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이희용 칼럼니스트, 포천신문 자문위원 | | ⓒ (주)포천신문사 | 공자가 생의 만년에 아들과 아끼던 제자들을 연이어 잃고 상심에 빠져 고향인 곡부로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면서 남은 생을 보낼 무렵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언급한 말이 『논어』「위정편」에 나오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나이 열다섯에 학문의 길로 가기를 마음먹었고, 서른에 이르러 세상에 나의 존재를 알렸으며, 마흔에는 어떤 일에도 미혹됨이 없었고, 쉰에 이르러서는 하늘의 뜻을 모두 알았으며, 예순에는 모든 일에 대해 순리를 알 수 있었고, 일흔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또한 사마천에 『史記』에는 제왕의 연대기인 본기(本紀) 12편, 제후를 중심으로 한 세가(世家) 30편, 역대 제도 문물의 연혁에 관한 서(書) 8편, 연표인 표(表) 10편, 시대를 상징하는 뛰어난 개인의 활동을 다룬 전기 열전(列傳) 70편, 총 130편으로 구성되었는데, 여기에서 본기의 기(紀)자와 열전에 전(傳)자를 따서 이른바 기전체(紀傳體) 기록의 효시라고도 한다.
이렇게 『史記』에는 제후의 기록인 세가에 데한 기록에 공자를 올렸으며, 그의 제자들은 70편의「열전」중에 일곱 번째에,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이라는 장문의 기록이 있는데 이 기록에 의하면 공자의 문하(門下)에서는 걸출한 대학자가 많이 배출되었는데, 이렇게 많은 제자들 중에서도 학업을 받고 몸에 익혀 통한 사람이 77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중에서도 학식이나 덕망과 재능이 출중하여,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긴 열 명의 제자를 칭하여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 하였는데, 안회(顔回), 민자건(閔子騫), 염백우(冉伯牛), 중궁(仲弓), 재아(宰我), 자공(子貢), 염유(冉有), 자로(子路), 자유(子有), 자하(子夏) 등이 매우 출중한 제자들이었다.
특히 스승인 공자와 동문 선후배 등이 모두 인정할 정도로 학문과 덕이 가장 뛰어난 제자는 안회(顔回)였으나, 안회는 스승인 공자보다도 먼저 세상을 떠나 스승을 크게 상심시켰는데, 그 후 안회의 학통을 후대에 전한 인물은 증자와 자궁(子弓)이었다.
더 세밀하게 분야별로 뛰어난 제자를 나누어 본다면, 덕행(德行)으로는, 안회(顔回), 민손(閔損), 재백우(再伯牛), 중궁(仲弓)을 들 수 있고, 언행으로는 재예(宰豫), 자공(子貢)이 있으며, 정사(政事)에는 재구(再求, 일명 자유), 중전(仲田, 자로의 본명)이라 할 수 있으며, 문학(文學)에는 자유(子游)·자하(子夏)를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증자(曾子), 자장(子張), 자궁(子弓), 유자(有子) 등이 있었다.
이들 중에서 증자(曾子)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를 가르쳤고, 훗날 맹자(孟子)가 자사에게 배우게 되니 결과적으로 맹자학파는 증자의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또한 자궁의 손제자들 중에 한 분파가 순자와 한비자로 이어지고 이들이 법가를 출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공자는 72세가 된 해인 기원전 479년에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제자들은 증자를 상주로 하여 부모의 장례에 준하는 예로써 상복을 입고 그의 묘소 앞에서 삼년상을 마친 뒤 각자 고향에 돌아가 후학을 양성하게 된다.
그 후 제자들은 생전 스승과의 대화중에 남긴 말씀들을 모아서 『논어』라는 책을 저술하게 되는데, 이렇게 공자의 가르침은 그의 사후에도 수천 년 동안이나 이어지며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대부분 국가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근본바탕이 되었다.
한편 738년 당나라 현종은 공자를 왕으로 추봉하여 '문선왕'(文宣王)의 시호를 내렸고, 1008년 송나라 진종은 시호를 지성(至聖)이라고 추시하여 '지성문선왕'(至聖文宣王)이 되었으며, 원나라 때에는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으로 추존되며, 명나라 건국 이후에는 '지성선사'(至聖先師), 1645년 '대성지성문선선사'(大成至聖文宣先師)라는 칭호가 수여되었다.
그러나 중국 대륙이 공산화된 후에 중화인민공화국의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공자와 그의 사상은 중국 공산당에 의해 '악의 표상'으로 규정되어, 공자묘와 비석 등이 파괴되고 유학서 및 다량의 공자 관련 유물들도 무더기로 불에 타서 사라져 버리는 참화를 겪기도 했다.(다음호에 계속)
이희용 / 대진대학교 동양철학 박사과정, 시인, 연극연출가, 제3대 포천시예총회장, 광릉숲생태문학회장, 한국스카우트경기북부연맹 감사, 전 경기도예총부회장, 포천시수능시험장유치추진위원장, 포천신문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