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버지 또는 남자들의 신세가 고달프다. 아침에 밥 차려달라는 남자, 아내한테 혼나면서 눈 치켜뜨는 남자, 감히 퇴직금 어디 썼냐며 추궁하는 남자 등 간 큰 남자 시리즈는 이미 진부한 우스개가 된지 오래고, 세계적 경기 불황에 가장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탓에 위축되어 사는 남자가 한 둘이 아니다. 아이들도 공부에서 여학생들이 월등 우수한 성적을 차지하여 남학생들의 기를 꺾어 놓는 것은 하루 이틀 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죽하면 ‘아나기’(아줌마는 나라의 기둥)라는 여성단체가 '남편 & 아버지 기 살리기 클럽' 창립총회를 열고 "남편과 아버지의 권위를 바로 세우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을까.
‘남성연대’라는 단체를 만들어 차기 정부 인수위원회 계획에 '여성부 폐지'를 목표로 활동을 시작한 단체도 있다. 그리 큰 조직을 가진 것은 아닌 모양이지만 이 단체의 대표는 남성 차별에 대한 반대, 남녀평등이란 말 대신에 인간평등을 구현하고 남성의 권리를 회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일인 시위까지를 벌이고 있다 한다(조선일보, 2012.10.31).
남자들의 위상이 이렇게까지 추락하게 된 것은 왜일까? 쉽게 생각하면 일음일양(一陰一陽)의 원리대로 성하면 쇠하기 마련인 천지자연의 이치 때문이다. 그러나 이 원리도 성하고 쇠하는 자연 환경의 변화 때문에 성립하는 것이다. 이를 살피면 요즘은 여성이 활약하기 좋을만큼 삶의 조건이 많이 변하였다. 기계.기술이 엄청 발달하여 모든 것이 머리로 해결하면 되는 만큼 남자들의 근육이 소용없어진 삶의 조건이 그 중 으뜸이다. 남자들의 불뚝성, 차분하지 못한 과도한 동작성 등은 오히려 컴퓨터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시대에 적응의 장애가 될 뿐이다. 사정이 이러니 미국의 한 여성 저자가 『남자의 종말』이라는 책을 내놓기까지 한 것도 이해된다.
시대의 추이가 그렇다 하더라도 남자의 권위, 남성성이 그야말로 종언을 고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고 바람직스럽지도 않다. 왜냐하면 신체구조부터 비롯해 감성·사고의 특성에 이르기까지 남녀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른 양성(兩性)이 조화를 이루고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사회가 온전하게 굴러간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요즘 아버지 또는 남자의 권위 실추는 우리 사회가 직면하는 여러 가지 문제 발생의 중요한 해결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그림자를 드리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다양한 사건.사고로 시끄러웠는데 특히 청소년 범죄나 묻지마 살인 같은 것은 아버지들의 권위가 가족 내에서 실종된 현실과 관련이 깊다는 생각이다.
라캉이라는 정신분석학자는 아버지를 사회의 규범, 금기, 규율을 상징하는 존재로 규정한다. 아버지를 통하여 아이들이 사회의 규범과 체계를 받아들이는 사회화 과정을 비로소 완성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남녀평등이 대세인 요즘 시대에 아버지에게 너무 과한 위상을 부여한 것이 아니냐고 반론을 할 수 도 있겠지만 남성성이 좀 더 수직적인 위계나 피아 구분에 익숙한 것을 생각하면 이는 아직도 유효한 규정이다. 땅에 떨어진 남편과 아버지의 권위가 가족 갈등과 가정의 해체, 이로 인해 끔찍한 범죄도 끊이지 않는 요인이라며 아버지와 남편 기살리기 에 나선 ‘아나기’의 현실 진단은 이런 측면에서 정확한 것이다.
요즘 40,50대에 이른 중장년들은 어린 시절 모두 곁에 가기 어려운 무뚝뚝한 아버지, 집에서는 거의 전횡적 권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의 권력이 서슬 푸르던 시대를 살아온 것이다. 좋게 말하면 엄부의 시대를 거쳤는데 그때는 학생이 교사에게 대들거나 때리는 사건 등이란 희소했고, 성폭력, 묻지마 살인 사건 등도 드물었다. 물론 사회적 스트레스 요건이 요즘과 달랐기 때문에 엄한 아버지의 존재 여부로 이런 양상의 가늠자를 삼는 것은 무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엄한 아버지에 대한 반발 탓에 너무 물러터져 버린 요즘 아버지들이 사회의 규율.규범을 우습게 아는 자녀를 양산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즘 와서 그때의 엄부를 회복하자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지만 적어도 요즘 아이들은 어른 무서운 줄 모른다는 개탄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자녀 사랑에도 금도를 행하는 것은 분명히 요구되는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