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보편화되면서 검색(檢索)이란 말이 대중화되었다. 검색이란 원래 범인이나 증거물을 찾기 위하여 가택(家宅)을 뒤지거나 수색(搜索)하는 것을 말한다. 한 마디로 검사하고 수색하는 것이다. 검사란 진위(眞僞)를 가리는 것이고 수색이란 무언가를 찾는 것이다. 지금은 컴퓨터를 가지고 어떤 자료를 찾거나 무엇을 확인하기 위하여 인터넷(internet)을 이리저리 뒤지는 써핑(surfing)에 더 무게를 둔다. 사색(思索)은 그게 아니다. 사색은 생각하는 것이다.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줄거리를 세워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논리(論理)를 세우는 것이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적 사색을 한다’거나 ‘사색에 깊이 잠기다’라고 말들을 하는 것이다.
우리 선인(先人)들은 사색을 즐겼다. 관찰과 통찰을 통해 화두(話頭)를 잡고 생각에 골몰했다. 매사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관심을 가지고 사물을 응시(凝視)했고 관심을 가지고 궁구(窮究)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생각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사색의 대상(對象)으로 삼았다. 막대 하나를 꽂아 놓고 절기(節氣)를 생각했고 계절의 변화를 읽었다. 막대의 그림자가 가장 긴 날과 가장 짧은 날을 기준 삼아 절기를 나누고 이름을 붙였다. 가장 긴 날을 동지(冬至)로 가장 짧은 날을 하지(夏至)로 삼았다. 그 사이를 균분(均分)하여 24절기를 명명(命名)했다. 그뿐이 아니다. 상현(上弦)과 하현(下弦)을 놓고 밀물과 썰물을 가름했다.
요즘 사람들은 사색을 모른다. 아니 사색을 않는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억(記憶)하지 않는다. 컴퓨터를 두드리고 휴대폰을 두드리면 되기 때문이다. 일상을 컴퓨터에 의존하고 휴대폰에 의존한다. 컴퓨터와 휴대폰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한다. 기억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머릿속에 입력시켜 놔야 하는데 그리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맹(文盲)이 되고 만다. 글자를 몰라서 문맹이 아니다. 글이 지니고 있는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문맹이라 하는 것이다. 아니 글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문맹이라 하는 것이다. 사색은 않고 검색만 하기 때문이다.
검색만 해서는 안 된다. 사색을 해야 한다. 생각을 해야 한다. 왜 그런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100%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잘못됐습니다’ 하고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된 글을 올려도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글자 그대로 검색하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 확인하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 내용을 인용했다가는 낭패(狼狽)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선(精選)된 글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짜깁기 하는 것이다. 짜깁기만 해서는 안 된다. 짜깁기는 사고력(思考力)을 좀 먹고 필력(筆力)을 좀 먹는다. 아니 창의력(創意力)을 좀 먹는다.
자판만 두드릴 것이 아니라 직접 써야 한다. 귀로만 들을 것이 아니라 메모해야 한다. 쓰는 것은 생각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덮어놓고 쓰지 말고 생각을 정리한 후에 써야 한다. 무엇을 쓸 것인가? 몇 가지로 나누어 쓸 것인가? 키워드(key word)는 어떻게 뽑을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되도록 키워드를 인덴트(indent) 첫머리에 놓도록 해야 한다. 키워드가 안 떠오르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생각이 덜 되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사색하고 또 사색해야 한다. 그리고 지식체계(知識體系)를 쌓아나가야 한다.
지식체계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옛날분들은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해서 인물을 먼저 보았으나 지금은 아니다. 용모(容貌)가 출중해서, 돈이 많아서, 신분이 좋아서, 평가 받는가? 아니다. 지식체계로 평가받는 것이다. 지식체계는 사색에서 울어나는 것이고 생각에서 싹트는 것이다. 검색만 할 것이 아니라 사색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