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걸으면 우리의 목적지 통일 전망대에 도착한다. 오늘은 자녀들이 온다고 한다. 또 포천신문사 최호열 대표이사와 경기북부 전기안전공사 안병호 사장님이 오신다고 하니 마음이 바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여관을 나와 거진읍 시내에서 오랜만에 아침식사를 편안히 먹었다.
시내 길을 지나 화진포 가는 해안 길로 걷는데 박 권사가 장단지에 통증이 온다고 한다. 어제 진부령 내려오면서 무리를 했나보다. 걱정이 된다. 조심조심 천천히 걷는다. 걷지 않으면 목적지에 갈수가 없으니 통증을 참으며 걸어간다. 걷다보니 옛 김일성 별장이 보인다. 김일성 별장이 세워진 연도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김일성은 1948년부터 50년까지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 가족과 함께 하계휴양지로 화진포를 찾았다는 기록과 48년 8월 당시 6살이던 김정일이 소련군 정치사령관 레베제프 소장의 아들과 별장입구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 (주)포천신문사
이곳은 해당화가 참 많고 꽃을 피워 보는 이들의 눈이 즐겁다. 화진포는 친숙한 곳이다. 여름휴가지로 즐겨 찾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볼거리, 먹거리, 소나무 숲, 넓은 백사장의 해수욕장, 해양박물관 등 돌아서면 다시 찾아오고 싶은 곳이다.
해양 박물관 앞에서 휴식을 하며 박 권사 다리를 마사지를 해주었다. 나는 박 권사가 걱정되어 “박 권사 통일안보 공원까지는 얼마 안 남았으니 택시타고 가. 나는 걸어갈게”라고 말했더니 박 권사가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고 차를 타라고?”하면서 화를 낸다.
박 권사를 달래주고 힘내라고 매점에서 아이스크림 사와 먹으며 걷는다. 해남 땅 끝까지 걸을 때는 장딴지에 통증을 모르고 걸었는데 국토 횡단하는 길은 고개가 많고 험한 산골길이라 정말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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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내면사무소를 지나 대진 항에 이르니 문어 생각이 난다. 대진항에는 문어가 많이 나오며 자연산 미역도 많이 생산되어 길옆 여기저기 미역 말리는 곳을 볼 수 있다. 금강산 콘도앞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남북교류가 한창일 때는 저 콘도가 성업 중이었을 텐데 지금은 한산한 것 같다. “아이구 저기 출입신고 간판이 보이네. 이제 다 왔구나!” 기념 촬영을 하고 큰소리를 외쳐 완주를 자축한다.
걷는 구간은 통일안보 공원까지, 이곳부터는 자동차로 통일 전망대까지 가야한다. 휴게소에서 커피와 옥수수도 사먹으며 자녀들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자녀들과 최 회장님과 안 사장님이 거의 같은 시간대에 도착해 서로 반갑게 인사한다. 우리는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자동차로 전망대로 간다.
‘차를 타면 이렇게 편하고 좋은걸 왜 사서 고생하며 걸었는가.’ 나는 사서 고생을 즐긴다. 없어서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修身(수신)하기위해 고행하니 이것 또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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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을 따라 걸으며 남북이 평화공존하기를 기도했다. 錦繡江山(금수강산) 이렇게 좋은 국토에서 한쪽은 먹을 것이 넘치고 한쪽은 배고픈 굶주림에 시달리니, 하루속히 물물이 교환되고 인적교류가 잘되고 평화통일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 한다.
우리 일행은 전망대에서 ‘華麗 大韓民國 昌大 祈願(화려 대한민국 창대 기원)’이라고 적혀있는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다시 한 번 통일을 기원한다.
긴 여행도, 짧은 여행도 아닌 일정이었지만 국토 횡단은 국토 종단보다 훨씬 힘들고 지루함을 느꼈다. 깊은 산 중 인적이 없는 길. 지뢰 매설지. 군부대 진지를 통과하는 길을 걸었고. 높은 고갯길을 넘었으며, 귀막이 터질 정도의 소음이 진동하는 터널을 셀 수도 없이 통과하여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해 냈다.
나는 험로를 지켜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렸다. 또 매일 새벽에 교회에 나아가 國泰民安(국태민안)을 기도하면서 내년 여행을 계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