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백성이란 나라의 근본이고 임금의 하늘이다’

이효종 포천한시사 대표

조선경국전이란 이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고 개국의 이념과 통치철학을 명문화하여 극명하게 제시한 500년 사직의 마스터플랜이다. 조선경국전이 간행된 시기가 14세기말인데 이 시기에 지구상에서 이토록 뚜렷한 건국이념과 통치철학을 명문으로 밝히면서 출범한 국가는 없었다.  이는 조선왕국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三峰 鄭道傳)이 찬진(撰進)한 것이다.

이 경국전은 군도(君道)와 치도(治道)에 대한 것을 저술한 것으로 민심은 천심이고 그렇기 때문에 민심을 얻은 덕이 있는 사람만이 천명(天命)을 받아  천하를 통치할 수 있는 것이라 하였다.  만일 군왕이 민심을 얻지 못한다며 천명이 덕 없는 통치자로부터 덕 있는 통치자로 옮아가게 되는 것이다.

 조선경국전에는 다음과 같이 다음과 같이 백성(民)과 나라(國)의 관계를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대개 임금은 나라에 의존하고 나라는 백성에 의존하는 것이니 백성이란 나라의 근본이고 임금의 하늘이다.’

14세기에 이처럼 주창한 나라는 이 지구상에서 우리밖에 없었다.  임금을 대통령으로 바꿔놓기만 하면 현대 민주국가의 정치 원리에서 그대로 적용해도 아무 손색이 없는 명제요 진리인 것이다.

서양에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시대의 뛰어난 정치사상가인 니콜라 마키아벨리(1466~1527)가 있었다.  정도전과 마키아벨리는 다같이 현실 정치에 입각해서 주장을 펼친 현실주의적 정치사상가이다.

정도전은 백성을 위한 윤리적 민본(民本) 정치사상을 전개시켰다고 한다면 마키아벨리는 군주를 위한 국가 이성의 비윤리적 내지는 탈 윤리적 정치사상을 내세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정도전은 14세기 사람이요 마키아벨리는 16세기 사람이다.  15, 16세기에 서양에서도 정도전에 비길 만큼 민주정치의 이론을 주장한 스케일이 큰 정치사상가는 없었다.  서양에서 마키아벨리를 최상의 정치사상가라고 하고 있으니 우리 조선왕국의 정치가 얼마나 앞서 있는지 알 수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한 왕조가 500년씩이나 고유문화를 유지 발전시키면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예는 어느 나라 역사에도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인류 역사상 하나의 기적과 같은 일로서 실로 찬탄의 대상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긍정적인 요소가 있었다고 보아야 하는데 그 긍정적인 요소는 조선경국전에 명시된 도덕적인 정당성과 윤리적인 합리성이 실천된 것이기 때문이다.

강상(綱常)과 윤기(倫紀)를 떠나 어떠한 무력으로 위협하여 국가를 지탱한다 하더라도 한 세대를 넘기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예는 세계사에서 입증되고 있다.
정치적으로나 왕조사적으로나 고려와 조선왕조의 교체는 하나의 역성혁명이며, 사상적 측면에서 본다면 고려왕조에서 조선왕조로의 교체는 보수 불교사상과 신흥 유학인 성리학의 대결에서 판정승을 거두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조선왕조는 바로 이 성리학을 건국이념과 통치철학을 내세우며 등장하였다.  개국에 즈음하여 조선의 기본정책을 밝힌 것이 정도전에 의해 추진된 조선경국전이다.
성리학의 기본적인 이념을 요약하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상(五常)이다.  조선왕조는 이 오상을 이념으로 삼고 통치철학으로 삼은 것이다.  이 이념과 통치철학을 살펴보면 우리의 문화유산 속에 아직도 남아있다.  그 유산이란 다름 아닌 조선조의 수도인 한양에 경복궁을 세우고 동서남북에 4대문을 설치하였다.  우리가 동대문이라고 속칭하는 흥인지문(興仁之門), 속칭 서대문은 돈의문(敦義門), 속칭 남대문은 숭례문(崇禮門), 속칭 북문은 홍지문(弘智門)이다.  그리고 종로 네거리에는 보신각(普信閣)을 세우고 여기에 종을 매달고 이 종을 울리는 것에 맞추어 인의예지의 4대문을 열고 닫았다.  인간의 참다운 본성의 최고의 가치를 사방의 각 대문이 하나씩 현창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왕조의 건국이념과 통치철학이 이렇게 투영되어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생 조선국은 무력으로서가 아니라 인의예지신으로 백성을 다스려 나가겠다고 하는 통치자의 확고한 의지가 이렇게 표명된 것이다.  참으로 차원 높은 개국의 변이 아닐 수 없다.

