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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 칼럼] 미녀 왕소군(王昭君)의 슬픔


이희용 기자 / heeyeong1@hanmail.net입력 : 2013년 01월 28일
↑↑ 이희용 칼럼니스트, 포천신문 자문위원
ⓒ (주)포천신문사
중국 한(漢)나라 유흠(劉歆)이 짓고 진(晉)나라 갈홍(葛洪)이 엮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책으로, 황제와 후비(后妃)와 유명 인사들의 일화와, 궁중의 제도와 풍습이나 비밀기록에 관하여 수록한 『서경잡기(西京雜記)』에는, 중국역사상 4대 미인 중 하나인 왕소군(王昭君)에 대한 기록이 있다.

중국 전한(前漢) 때의 원제(元帝)는 유난히도 여색을 밝혀서 황제로 즉위하자 전국 각지에서 수천 명의 궁녀를 모집하고, 이때 왕소군은 나이는 18세에 궁녀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그 많은 궁녀들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을 번거롭게 여겼던 원제는 궁중화공에게 명하여 궁녀들의 얼굴을 그려서 화첩으로 보관케 하였다.

그러자 대부분의 궁녀들은 화공에게 앞을 다투어 뇌물을 바치고 아양을 떨면서 본인의 얼굴을 예쁘게 그려 달라고 간청을 하였고, 화공은 받은 뇌물의 가치만큼 얼굴을 예쁘게 그려주었는데, 그중에 왕소군이라는 여인은 빼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화공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에 화공에게 미움을 사서, 그의 얼굴은 가장 추하게 그려져 황제에게 바쳐지게 되었다.

그해 한(漢)나라는 걸핏하면 쳐내려오던 흉노와 휴전을 맺고, 그들을 달래기 위해 선우(추장) 호한야(呼韓邪)를 수도인 장안에 초청하여 원제와 만나게 되었는데, 상호 선물을 주고받는 자리에서 호한야는 한나라에서 궁녀한명을 주면 아내로 삼을 터이니, 이를 두 나라 화친의 징표로 삼기로 하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이때 한나라 원제(元帝)는 조금 마음은 불편했으나 흉노와의 화친이 절실했기에, 선우 호한야에게 궁녀 하나를 주기로 약속을 하였고, 누구를 보낼 것인가 고민하다가 필요할 때마다 그랬듯이 궁녀들의 초상화집을 가져오게 해서 쭉 훑어보고는, 그 중 가장 못생기게 그려진 왕소군을 찍게 되었고 그를 흉노 추장에게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선택된 왕소군은 황제에게 이별을 고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에 불려오게 되었고, 원제가 왕소군의 자태를 확인해보니 절세의 미인이요 그 태도가 곱고도 단아하여 황제는 소군의 아름다음에 정신을 빼앗겼으나, 약속을 하였으니 아니 보낼 수는 없고 보내기는 너무나 아까워 가슴을 치며 후회하였으나 되돌릴 수 없었다.

그러니까 뇌물을 받은 화공의 농간이 아니었다면, 황제의 여인으로 남아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던 아름다운 왕소군은, 실물과는 너무도 다르게 그려진 그림 한 장 때문에 적군의 첩으로 자신의 여인을 떠나보낸 황제는, 크게 노하여 소군을 추하게 그린 화공을 참형(斬刑)에 처하였다.

이렇게 고향을 떠나서 낯선 북녘의 오랑캐 땅으로 가게 된 왕소군은 언제나 그랬듯이 착한 마음씨를 그대로 발휘하여, 아녀자들에게 베를 짜는 방법과 바느질 등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지혜를 전해주며 백성들을 가르치는데 정성을 다하였다.

그러나 따뜻한 남쪽에서 몹시도 추운 흉노의 땅으로 시집와서 살게 된 왕소군에게는 따뜻한 여름은 찰라와 같이 짧았고 겨울은 너무도 길었다. 이렇게 지루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고는 하지만, 북녘의 땅에는 꽃도 없었으니 늘 고국 한나라를 그리며 시름에 쌓여 몸이 야위고 허리띠가 느슨해졌다.

여염집 여인네 같으면 낭군을 생각하고 몸도 날씬해져 좋다고도 했겠지만 소군의 마음속에는 늘 고향을 그리워했고, 이런 마음에서 시를 지었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해석하면,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자연히 허리띠는 헐거워지는데 이는 잘록한 몸매 보이기 위함 아니네.

왕소군이 백성을 위하고 교화에 힘써서인지 한나라와 흉노는 그 후로 60년이 넘게 전쟁 없이 화목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왕소군은 풍습에 따라 아들의 아내로도 살았고 한 많은 생을 마감하여 흉노 땅에 묻히게 되는데, 얼마나 꽃피는 고향을 그리워했으면 그의 무덤에는 지금도 새파란 풀이 총총히 자라나 어찌나 푸르던지, 사람들은 이를 일컬어 청총(靑塚)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흔히 중국역사상 4대 미인을 말한다면, 춘추시대 서시, 한나라의 왕소군, 삼국시대의 초선, 당나라의 양귀비를 꼽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양소군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기러기가 하늘을 날아가다 왕소군의 예쁜 모습에 넋을 잃어, 나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멍하니 바라보다가 모두 땅으로 떨어졌다 하여 "낙안(落雁)"이란 말이 만들어졌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양소군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글귀는, 지금도 하루하루 고된 삶을 살면서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서민들에게는 뼈저리게 다가오고 있다. 해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민초들의 얇은 호주머니는 채워지는 날이 없고 늘어나는 부채와 생활고는 계속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한 푼이 아쉬워하며 바닥 밑에는 지하라는 냉엄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힘든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따뜻한 봄이 찾아올 것인지,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며 권력놀음에 빠져있는 정치인들은, 지금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진정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이 희 용 /
대진대학교 동양철학 박사과정, 시인, 연극연출가, 제3대 포천시예총회장, 광릉숲생태문학회장, 한국스카우트경기북부연맹 감사, 전 경기도예총부회장, 포천시수능시험장유치추진위원장, 포천신문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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