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글자에 즉(卽)과 기(旣)라는 글자가 있다. 卽과 旣는 닮았지만 뜻은 전혀 다르다. 卽은 밥그릇[食]의 뚜껑을 연 형태인 급(皀)과 꿇어앉은 모습인 절(卩)의 합자로 밥그릇 앞에 앉아 막 식사하려 한다는 데서 ‘곧’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旣는 급(皀)과 고개 돌린 모습인 기(旡)의 합자로 밥그릇의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식사가 끝났다는 데서 ‘이미’라는 뜻으로 쓰인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득권층(旣得權層)이란 말은 여기서 따온 것이다. ‘이미 권리를 얻은 계층’이라는 뜻에서 그리 말하는 것이다.
요즘 언론(言論)에 자주 오르내리는 양극화(兩極化)란 ‘극에서 극을 간다’는 말로 엄청난 빈부격차(貧富隔差)를 이르는 말이다. 가난한 사람과 잘사는 사람의 차이가 극과 극을 갈 정도로 너무 벌어져 있다 해서 그리 말하는 것이다. 잘사는 사람은 너무 잘살고 못사는 사람은 너무 못살고 있다 해서 그리 말하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民主主義)와 시장경제(市場經濟)라는 체제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현상(社會現象)이다.
민주주의는 사유재산(私有財産)을 인정하는 사회제도이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인정해주고 보장(保障)해주는 제도이다. 그래서 개인이 주체가 되고 민(民)이 주가 된다. 그래서 민주주의이다. 시장경제는 경쟁(競爭)을 통해서 상거래를 하는 상제도(商制度)이다. 품질로 경쟁하고 값으로 경쟁하는 상행위(商行爲)이다. 이러한 상거래를 통해서 이윤(利潤)을 추구하는 제도이다. 개인이 주체(主體)가 되고 경쟁이 요체(要諦)가 되는 제도가 바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표출된 것이다.
물론 양극화 현상은 극복(克服)되어야 한다. 이유는 이러하다. 시장은 손님이 있어야 한다. 물건을 사고 팔아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수요자(需要者)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수요자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무리 좋은 물건을 내놓고 값을 깎아준다 해도 사고 팔아줄 사람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국은 문을 닫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어 일반 서민(庶民)들이 물건을 사고 팔아줄 수 있는 구매력(購買力)이 떨어지면 시장은 고사(枯死)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서민들을 말하고 서민경제를 말하는 것이다. 서민들의 생활이 넉넉해야 구매력도 생기고 경제도 발전하는 것이다.
기득권층이 각성(覺醒)해야 하는 이유이다. 너도 잘 살 수 있고 나도 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摸索)해야 한다. 상호공생(相互共生)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라는 말이 있다. 독점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독과점(獨寡占)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독과점하게 되면 결국 나중엔 패망의 길로 접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재래로 상도의(商道義)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이윤을 추구하는 상인이라도 지켜야 할 선(線)이 있고 법도(法度)가 있다는 말이다. 남는 장사라 해서 모든 것에 손을 뻐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요즘 정치권에서 복지(福祉)가 화두로 회자(膾炙)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공엽불(空念佛)이 되지 않을가 걱정들이다. 뒷간에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필요한 권리를 손에 쥐기 전 까지는 이해 당사들과 사이가 좋다가도 일단 그것을 손에 쥐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안면(顔面)을 몰수 한다. 그래서 걱정들을 하는 것이다.
물론 제도가 중요하다. 법으로 선을 그어놓아야 탐욕(貪慾)과 비리(非理)를 제어할 수 있다. 발본색원(拔本塞源)할 수 있다. 그렇다고 기업하는 사람들의 의욕(意慾)을 떨어트리고 산업을 위축(萎縮)시켜서는 안 된다.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기업이지 정부나 공직자(公職者)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을 일으켜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생활고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돌보도록 분위기를 쇄신(刷新)해야 한다. 정부가 할 일이다. 기득권층도 자숙(自肅)해야 한다. 기득권층은 강자(强者)이다. 자신의 배가 부르다고 종의 배고픔을 몰라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