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에 갔다 돌아온 김 상사 철이 아버지가 매우 신기한 전자 제품을 사 가지고 오셨습니다.
네모 번듯한 기계인데 이름이 녹음기랍니다.
우리들은 서너 명씩, 대여섯 명씩 떼를 지어 철이 아빠가 군부대에서 퇴근할 때만을 기다려 철이네 방에 들어가 녹음기 구경을 하였습니다.
“아, 마이크를 시험 중입니다.”
“그것 참 신기하기도 하지…”
이게 웬일입니까? 정말 희안한 일입니다. 이 조그만 기계가 사람이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합니다.
마이크라는 뭉퉁한 몽둥이에 대고 "아, 아."하면 그대로 크게 울려 나옵니다.
우리들이 노래로 녹음을 하면 신기하게도 우리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저장되었다가 나옵니다.
정말 신기한 물건도 다 있습니다.
우리들이 낄낄거리는 소리, 기침하는 소리, 욕하는 소리….
무엇이든 녹음을 하였다가 되돌려 틀면 그대로 나옵니다.
너무도 신기하였지만 우리 농사꾼의 자식들이 넘볼 대상은 아니듯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달라고 조르지 않고 그냥 라디오로 만족하였습니다.
그런데 녹음기의 인기도 잠시뿐이었습니다.
충청도 서산에서 한 아저씨가 이사를 와서 제붕이네 집에 세들어 살았습니다.
그는 어느 날 22인치 큰 흑백텔레비전을 한 대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우리 동네로서는 최초의 텔레비전입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사람 활동하는 것이 다 보이다니….
아저씨는 처음에는 5원의 입장료를 받고 사람들을 방으로 들여보내 텔레비전을 시청하게 하였습니다.
김일, 천규덕, 여검부, 장영철이 나오는 레슬링이이 나올 때면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농촌에서 현금을 내고 텔레비전을 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른들은 장욱제, 태현실이 나오는 "여로"를 좋아하십니다.
농촌이라 콩이나 팥은 광에 있어도 돈 5원이 주머니에 있는 날이 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아저씨는 텔레비전을 사다 놓고 얼마 되지 않아서 구경꾼이 많아지자 입장료를 10원으로 인상하였습니다.
저녁마다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수지맞는 장사인가 봅니다.
아이들은 고철을 팔거나 계란을 가져와 텔레비전을 보았습니다.
엿이나 막대사탕, 눈깔사탕을 사먹는 대신 문화생활을 택하는 것입니다.
"아저씨, 5원으로 보면 안돼요?"
우리들은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나고, 돈이 모자라 들어갈 수 없는 때가 많았습니다.
"안뒤아!"
아저씨의 대답은 한 마디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텔레비전 보는 그 집을 "안뒤아네"라 불렀습니다.
안뒤아 아저씨의 수법은 날로 교묘해지고 악날해 갑니다.
그는 밭을 일 년에 쌀 두 말 주는 조건으로 도지로 얻어 집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시멘트를 사다 마을 회관 건너편 모래사장에서 직접 블록 벽돌을 찍었지요.
마을 회관 건너편 모래사장은 개울가로 홍수가 있던 곳이어서 입자가 고운 모래가 많았습니다.
안뒤아! 아저씨는 우리들에게 TV를 보여 주는 조건으로 갖은 일을 시켰습니다.
모래를 다섯 리어카 파오면 TV를 하루저녁 볼 수 있는 자격을 주었습니다.
자갈 다섯 리어카 주워 오면 TV시청 하루 저녁, 찍어 놓은 블록 벽돌에 물 조리로 한나절 물을 주면 이틀 저녁, 하물며 자기의 아들이랑 한나절 놀아주면 하루 저녁, 밤 한 됫박 가져오면 하루 저녁, 아들에게 줄 별 딱지 오백 장 가져오면 하루 저녁, 유리구슬 백 개 가져오면 하루 저녁, 벽돌 다섯 리어카 나르면 하루 저녁을 TV를 보는 자격을 주며 우리들의 노동력과 시간, 그리고 장난감마저 착취하였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학교에 다녀오면 날마다 집 짓는 현장에서 머슴처럼 지내며 TV를 볼 수 있는 날짜를 쌓아놓고 사는 아이도 있습니다.
새참으로 앙꼬빵도 얻어먹고, TV도 보는 "꿩 먹고 알 먹고" 인줄로 알고 힘든 노동에도 으시댔지만 사실은 안뒤아 아저씨는 어린이의 노동력을 착취한 셈이지요, 우리들은 안뒤아 아저씨의 노리갯감이나 다름없습니다.
안뒤아 아저씨는 흑백텔레비전 한대로 집을 짓고 돈을 벌어 몇 년 뒤 그의 고향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그 안뒤아 아저씨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어른들의 상술이 아이들을 울립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