보신각의 종을 흔히 절에 있는 여느 종들과 다름없이 생각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우선 이 세상의 모든 종은 종잡이 마음대로 칠 수 있지만은 보신각 종은 몇 번 울리느냐 하는 것은 엄격한 규정이 있다.  한 밤이 되어 4대문을 닫는 인정은 28번을 쳤다.  28이라는 숫자는 하늘의 별자리 28수에서 나온 것이고 새벽이 되어 4대문을 여는 파루는 33번을 쳤다.  이 33이라는 숫자는 동양 고대의 우주관을 반영하여 옛날 사람들은 동서남북 사방 8계층위에 하늘이 있고 그 가운데 이 모두를 지휘하는 하늘의 견선성이 있다고 보았다. 이를 모두 합치면 33이 된다.  33천이란 곧 우주 전체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당시 2천만 민족 전체의 뜻을 표현한다는 것을 함축한 것이다.

그러면 당시 이 종이 33번 울릴 때의 의미를 정리해 보자.
신생국가인 조선은 무력이 아닌 인의예지신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교화할 것을 33천 곧 우주 전체에 맹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치자의 의지가 종이 울릴 때 마다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14세기말 이 지구상에서 어떤 나라 어떤 전제 군주가 이렇게 거룩한 건국이념과 철학을 가지고 등장한 예가 없다. 
조선왕조가 500년이나 사직이 유지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바로 이러한 도덕적 정당성과 윤리적 합리성 위에서 출발하였고 그리고 그러한 이념과 철학이 상당기간 실천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교문화가 크게 발달하여 수많은 문학자, 충신, 열사, 명인들이 배출되어 한민족의 우수성이 발휘되었다.  세계의 유일한 조선왕조실록과 조선경국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빛나는 문화유산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알고 역사에 대한 외경심(畏敬心)을 갖고 옳은 일은 오래 전하여 실행케 하고 옳지 않은 일은 되풀이 하지 않게 하여 살아 왔기에 우리를 예의바른 민족이라 하여 예의 동방이라는 지칭을 받아왔다.  그런데 근세에 와서 무분별한 와래 사상의 유입으로 우리 역사를 소홀히 하여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문화와 민족혼이 사라지고 있으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십여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를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우수 민족이라고 칭찬을 받으며 국민소득 만불을 이루어 세계의 각광을 받았다.  우리와 같이 만불 소득을 이룬 다른 나라들은 지속적인 발전을 하여 국민소득이 배 이상 늘었는데 우리는 십유년간을 제자리에 맴돌고 있다.  그렇게 된 까닭을 지난 10월 중순경 일간신문에 국가경쟁력과 관련하여 기사가 대서특필된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우리 모두 대오 각성하여야 하겠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노사협력체제는 93개국 중 92위이고, 정치인의 신뢰도는 104개국 중 85위로 조사되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쟁력은 작년의 23위에서 11위가 떨어져 39개국 중 35위 이며 은행의 건전성은 77위로 기록되어 있다.
매일같이 거리를 누비는 파업 투쟁과 권력을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정치인들과 고위 공직자들은 우리 조선왕조실록을 좀 읽어 옛 우리 정치인들의 선비정신을 배웠으면 한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는 우리의 국사교육을 말살한 후유증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국민들의 머리는 세계의 최상위이다. 
국가경쟁력에서 ▶정보통신분야 인터넷사용자 분야는 조사대상 104개국중 2위▶학교에서 인터넷 접속율 3위▶인터넷서비스 업체의 품질 3위▶기업의 R&D 투자 14위로 기록되어 있다.

두뇌를 쓰는 데는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머리는 좋은 데 역사를 배우지 않아 강상(綱常)과 윤기(倫紀)를 잃어 국가관이 정립되지 않아 산업이나 정치 발전이 뒷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사관을 정립하여 대한민국의 긍지를 살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