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사는 이웃사람들과 함께 백운계곡에 갔다. 지난여름엔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싱그럽더니 곱게 물든 단풍은 한층 더 운치가 있었다. 팔도강산 어딜 가나 물 맑고 산 좋고 인심 좋다 라는 말들을 하는데 그게 바로 여기서 유래된 것이 아니겠느냐면서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자화자찬이 좀 심하다고는 했지만 모두가 자연경관에 푹 반했다.
하루를 즐겁게 보냈으면서도 돌아올 때는 왠지 아쉬웠다. 어느새 이동면을 뒤로하고 일동면을 지났는가 싶은데 신작로를 달리다보니 포천시내에 가까이 다다랐다. 그즈음 문득 옛 장날 생각이 났다. 5일마다 서는 시골 장. 4일은 솔모루(송우리)장이고 5일은 포천장날이다. 솔모루장 보다 커서 볼게 많다고 부모님께서 다니시던 포천장은 요즘도 설까?
어머니는 장에 한번 가려면 장꺼리를 장만하느라 이것저것 모았다. 아주 어렸을 적 닭을 키울 때는 달걀도 모아 열개 한 줄을 짚으로 엮어놓고, 하루 종일 뜯어온 산나물을 삶아서 함께 갖고 나가셨다. 채소를 솎아 밤새 단을 묶고 미끈하게 잘생긴 오이 반접을 골라 담았다. 여름내 땀 흘려 거둬들인 곡식을 팔아 학비를 마련해주시고, 이따금씩 콩 한말, 팥 닷 되씩을 이고 나가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오셨다. 그런 날은 땅거미가 질 때까지 동구 밖만 내다보며 내내 어머니를 기다렸다. 아니 어쩌면 어머니보다 어머니 머리위에 장보따리를 더 기다렸는지 모른다.
아버지는 새벽 우(牛)시장엘 자주 가셨다. 소금(金)을 수시로 알아놓아야 제때에 제값을 잘 받을 수 있단다. 이십 오리 길을 걸어가려면 먼동이 트기도 전에 나가셨는데 신읍에서 가채리로 옮긴 뒤에는 더 서두르셨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신발을 사주시겠다고 하여 따라 나섰다. 뒷곁의 서너 그루의 살구나무에서 잘 익은 것만 골라 담은 살구 한 자루를 지고 가셨다. 아버지는 장터귀퉁이에 자루를 내려놓고는 잠깐만 보고 있으라고 하시더니 어디론가 가셨다. 사람들은 어린 것이 뭘 팔러 나왔냐고, 얼마냐고 묻으며 수군거렸다, 어린마음이지만 왜 그렇게 창피했는지 도망치고 싶었다. 따라 나온 것을 후회하고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었다.
얼마 후 아버지 뒤로 어느 아주머니가 같이 오시더니 살구 자루를 이고 갔다.
“수년간 장엘 다니면서 신세진 아줌니다. 별건 아니다만….”
아버지의 말씀은 새겨듣지도 않고 이제 고무신이 아닌 운동화를 얻어 신을 욕심에 가슴이 부풀었다. 우시장엔 안가도 된다 하셨으니 신발가게만 가면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냥 지나치기엔 섭섭하셨던지, 파장이긴 하지만 잠깐 들렸다 가자신다. 그곳에 가니 아저씨들이‘늦었네그려. 대포라도 한잔 해야지’하며 자꾸만 아버지의 소매 자락을 잡아당겼다.
“우리 꼬맹이 신발 사 신겨야 하네.”
하면서도 아버지는 매몰차게 잡아떼지 못하고 끌려가셨다.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포 집 마루에 걸터앉으셨다. 아는 사람들이 자꾸만 모여들었다. ‘이러다 신발도 못사는 게 아닐까, 차라리 어머니가 순순히 사 준신다고 했던 색동고무신이나 받을 걸 그랬나.’조바심이 났지만 자상하기보다는 무서웠던 아버지라 말도 못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니 아부지 술이라믄 지고는 못가도 먹고는 간단 양반인데 그 술 다 뿌리치구 오신 것 보니 막둥이가 다르긴 다른가부다.”
빨간색 운동화를 사들고 들어서니 어머니가 신기한 듯 말씀하셨던 장날의 기억이 떠올라 함께 온 이들에게 말했다.
“오늘이 마침 포천 장날인데 장구경이나 하고 갈까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한내천 군내다리 둑방으로 올라가니 정말 장터가 있다. 해가 설핏하니 서쪽으로 기울고 있는 때라 설까, 생각했던 것 보다 조촐하였다. 할머니 앞의 무더기 무더기 놓인 고사리, 취나물, 그리고 검정콩… 몇 가지를 사들고 차에 올랐다. 왁자지껄 유쾌한 웃음소리 뒤로 내내 가슴이 싸아한 건 왜일까.
조귀순씨 프로필 1960년 가산면 우금리 출생 수필가. 자유문학추천. 동인수필집 "애기똥풀" 부천복사골문학회회원.민족문학작가회의 부천지부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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