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목표 지향적이어서 자녀들이 실수 없이 빠른 속도로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해 주기를 바라지만 이 시기에 놓인 자녀들은 오히려 시행착오와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숙해진다. 부모는 뛰면서 자녀들이 따라와 주기를 바라지만, 자녀들은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경험하고 싶어한다. 이것이 바로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가로막힌 생각의 장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벽은 뛰지 못하는 자녀에게 뛰라고 소리지를 때마다 조금씩 높아져 간다. 함께 걸으면서 확인하고 생각의 높이를 자녀 쪽으로 낮춰주는 것이야말로 벽을 허무는 가장 기초적인, 그러면서도 가장 지혜로운 길이다.
퇴근해서 돌아온 맞벌이 부부라면, 아이에게 ‘오늘 무엇을 배웠느냐’ 고 묻기 전에 ‘오늘 너에게 색다른 일은 없었니?’, ‘오늘 한 일 중에 뭐가 제일 신났니?’ 부터 물어보자.
“우리 철수, 오늘은 뭐하고 놀았니?”, “텔레비전 봤어요.”, “음, 그래. 어떤 프로그램을 봤는데?”, “숙제가 있어서 TV프로는 못 보고 교육방송을 봤어요.”, “저런, 놀지도 못했겠구나. 공부한다고 힘들었지. 텔레비전 본 것 말고 뭐 색다른 일은 없었니?” “음~ 뭐가 있었더라…….”
우선 자녀의 행동변화에 초점을 맞추면 문제행동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 구체적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행동 변화를 유도하기 전에 먼저 아이의 사고방식부터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을 수도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생각의 변화’가 어려울 때는 순서를 바꾸어 ‘행동 의 변화’부터 유도해 보는 것도 방법 일 수 있다. 보편적으로 부모는 ‘생각이 변해 야 행동이 변하지’라고 생각하여, ‘열심히 공부해야 성공할 수 있단다.’, ‘엄마 아빠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니까 너도 알아서 열심히 해야지.’ 라고 곧잘 말하는데 이것은 오히려 자녀에게 심리적인 압박감만 줄 뿐이다. 그러나 ‘말이 변하면 행동이 변한다’는 생각으로 ‘네가 요즘 과학에 관심이 많은가 보더라. 엄마가 과학에 관련된 책이라도 몇 권 사줄까?
언제든지 얘기하렴. 엄마도 돕고 싶으니까.’라고 말해 보자.
자녀에게 잔잔한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집에 들어와 보니 방안은 아수라장이고 동생하고 다투고 있다. 아니면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하거나 만화책이나 오락을 하고 있는 자녀를 보게 되면 대부분의 부모는 고함을 지르거나 화를 터뜨린다.
이때 자녀는 주섬주섬 주변을 챙기기는 하겠지만 이 상황은 또다시 반복될 것임에 틀림없다. 아이에게 생각의 변화를 심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이해시키지 못하고 당장 명령만 늘어놓았기 때문에 아이는 아무 생각없이 그 명령에 따를 뿐이다. 퇴근하여 집에 들어왔을 때 자녀가 설사 텔레비전에 빠져 있다고 해도,
“무슨 재미있는 거라도 하니?” “예.”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이 아빠보다 철수를 더 기쁘게 만들까? 이거 질투 나는 걸.” “요것만 보고요.” “그래, 그것만 보고 아빠하고 얘기하자.” “아, 아니에요. 됐어요. 그만 볼래요.” 라고 한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자녀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행동에 대한 직접적인 지적이나 충고만 앞세우지 말고, 자녀의 말이나 표현이 변화될 수 있도록 부모가 먼저 시선을 다양화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게 된다면 자녀는 스스로의 행동에 문제가 있음을 시인하고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서로 바빠서, 평소 자녀에게 잘해 주지 못한다는 자책 때문에 이런 일 들을 한꺼번에 표현하려고 하거나, 주말 나들이 혹은 선물로 보상 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으로는 그다지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특히 늦은 귀가 후 지치고 피곤한데도 자녀의 숙제는 한번 봐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자 는 아이를 깨우거나 때 아닌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 역시 역효과를 가져올 뿐이다. 또 부모가 자녀문제를 두고 서로서로 떠미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엄마와 아빠의 애정과 역할이 골고루 이루어지도록, 균형있는 보살핌이 선행될 때만이 아 이도 함께 따라 갈 수 있다. 그렇게 못할 만큼 피곤하거나 불가피한 경우라면 자녀에게 그 상황을 이야기하고 자녀와 함께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엄마가 오늘 회사에서 일이 많아서 너무 힘들거든. 철수를 도와줘야 할 텐데 엄마가 이렇게 피곤해서 어쩌지?” “그렇다면 제가 한 번 더 해보고 안되면 엄마한테 부탁할게요.”
“그래, 엄마는 철수를 믿으니까 철수도 할 수 있을 거야.” “그 대신 내일 아침에 엄마가 봐줄게.” “예.” “그러려면 철수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할게요.” 부모는 자녀가 오늘 어떤 내용을 배웠는지 확인하는 것보다, 자녀에게 신뢰감을 주면서 어떤 도움이 구체적으로 필요한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그러는 동안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다음 변화를 위해서 서로가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를 함께 탐색한다면 문제는 한결 가벼워진다. 필자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다.
밤 10시경 집에 귀가했는데 큰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 “오늘 잘 놀았니?”, “지금 피곤하세요?”, “많이 힘들지, 하루 종일 일했으니까. 그런데 뭐 부탁할 것이라도 있니?”, “음…수학 시험문제 좀 내주세요.”, “지금? 왜?”
“학교 숙제인데...아빠가 시험문제를 20문제 만들어 주시면 시험 봐야 하거든요.”
“좋아, 아빠가 씻는 동안만 기다려.”, “예.”
사실 ‘지금까지 숙제도 안하고 뭐하고 놀다가 문제를 내달라고 하느냐’고 야단을 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꾹 참고 한두 가지 질문을 던지는 동안 화는 누그러들었다. 부모가 하는 일이 아무리 힘들다고 하더라도 부모의 역할을 외면할 수 없듯, 맞벌이 부부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자녀교육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 보통 부부에 비해 곱절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늘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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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4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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