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시 연혁 검토위원회는 지난 12일 조선후기 『문헌고략』을 근거로 ‘포천’ 지명사용 시점을 조선 태종 13년(1413)으로 확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번에 지명확정의 근거사료라고 밝힌『문헌고략』은 서문이나 발문이 없어 편자와 간행년도 그리고 간행처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출판물도 아닌 사람의 인기라서 이 기록으로 지명사용시점을 특정하기에는 그 신뢰도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원래 포천지명 사용시점에 대한 논란의 시작은, 지난 2010년 9월 포천 미래 포럼이 발족할 때 처음으로 제기되었으며, 이런 발표와 더불어 포천시는 “포천 600년”을 언론에 홍보하였고, 기념사업을 추진하겠다며 대대적인 행사준비에 분주히 움직였었다.
그러나 포천군지를 비롯한 조선왕조실록, 동국여지승람 등에 기록된 바로는 고려 때부터 포천이라는 지명을 사용한 근거가 제시되어 자료 검증이 필요했지만, 이 과정에서 포천시는 고려시대에 포천이라는 지명을 사용했던 기록을 애써 외면하면서, 연혁위원회에 친분이 있는 학자를 참여시켜 기존의 입장을 변론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포천 600년 사업”은 기존에 포천군지에 연혁내용을 확인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하려다가, 포천군지의 내용과는 다르다는 지적이 나오고 나서야 허둥지둥 자료를 검토하고 위원회를 소집하였지만, 잘못된 내용을 보완하는 과정에서도 반론을 제기한 사람의 의견을 철저하게 배제한 것이 절차적 공정성이 결여되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존에 포천군지의 지명사용 연대가 바뀌기도 전에, 시청 홈페이지에 태종 13년에 처음으로 포천이라는 지명을 사용했다는 내용을 게시한 것과, 2차 연혁검토위원회에서 “1984년 포천군지에 수록된 내용은 당시 군지를 집필한 필자가 추측하여 쓴 것으로 보이며, … 간행시 오류로 판단된다.”는 자료를 배포하여 당시 군지 연혁을 집필하셨던 원로께서, 보관하고 있던 여러 가지 집필근거를 제시하면서 어떻게 추측으로 역사를 기록하느냐고 항의하자, 결국에는 회의 자료를 기안한 담당자가 죄송하다는 사과까지 했었다.
이 “포천 600년” 논란의 핵심은 첫째, 국보 151호이고 조선 태조에서부터 조선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적 진실과 신뢰가 높고, 기록하는 사관의 독립성과 비밀이 보장되어 임금이라도 함부로 열어볼 수 없도록 하였던,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1권 총서 89번째 기사를 비롯한 태종이전 기록에 이미 “포천”이라는 지명을 사용한 기록이 존재한다.
둘째는, 조선 성종 때 노사신·양성지·강희맹 등에 명하여 성종 12년(1481년)에 50권을 완성한 『동국여지승람』을, 성종 17년에 증산ㆍ수정하고 연산군 5년에 개수를 거쳐 중종(中宗) 25년에 이행(李荇) 등에 의해서 증보된 “『신증동국여지승람』 6권 경기 114쪽”에도 고려 공양왕 2년에도 포천이라는 지명을 사용한 기록도 있다.
셋째는, 이번에 지명확정에 근거로 삼았다는 『문헌고략』은 누가 기록을 했는지 어디서 간행을 하였는지를 전혀 알 수 없는 자료이고, 내용면에서도 여러 군데에서 발췌한 책이기 때문에 시기를 특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참고로 학자들이 고서를 번역하고자 학술재단 지원금을 신청 할 때도 작자미상의 기록들은 지원 대상에서 대부분 제외되고 있다.
그래서 이『문헌고략』이라는 자료를 가지고, 이미 고려 때부터 포천이라는 지명을 사용했다는 기록인 『조선왕조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내용을 덮어버리기에는 그 공정성이나 진실성에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넷째는, 기존의 기록을 버리려면 기록을 바꾸려는 사람이 그 잘못된 이유를 명확하게 증명하고 신뢰도 있는 기록을 제시해야 함에도, 공청회가 아닌 토론회나 학술심포지엄을 홍보용으로 개최한 것이나, 여기에 반론을 제시할 사람마저 초청하지 않고 일방통행을 강행한 것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다섯째는. 영평과 포천이 합해져서 지금의 포천이 되었는데, 지명에 대한 언급 없이 단지 관직만 감무를 현감으로 고친지 600년이 되었다고 이것을 기념하려 든다면, 오래전 조상이 관직에서 승진했는데 600년 뒤에 후손들이 승진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소가 웃을 일이 아닌가 말이다,
속담에 “긁어 부스럼”이라는 말이 있는데, 건드리지 말아야 할 곳을 자꾸 건드려 상처가 점점 커지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지명사용시기를 정하는 것은 역사기록에 정확하게 고쳤다는 표기가 없으면 후세에서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는 것이 상식이다.
이렇게 기록자 미상, 편집자 미상의 부실한 근거를 토대로 기존 기록을 지우고 임의로 기록을 바꾸었다가, 후에 사실이 아니라고 다시 내용이 뒤집힌다면 이게 바로 역사왜곡이며, 더구나 그 이유를 축제를 준비하려고 했다면 두고두고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실증할 수 있는 명확한 자료를 규명한 후에 사용 시기를 정해야 마땅할 것이다.
얼마 전 소흘읍에서 노고산이 고모루성이라는 논란을 만들어 주민들을 불편하게 했다가, 『용서고』 기록에서 노고산이라는 지명사용자료를 찾아 제시하여 원래지명인 노고산을 계속 사용하기로 결정한 바 있는데, 이번 “포천 600년”의 경우도 고모루성을 주장했던 동일한 인물과 단체에 의하여 주장되었으니 그 흠결도 노고산의 경우와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번 결과로 1984년 포천군지를 기록한 사람들의 명예는 크게 실추되었고, 이렇게 석연치 않은 역사기록 바꾸기로 특정한 목적이나 의도에 의해 기록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우리역사는 점점 소설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증명되지 않은 미약한 근거로 역사기록 자체를 바꿔서 후손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관계자들의 재검토와 재확인을 기대해 본다.
이희용 / 대진대학교 동양철학 박사과정, 시인, 연극연출가, 제3대 포천시예총회장, 광릉숲생태문학회장, 한국스카우트경기북부연맹 감사, 전 경기도예총부회장, 포천시수능시험장유치추진위원장, 포천신문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