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동네 방앗간에서는 시루떡이 몇 시루나 오고, 막걸리 지점 집에서 온 막걸리 통도 열 통 쯤은 되어 보입니다. 제삿날이나 볼 수 있는 과일이며 옥춘, 그리고 통북어와 돼지 대가리도 보입니다. 오늘 낮에는 어른들이 큰 돼지를 잡았답니다.
단상아래서 마을 이장이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박정희 대통령과 혁명을 같이한 오치성 각하가 오셨다며 박수와 환호성이 우뢰 같습니다.
오치성은 블록 벽돌로 갑자기 만든 단상에 올라 말을 시작합니다.
"에에, 이번에 저를 여러분께서 적극적으로 밀어 주셔서 저는 오늘과 같이 기쁜 이날, 이 동네에 전기불이 들어올 수 있도록 힘을 썼던 것입니다."
오치성의 말에 어른들은 "옳소!"를 연발합니다.
이어 사회자인 이장이 말하였습니다.
"그러면 오치성 각하께서 스위치를 올리겠습니다."
스위치가 올라가자 전깃줄로 열 개나 이어 놓은 육십 촉 백열등이 별천지를 만들었습니다. 광명천지란 이를 두고 한 말인가 봐요?
"이 캄캄한 밤을 대낮처럼 밝히다니?"
모두들 탄복 하였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줄을 서라고 하네요.
사과 반쪽과 돼지고기 몇 점, 소금 쬐끔, 떡 한 조각씩을 시멘트 포대 속지로 만든 봉지에 담아 나누어 줍니다.
줄을 두 번씩 서다 퇴짜를 맞은 아이도 있습니다.
전기가 들어온 이후에 호야장수 길환이 아버지는 장사가 안 되어 옷장수로 나섰답니다.
엄마, 아버지는 저녁 아홉 시만 되면 그까짓 삼십 촉 백열등의 전기세가 얼마나 나온다고 "불 꺼라, 전기세 많이 나온다. 불 꺼!"를 연발하십니다.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자 우리 동네는 그야말로 문명의 세계에 차츰 물들어 갑니다.
우리 바로 아랫집인 제환네 큰집은 라디오를 샀습니다.
"엄마, "검은 십자가" 할 시간이에요. 라디오 들으러 가요."
날이 어둡기 전에 저녁밥을 먹고 나면, 매일 저녁 엄마를 졸라 라디오를 들으러 가자고 합니다.
라디오의 뉴스에서는 "검은 구월단"이라는 단체가 각 나라를 돌아다니며 테러를 한다고 무서워합니다.
"검은 십자가"라는 연속극은 북한의 공작원이 남한을 침투하는 반공사상 고취의 취지를 담은 드라마로 인기입니다.
"방.울.새.야 방.울.새.야 쪼로롱 방울새야 간밤에 코방울 어디서 사왔니 쪼로롱 코방울 어디서 사왔니"
가끔 저녁 다섯 시 어린이 시간이면 김방옥 누나가 나와서 스타카토로 불러야 한다며 라는 동요를 가르칩니다.
"옛날 하구두, 아주 먼 옛날에 김 아무개라는 노인이 살았어요."
이해창 하모니카 할아버지는 신기하고 듣기 좋은 하모니카 연주와 함께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른 아침 마을길에 나서 보면은 언제나 비를 들고 정다운 인사 길에서도 들에서도 한결 같아요, 정다운 그 이름 새마을 아가씨…."
"쥐띠 부인 행차요"라는 주제가에 "쥐띠부인과 새마을 운동을 홍보하려는 "새마을 아가씨"라는 연속극 주제가로 어른들은 논에서 일을 하시면서도 그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엄마는 내가 남의 집에 라디오 들으러 다니는 것이 싫은 모양이십니다.
가을에 농사지어서 준다하고 덥썩 외상으로 한쪽에만 스피커가 있는 라디오를 사오셨습니다.
제환이네 큰집 라디오는 양쪽에 스피커가 있는데 우리 라디오는 한쪽에만 스피커가 있습니다.
우리 라디오가 값이 좀 싼가 봅니다.
그렇지만 너무 행복합니다.
우리 집에도 흔치않은 라디오가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 기분도 잠시 뿐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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