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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부사의=이규임] 지혜(智慧)와 중지(衆智)

중지를 살펴야 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규임 기자 / 입력 : 2013년 02월 12일
↑↑ 이규임 한국영상학회 명예회장
ⓒ (주)포천신문사
우리는 흔히 어려운 일에 부딪치면 지혜(智慧)롭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하고 중지(衆智)를 모아야 한다고 말들을 한다. 그렇다면 지혜는 무엇이고 중지는 무엇인가? 우선은 지식(知識)과 지혜의 차이점부터 알아야 한다. 물론 지식과 지혜는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깊이와 새김이 다른 것이다. 지식은 짧은 시간 안에 배움을 통해 얻을 수 있으나 지혜는 그렇지 않다.

지혜는 일정 기간의 숙성(熟成) 과정이 필요하다. 智는 ‘알다’의 뜻인 知와 ‘날’의 뜻인 日의 합자로 알고 있는 것[知]이 세월[日]의 경과를 통해 체득되는 ‘슬기’임을 함유(含有)한다. 나타낸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연륜(年輪)이 쌓이고 경륜(經綸)이 쌓여야 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지혜는 경험의 딸이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한편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중지를 모으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중지란 여러 사람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대중(大衆)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왜 중지를 말하는가? 왜 대중을 말하는가? 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을 생각하다 보면 한 번은 틀리기 마련이고[智者, 千慮一失]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을 생각하다 보면 한 번은 맞을 수 있기 때문[愚者, 千慮一得]이다. 서로 머리를 맞대면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지혜보다 여러 사람의 지혜가 모이면 난제(難題)도 쉽게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각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지혜가 날줄이 되고 씨줄이 되어 조합(調合)되면 의외의 성과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정가에서 만기친람(萬機親覽)이란 말이 회자(膾炙)되고 있다. 만기친람이란 모든 일을 친히 챙긴다는 말이다. 때로는 그리 해야 한다. 분업(分業)의 장(長)이 되는 사람은 그리 해야 한다. 각 파트[部署]의 장이 되는 사람은 그리 해야 한다. 그러나 정점(頂點)에 있는 사람은 그리 해서는 안 된다. 아니 그리 할 수 없다.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專門家)를 찾는 것이고 권위자(權威者)를 찾는 것이다. 전문가의 말에 귀 기울이고 권위자의 진언(進言)을 경청(敬聽)하는 것이다.

전문가란 그 부문(部門)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 부문에 대한 지식을 체계적(體系的)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다. 전문적인 지식체계(知識體系)를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단편적(斷片的)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아는 것이다. 권위자란 그 부분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다. 무수한 경험(經驗)을 쌓은 후에 정점에 도달한 사람이다. 세월이라는 풍파(風波)를 겪은 후에 그 경지(境地)에 이른 사람이다. 흔히 권위주의(權威主義)를 배격(排擊)해야 한다는 말들을 한다. 옳은 말이다. 권위는 존중하되 권위주의는 배격해야 한다. 권위는 지금 이 순간 정점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권위주의는 지난날에 정점에 있었던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점에 있는 사람은 중지를 살펴야 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활용해야 한다. 그래서 용인술(用人術)을 말하는 것이다. 중국 전한(前漢)의 명재상 병길(丙吉)은 패싸움으로 죽은 사람의 시체를 보고는 무덤덤하게 지나쳤지만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소를 보자 걸음을 멈추고 소의 상태를 유심히 살폈다고 한다. “어찌 사람보다 소를 더 소중히 여기는가?”라는 비난에 병길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이 싸우다 죽고 다치는 것은 지방행정관이 다룰 일이지만 소가 숨을 헐떡거리는 것은 날씨의 이상 때문이요 한 해 농사에 관계된 것이니 응당 정승이 살펴야 할 일이다.”

병길은 포퓰리즘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일의 선후를 냉철하게 분별할 만큼 현명했다. 그뿐인가? 일개 옥리(獄吏)에 불과했던 병길의 능력과 자질을 알아보고 그를 재상의 자리에 앉힌 선재(宣帝)의 용인술은 더욱 지혜롭지 않은가?

이규임 한국영상제작학회 명예회장
이규임 기자 / 입력 : 2013년 0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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