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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출 에세이=48] 빨강에 대하여


김형출 기자 / mjmc00@hanmail.net입력 : 2012년 09월 08일
 
↑↑ 김형출 시인, 수필가
ⓒ (주)포천신문사 
매번 출·퇴근 시 신호등 앞에 멈춰 서곤 한다. 그럴 때면 색채에 관한 호기심이 발동한다. 빨강, 파랑, 노랑, 세상에 색채가 없다면 시각의 착각과 혼란으로 무미건조한 세상이 되고 말았을 게다. 아니면 어둠 속에서 헤매는 색맹의 답답함 뿐일 것이다.

나는 강렬하게 깜빡이는 빨간불을 마주하면 답답했던 가슴이 펑 뚫리고 나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힘이 솟아난다. 예전에는 붉은색이 두렵고 무서워 불안과 공포에 떨었던 적이 있다. 경광등을 번쩍이고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려대며 차량과 차량 사이를 곡예하며 질주하는 구급차만 보면 붉은 피가 콸콸 쏟아지는 착시현상 때문에 나의 온몸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고 만다.

동족상잔의 비극 앞에 피투성이가 되고 갈기갈기 찢긴 온몸을 싫어하기는커녕 좋아하게 됐다는 변색되지 않은 충정, 빨강은 세상까지 질주하는 인생의 정열이요, 흥분이요, 사랑이요, 한계 그 자체이기에 인생은 태양 같은 힘, 피 같은 정열, 불꽃같은 열정만 가진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노라, 며 큰소리칠지언정 빨강이 정열적이고 열정적이다 보니 파랑, 노랑 등 다른 색채의 질투와 미움을 받게 된다. 그래서 빨강은 늘 돋보이는 색채인 것이다. 시퍼런 칼날을 휘두르는 살인자의 붉은 핏덩어리를 상상하면 검정 죽음 앞에 생은 고요해지다.

빨강은 옛날부터 밝음과 분명한 것을 나타내는 색채로 인식되어 왔다. 빨강에 대응하는 빛의 파장은 약 640∼780㎚의 범위이다. 빨강을 보았을 때 화려하다, 따뜻하다, 정열적이다, 강하다, 동적(動的)이다, 흥분된다. 등을 느낄 수가 있다. 이처럼 빨강의 인상은 밖으로 에너지를 발산시킨다는 느낌이 든다. 도형으로서는 동그라미의 인상과 비슷하다. 또 따뜻한 느낌이 든다고 해서 난색계의 색깔로 취급되며, 같은 위치에 있을 때 파랑에 비하면 조금 앞쪽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전진색(前進色)이라고도 한다.

빨강은 자극적인 성질이 강하기 때문에 눈에 띄기 쉽다. 이러한 사실과 연상해서 상징적인 내용 등으로 말미암아 교통신호의 멈춤을 나타내는 표시로서 사용되고, 불과 관계되는 기구류 등에 사용되기도 한다. 안전색채에서 빨강을 소화기·화재경보기 등에 사용하게 되는 것도 빨강이 지니는 시각적 성질이 고려되었기 때문이다. 빨강에 대한 기호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특수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빨간 옷을 입은 여자들이여 조심하라! 그대들로 하여금 미친 남자들은 잘못된 흥분으로 날뛰는 것이다.

요즈음 세계 각국은 빨강에 떨고 있다. 환율에 울고 웃는 사람, 주가에 울고 웃는 사람, 펀드에 울고 웃는 사람, 부동산에 울고 웃는 사람, 사랑에 울고 웃는 사람, 권력에 울고 웃는 사람 모두 빨간불에 멈칫멈칫 자빠지는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공포의 대상에는 반드시 시작과 끝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 할지어다. 빨강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파랑의 어머니요, 황색의 아버지이다. 저 붉게 타오르는 태양 같은 붉은 심장을 보라, 신성처럼 아름답지 않은가?

빨강 하면,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광화문 사거리에서 ‘붉은 악마들’의 함성을 잊을 수 없다. 2002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들인 예비후보 12번, 그들의 붉은 함성이 아직도 귓전에 들려온다. 앵두 같은 입술로 장미 같은 사랑을 속삭일 때 인간은 한없이 달콤하고 행복하다. 태양처럼 타오르는 붉은 가슴이 있는 한, 우리 삶에 두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 후 8년이 지난 2010년 6월의 밤은 행복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은 지구촌을 붉은 함성으로 몰아넣었다. 2011 도하 아시안컵 4강에서도 태극전사들의 붉은 심장을 보았고 붉은 악마의 강심장을 보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축구대표팀의 붉은 심장은 어떠했던가? 정열이 끓어올랐지 대한민국의 희망!

이데올로기가 고조되었던 냉전 시대에는 빨강만 생각하면 적개심에 불탄다. 아버지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6.25가 발발하기 전, 고향 일대에는 빨갱이들이 득실거리며 주민들을 괴롭혔다. 이번에는 빨강만 생각하면 눈물만 난다. 왜군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급할 때 일신의 안위보다는 구국의 일념에서 의병을 일으켜 적과 싸운 애국지사가 많거니와 우리 고장 황석산성 피바위에는 그때 장열하게 순국한 핏자국이 남아 있다. 아! 슬프다. 당신의 붉은 피가 조국에 안겨 있다. 저 충의의 붉은 피와 붉은 악마의 함성처럼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김형출 / 시인, 수필가
김형출 기자 / mjmc00@hanmail.net입력 : 2012년 09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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