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문화 급속도로 발달하고 발전하는 현대사회는 생활의 편리한 만큼 여러 가지 부작용도 만만치가 않다. 의술은 신기술과 신약이 개발됨에도 환자는 점점 증가추세다. 병원에 가보면 모든 병실은 환자들로 초만원이다. 환자 수요보다도 병실은 턱없이 부족하다. 응급실 대기환자는 줄 서 있다. 초조하게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 얼굴에는 희망보다는 짜증에 찌들어 있다. 링거 병을 꽂고 초조하게 순번을 기다리는 환자들의 심정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언제쯤 침대가 납니까?” “어제 오후에 급히 실려 온 환자가 지금 막 응급실 안에 입실했습니다.” 환자보다 환자 가족들이 더 답답하고 초조하다. 오전 9시 응급실에 도착하여 밤 10시가 되어서야 겨우 응급실 침상에 누워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간 수치가 위험수위에서 오르내린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왠지 불안하다. 응급실에서 혈청을 수혈받고, K 비타민과 영양제를 공급받은 다음 하루를 꼬빡 지나서야 병실이 확보되었다.
아들은 얼굴뿐만 아니라 눈동자, 손발, 배 등 온몸이 노랗다. 검사결과 수술할 정도는 아니지만, 간이 많이 손상되었단다. 간 손상 원인은 항암주사 부작용일 수도 있고 B형간염이 갑자기 증폭되어 간 수치가 2000까지 올랐다는 얘기였다. 정상인 사람의 간수치는 100~200이다. 계속 입원하여 안정을 취하면서 경과를 보자는 의사 선생님말씀에 그렇게 하는 수밖에는 별도리가 없었다. 아들은 며칠만 입원하면 퇴원할 줄 알았는지 언제쯤 집에 돌아갈 수 있는지 계속 묻는다.
옆 침상에 누워있는 환자들을 곁눈질하여 살펴본다. 개중에는 중환자들도 있다. 병실에 형광등 불빛이 꺼지고 환자들의 신음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려온다. 침상 앞에 붙어 있는 환자가 지켜야 할 의무사항과 행동사항의 활자가 눈에 들어온다. 환자를 돌보는 환자 가족들의 진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병실이기도 하다. 나도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간호하지 못한 작은 실천적 사랑을 해본다. 아들의 발바닥을 주무르고 배를 쓸어주고 화장실 갈 때 부축하고 아들과 함께 하나가 되어본다. 젊은 녀석의 시련이 참 기구하구나, 이런 큰 시련을 우리 아들에게 안겨주었나 말이지. 링거 병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수액이 어머니의 젖을 받아먹는 갓난아이 같다는 생각에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립다. 창문 밖에 어둠 속에서 도심의 불빛이 황홀하다. 간혹 간호사의 음성이 나지막하게 들려온다. “체온 한 번만 확인하겠습니다.” “불편한 데는 없나요?”
<124병동>
이별은 인연처럼 묘연하고 만남은 악수처럼 반갑다 고마워, 거기에 있어서…. 아들아 젊은이의 한 고단함이 체온처럼 아리다 못해 링거 방울처럼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어둠 안에서 다가오는 절박한 기적 소리를 보았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꽃잎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별이 서러운 것은 만남의 질투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모르면 모를수록 행복하다마는 이별 같은 인연으로 만남 같은 인연으로 어두운 밤에 숨이 찬 기적 소리를 기다리는 124동 병실들 히터처럼 따스하고 형광등 불빛처럼 환하다 백합꽃 같은 사랑이 피었다 지면 긴 겨울은 지나가고 매몰찬 신음만큼 씨앗냄새는 흥건하게 이별과 만남을 배웅하고 마중하겠지 추억의 124병동 안으로
이별에 관해 의문이 있다 어디에도 죽음은 보이지 않는다 124병동 안에는 없다 창밖에 어둠이 노래하고 별이 총총한 걸 봐서 나는 죽음을 모르는 무식한 자다 죽음 그 자체를 본 적이 아직 없기에
자정이 넘은 124동 16호 병실 안에는 기적 소리를 기다리는 사람과 사람들이 모여 있다. 신음소리가 마음의 기적 소리로 병실 가득히 울려 퍼지기를 기도해본다. “나는 죽음을 모르는 무식한 자다.” “죽음 그 자체를 본 적이 아직 없기에,” 불안과 공포보다는 희망에 주사위를 던지겠다. 다음 주에는 퇴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상적인 간 수치로 돌아오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다리가 저리고 발바닥이 불편해도 참아야지 어찌하겠어,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