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우리에겐 애증의 대상이다. 아니, 애정보다는 증오를 촉발할 경우가 더 많다. 198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젊은 세대의 일본문화 수용과 DJ 정부 이후 양국 간의 대중문화 교류가 활발해진 데 힘입어 한일 관계는 다소 부드러워지는 듯했으나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반성 부재로 요즘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갑작스런 독도 방문과 뜬금없는 일왕 과거 사과 촉구 등으로 현재 양국 관계는 최악이다.
이런 참에 일본인 과학자가 다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어 착잡한 기분과 함께 우리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들의 자기중심적이고 아집에 찬 자기성찰력의 결여는 비판하지 않을 수 없으나 노벨상 전 분야에 걸쳐 문학상 2회, 의학상 1회, 특히 과학 쪽에서 16회나 이 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우리를 부러움과 함께 엄중한 자기반성으로 이끈다. 과학 쪽에서의 노벨상 수상 실적은 미국에 이어 두 번 째라고 하는 일본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일까? 어떤 상대에게서라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점에서 그들에 대한 적개심을 내려두고 그들의 덕목을 가려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알기에 일본은 원래 과학 강국이요 기술 강국이다. 1901년 노벨상이 첫 시행되던 당시에 이미 일본은 생리의학상 후보에 올랐다는 우리나라 과학자(고려대 화학과 신승준 교수)의 증언도 있지만, 일본이 미국이라는 최강대국을 상대로 2차 대전을 일으킨 것은 애초에 자신들의 과학기술력이 받혀주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태평양을 건너 진주만을 공습한 공군력은 그들의 과학적 우수성과 기계·기술력이라는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일본의 이러한 과학기술력은 다음과 같은 토대에서 가능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첫째, 일본인들은 우리가 깔보는 것처럼 모방의 천재가 아니라 연구와 발견의 천재이다. 일본은 이미 1700년대 당시에 앞서가던 서구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화란학(네델란드 연구)을 자발적으로 시작하여 엄청난 연구와 번역을 통해 서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나라이다. 네델란드를 통해 일본은 서구의 앞선 과학/학문을 마음껏 받아들였다. 1700년대 후반 무렵에야 시작된 우리의 실학이 그나마 권력의 박해로 마음껏 꽃피우지 못했음을 생각하면 그들의 선진성이 새삼 두드러진다. 일제 통치가 시작되면서 그들의 앞선 연구력은 우리들에게도 긍/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데 식민사관으로 진실을 왜곡한 경우도 물론 많았지만 우리 도자기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린 야나기 무네요시, 향가를 처음 독해한 오쿠라 신페이 등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첨예한 연구력을 보여준 사례들이다.
둘째, 그들의 탁월한 기록 정신과 자료 정리/관리 능력이다. 일본에는 우리 향가(鄕歌)에 해당하는 고대가요가 만엽집(萬葉集)이라는 문헌에 4,000수 넘게 전해진다. 이에 비해 우리 향가는 문학적 성격이 뚜렷한 14수에다 찬불가(讚佛歌) 11수를 더해 겨우 25수가 전해질 따름이다. 삼국과 통일신라시대에 노래가 20여수 밖에 불리워지지 않았을 리는 만무하고, 숱한 전란 탓에 기록이 소실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는 우리들의 기록/보존 정신이 그만큼 부족했다는 것을 입증한다. 요즘은 사정이 좀 바뀌었겠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근대 이전의 한국과 중국문학/문화를 연구하기에는 문헌자료의 축적도 측면에서부터 일본이 더 낫다는 평가가 공공연했을 정도이다.
셋째, 일반인들에까지 보편화되다시피 한 일본인들의 탐구 정신이다. 일본인들 중에는 학자가 아닌데도 나름의 분야를 정해 천착하는 풍토가 있는데, 우리나라 사찰에 대해서도 전문가 이상의 연구를 취미 차원에서 해 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방귀연구 전문가가 있다고 할 정도이다. 이들의 탐구욕은 현재에도 여전해서 우리나라의 고지도(古地圖) 연구, 기생 연구를 역시 일본인들이 스타트를 끊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이들의 연구가 이처럼 활발한 것은 어떤 실용적 효용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연구 그 자체의 즐거움을 즐기고자 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번에 생리의학상을 받은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연구 자체의 즐거움이 그를 연구에 매진케 한 동력이라 고백한 데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민족적 특성에 말미암은 것이지만 정부의 확고하고도 꾸준한 지원 역시 이들의 앞선 과학기술력을 가능케 한 원천이다. 야마나카 교수는 이번 수상소감에서 동해 일본대지진과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700억 가까운 거액을 지원해 준 일본 정부에 수상의 영광을 돌렸다. 일관된 신념과 의지 없이 눈앞의 가시적 성과에만 연연하는 정부였으면 이런 성취가 불가능 했을 것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들은 어떤가? 눈앞의 과시적 성과에 연연하여 기초과학은 등한시 하고, 한 쪽에서 일가를 이루어 성가를 얻으면 정치로 투신한다. 한마디로 긴 안목, 긴 호흡의 투신이 드문 것이다. 삼성의 부상에 도취하고 독도는 우리 것이라 감정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과학/문화/경제 대국인 일본으로부터 배울 것은 확실히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