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목으로 재직 당시 부대 내 한 병사가 사격장에서 숨진 참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고 상병계급장을 단 천 상병이라고만 기억이 납니다.
사격장의 규율은 매우 엄격합니다. 사람을 살상(殺傷)할 훈련을 하기 위해 사람에게 치명적인 무기를 만지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그날도 엄격하게 사격훈련이 잘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사격장엔 감적수(監的手)란 직책이 있는데 200미터 이상의 표적은 눈으로 식별이 불가능하기에 명중과 불발을 눈으로 식별한 후 통제부에 알려주는 병사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표적 근처에 개인호를 파고 사격 시에는 호 속으로 들어가 있다가 사격이 끝나면 나와서 통제본부에 명중여부를 알려줍니다.
그날도 사격이 끝나고 감적수를 확인하는데 천상병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모든 병사를 동원해 찾아본 결과 그는 낙엽더미 뒤에서 피를 흘리며 숨져 있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의문사 규명위원회다 뭐다 해서 시끄러워질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 그의 죽음은 간단히 처리되었습니다. 누가 봐도 명백한 단순 안전사고였기 때문입니다.
수사기관이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천상병은 감적수인데도 다른 병사들과 같이 사격 때 개인호로 몸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개인 참호가 멀리 있기도 하고 몸을 피하기 불편하기도 해서 그는 바위 뒤에 몸을 숨긴 것인데 아뿔싸! 그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가 보기에 앞에 있는 장애물은 정말 바위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적당히 그늘도 졌고 크기도 영락없이 바위였지요. 그런데 실상 그것은 바위가 아니라 낙엽더미였습니다. 그는 낙엽 뒤에 몸을 숨겼다가 변을 당한 것입니다.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우리 사는 세상, 바위처럼 보이는 낙엽더미가 얼마나 많이 있을까요? 그런데 그것은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보호하지 못합니다. 날아오는 총탄을 피할 길 없지요.
오늘도 헛된 명예와 권력, 그리고 물질을 천년 바위라 생각하고 쫓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나 그런 것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내 몸을 숨겨주지 못합니다. 만세 반석은 따로 계십니다. 오늘도 나는 진리(眞理)를 떠나 쉽고 편안한 낙엽 뒤에 몸을 숨기고 있지는 않은지, 내게 던지는 무섭고도 두려운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