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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이중희] 역사기록의 정도는 동호직필(董弧直筆)이어야 한다


이상창 기자 / 입력 : 2012년 11월 05일
↑↑ 이중희 한국정책개발원 경기도지회장,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포천신문 자문위원
ⓒ (주)포천신문사
중국의 춘추시대 진(晉)나라에는 포악무도하고 아첨을 좋아하는 어리석은 진령공(晉靈公)이라는 임금이 있었다.

진령공은 백성들의 수입을 거의 세금으로 거둬들이고 형식적인 조회를 마치고나면 아첨에 능한 도안가라는 신하를 데리고 많은 재정을 들여 만든 호화로운 도원이라는 꽃동산에 가서 궁녀들과 음탕한 희학질을 하는 것이 일과였다.

그 짓도 심심해지자 호화로운 3층 누각을 세우고 그곳에 올라가서 지나가는 백성들을 탄환이라는 총으로 쏴 백성들이 맞고서 눈알이 터지는 등 하여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잔인무도한 왕이었다.

그러면 도안가는 간사한 웃음으로 참 잘하셨다고 하면서 아첨하며 주색잡기만 권하는 간신배였다. 또 다른 신하가 있었으니 그는 모든 일에 공명정대하고 임금에게 미움을 살 지라도 바른 말을 하는 조둔이라는 충직한 정승이었다.

조둔 정승이 진령공에게 진언한다.

“상감께서는 어질고 능력 있는 선비를 예로서 대우하시고, 간신들을 물리치시고 나랏일에 힘쓰시는 동시 백성들을 사랑하고 친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진령공은 충언을 받아들이기는커녕 도리어 조둔을 의심하고 시기하고 미워했다. 도리어 간신 도안가와 함께 조둔을 없애버리기로 계책을 꾸몄다.

즉, 궁궐에 무사들을 매복해 놓고서 조둔을 초청하며 술을 권했다. 조둔 정승의 말을 따르겠다고 하면서 술이 몇 순배 돌아간 후에 진령공이 신호를 보내자 무사들이 튀어나와 조둔을 공격할 때 조둔의 충성스러운 신하 제미명이 사력을 다하여 싸우는 사이 조둔은 궁궐을 벗어나 도망치는 도중에 저 편에서 말을 달려오는 조카 조천을 만났다.

조둔은 그간 경과를 설명하고 목숨이라도 건지려고 다른 나라로 도망치는 중이라고 말했다.

조천이 말한다.

“다른 나라로 도망가지 마시고 국경근처의 수양산에 깊이 숨어 계시면 제가 궁궐에 들어가서 모든 것을 조처하고 소식을 전하겠으니 그때 다시 결정하시지요.”

조둔은 조천과 약속하고 국외로 나가려던 계획을 바꾸어 수양산에 들어가 깊이 숨었다.

한편 진령공은 조둔을 죽이지는 못했지만 바른말 만 하는 조둔이 없어지니 통쾌하여 거침없이 놀아났다. 귀에 거슬리는 충언은 없어졌고 모두 진령공의 비위를 맞추려고 아첨하는 신하만 남게 되었다.

조천도 진령공에게 자기삼촌 조둔의 일을 사죄하고 아첨해서 진령공의 신임을 얻어 호위대장이 되어 기회를 엿보다가 도원에서 밤늦도록 잔치를 벌이는 대취한 진령공을 부하를 시켜서 쳐 죽였다.

그리고 신속하게 조둔에게 기별했다. 조둔은 즉시 궁성으로 돌아와서 새로이 임금을 세우고 나라를 안정시켰다.

그런 어느날 조둔 정승은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에 가서 태사 동호에게 청했다.
“선군의 기록을 좀 보여주오.”

태사 동호는 사간을 정승 조둔에게 보여 주었다. 정승 조둔은 그 기록을 보고 크게 놀랐다, 사간에 기록되기를 “가을 칠월 을축날에 조둔이 도원에서 그 임금 진령공을 죽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조둔 정승은 크게 노하여 태사 동호에게 항의한다.

“태사는 이 기록을 잘못 적었소. 그때 나는 궁궐에서 삼백리나 떨어진 수양산에서 몸을 피하여 숨어 있었소. 어찌 임금이 피살 된 것을 알 수나 있었겠소. 그런데도 그대는 임금을 죽였다는 끔직한 죄를 나에게 뒤집어 씌였구려. 후세 사람들이 이 기록을 볼 때 나를 뭐라고 평하겠소.”

현대 법이론으로 보면 확실한 알리바이가 성립되었다고 할 것이다.

태사동호가 싸늘하고 냉정하게 대답한다.
“그대는 정승의 몸으로서 비록 달아났다고 하나 국경을 넘지 않았고 이 나라 안에 있었소, 뿐만 아니라 그대는 궁궐에 돌아왔으나 임금을 죽인 자를 찾아내어 벌하지 않았소. 그렇다면 조둔 정승이 이 일을 꾸민 것이 아니라고 변명할 지라도 누가 믿겠소.”

조둔이 사정한다.
“이 기록을 고칠 수 없겠소.”

동호는 “옳은 것을 옳다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하는 것이 사관의 직책이요, 그래서 임금도 사관의 기록에 관한 한 간섭을 못하는 것이요, 정승이 나를 죽일 수는 있으나 이 기록은 고치지 못하오”라고 대답한다.

즉 동호는 조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임금을 죽인 죄를 오로지 조둔에게로 돌렸다, 어째서 동호는 이러한 판단을 했을까. 그 이유는 그 당시 진나라 정권을 조둔이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동호는 모든 집권자에게 그만큼 책임이 무겁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임금을 죽인죄를 오로지 조둔 정승에게 돌린 것이다.

후세에 공자님께서도 “동호의 판단은 훌륭했고, 옳은 판단이었다”고 기록하셨다. 이것이 저 유명한 동호의 직필인 것이다.

역사는 그 시대의 집권자에게 언제나 인색하다. 이것이 위정자들과 정치권이 역사를 두려워해야 할 이유인 것이다.

이중희 / 한국정책개발원 경기도지회장,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민주평통 자문위원(포천시협의회 12기 협의회장), 포천신문 자문위원
이상창 기자 / 입력 : 2012년 11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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