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앙의 한 일간지에 보도된 ‘사이버 따돌림의 실태’라는 기사는 우리에게 깊은 우려와 충격을 금치 못하게 하였다. 우리 청소년들이 사이버 상에서 친구를 가해하고 왕따 시키는 일을 일쑤 저지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욕설로 도배질된 대화를 일상에서 아무 의식 없이 나누고 오히려 그런 식의 대화가 자기들 사이의 친밀감을 북돋운다는 사고를 갖고 있다는 전언은 참으로 우리 청소년의 미래를 걱정케 하는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점들도 내겐 충격이었지만 이 기사를 읽다 보면 편집자나 기자도 간과한, 우리 사회의 문제적 병리 현상을 드러내 주는 내용이 보인다. 어린 초등학교 3학년생이 카카오톡으로 친구를 왕따시키는 게임을 하고 있다가 그런 걸 왜 하느냐고 질책하는 삼촌에게 ‘재밌잖아’라고 답했다는 기사 내용이 그랬다.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행태야말로 요즘 한국 사회 전반에 퍼진 하나의 문제적 병리 현상이다. 재미로 친구들을 괴롭히고 재미로 사이버 상에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재미로 악플을 단다. 폭력과 욕설로 뒤범벅되어 있어도 재미있는 영화면 그만이고, 패륜을 일삼는 막장 드라마도 일단 시청자들의 눈길을 끄는 데는 그만이다. 인터넷에는 재미있다는 이유로 온갖 저속한 동영상들이 떠돌아다닌다. 남성 성기를 지칭하는 비속어가 들어 간 욕설을 해석한답시고 청중들까지 동원해 태연히 강의하는 동영상, 전화교환원에게 할머니 목소리를 가장해 온갖 욕설을 퍼붓는 젊은이들을 찍은 동영상들이 인터넷에 공공연히 돌아다닌다.
가히 ‘재미 제일주의’라 할 만한 이러한 현상이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이유를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치열한 경쟁으로 생존이 문제인 절박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여지를 이런저런 재미에서 찾고자 한 탓일 것이다. 문제는 이런 재미가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삶의 활기를 재충전시켜주는 재미가 아니어서 문제다. 심한 욕설, 악플, 폭력적 영상 등은 왜곡된 가학 심리로 공동체의 건강한 영속을 위협하는 심각한 위해 요인이다.
저속한 동영상들은 더 자극적일수록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기 때문에 그 자극성으로 사람들의 정서와 정신을 깊이 오염시킨다. 요즘 한국 사회의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즐기는 재미는 자신의 정서와 사고가 삭아 들어가는 것인 줄 모르는 그런 재미다. 최근 빈발하는 각종 흉악 범죄도 이처럼 유해성 재미에 정서와 사고가 알게 모르게 부식되어 있는 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병리 현상의 근인을 좀 더 정밀하게 분석해 보면, 위에서 언급했듯이 생존을 위협하는 치열한 경쟁도 재미 제일주의를 촉발하는 중요 인자이지만 그 경쟁을 촉발하는 물신주의/배금주의야말로 ‘재미 제일주의’를 초래하는 근본 원인이다. 공산주의가 붕괴한 이후 대항적 가치가 사라지고 자본주의제만 살아남게 되자 사람들의 가치 지향이 너나없이 돈이 최고라는 배금주의에 쏠리고 있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다.
이러다 보니 정신적 가치 추구는 뒤로 내몰리고 현재적이고 즉물적 가치에 매몰되어 사람들의 감각과 사고도 자연 그쪽으로 쏠린다. 인터넷을 끊임없이 달구는 자극적인 동영상, 폭력과 욕설을 현실 반영의 가장 손쉬운 도구로 여기는 영화들, 심지어 안방으로 전달되는 TV 드라마조차 사람들의 팔과 목이 잘리고 몸이 난자당하는 장면을 여과없이 방영해 대는 부박한 문화 현장은 즉물적이고 자극적인 감각에 물들어 있는 우리들 현실의 오차 없는 반영이다. 온갖 술수를 마다하지 않는 경쟁사회 속에서 자극적이고 일회적인 재미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다 보니 인문학적 가치나 정신은 점점 더 홀대받는다.
이러한 원인들에 더해 욕설이 어느 나라보다 더 심한 우리의 정서적 특징도 가학적이고 천박한 재미에 몰입하는 경향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우리가 가장 적대하는 일본인이 내뱉는 욕설이래야 고작 ‘바가야로(바보)’, ‘칙쇼(짐승같은 놈)’ 정도인데 우리의 욕설 종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복잡하고 뿌리 깊은 것이라 하여 이러한 요인들을 방치하고 있어서는 우리 사회의 안녕과 행복을 기대할 수는 없다. 경쟁을 하더라도 낙오자를 배려하는 사회, 물질도 물론 중요하지만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정신적 가치와 그 전승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 정서와 감각의 도야에 힘쓰는 사회, 적어도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이라는 점 정도는 인식하는 사회라면 가학적이고 폭력적이며 천박한 재미 제일주의는 상당 부분 해소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재미없는 삶, 달리 말해 웃음 없는 삶을 우리는 상상하기 힘들다. 재치와 기지에 찬 유머, 인간과 사회의 결함을 신랄하게 지적하는 날카로운 풍자들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고 세련되게 만든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의식들을 깊이 체화시켜야 훈훈하고 세련된 유머/풍자를 즐기는 사회가 될 수 있다. 특히 언어와 사고를 다루는 문화 분야의 종사자들이나 언론기관들이 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줄 안다. 건강하고 세련된 수준의 재미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수준과 통하는 바로미터이다.
(이 글은 포천신문의 양해를 얻어 조선일보 2012.9.3일자 ‘발언대’에 게재된 필자의 칼럼을 좀 더 상술하여 싣는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