무너지는 것은 귀족들의 식량의 독점에 의한 가격상승과 민중들의 아사상태와 똑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시민들은 그들의 배고픔에 대해서 “귀족들은 자신들이 물리도록 먹고 남은 음식으로도 우리를 구제할 수 있어. 남은 음식이라도 상하기 전에 우리에게 온정을 베푼다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거든”이라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귀족대표로서 원로원인 메니니어스는 로마라는 국가의 정체성은 귀족과 평민의 유기적 관계에 의해서 건강해진다고 설명한다. 그는 귀족들은 신체의 복부에 비유하면서 복부는 음식을 소화시켜서 신체의 모든 기관에 영양분을 공급하기 때문에 빈둥거리며 영양분을 공급받아 생활하는 평민들은 불만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이런 상황에서 볼스키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국가적 영웅이 된 코리올레이너스는 시위에 나선 민중들에게 극도의 혐오감을 들어낸다. 그가 로마라는 국가주의를 내세우며 피를 흘린 것은 사실이지만 민중들에게 누더기 옷을 입고 동의와 표를 구하는 집정관이 되기 위한 ‘겸손 의식’을 거부하려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코리올레이너스가 집정관이 된다면 로마의 공화정을 파괴할지 모른다고 느낀 호민관들은 민중들을 선동하고, 그의 독선적인 태도를 지적하여 그를 로마에서 축출하고 만다. 조국 로마의 국가주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피를 흘리며 구했던 그는 분기탱천하여 오히려 적군인 볼스키아와 연합하여 조국을 짓밟으려 쳐들어온다. 그렇다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고 했던 이전의 행위의 진정성은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그의 전쟁 행위는 자신의 영웅심의 발로이거나 민중들을 살육하여 그의 잔인한 본능을 충족시키려는 욕망에 불과하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한국의 현 상황에서 국가주의를 부르짖으며 전쟁을 불사하려는 호전주의나 경제적 결핍을 해결해주었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자유를 어느 정도 희생해도 괜찮다는 경제 우선주의는 냉정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부정의나 정치적 독재에 저항하고 분배와 자유를 요구하는 민중들의 요구는 로마에 대한 전공을 내세우며 민중들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코리올레이너스를 로마에서 축출한 것은 로마의 공화정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