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이는 집안이 가난하여 송곳을 꽂을 땅 하나도 없는 가난뱅이 집 아들이었다. 그러나 만석이는 어려서부터 산짐승을 잘 잡는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옭무"를 만들어 산짐승을 올가미를 씌워 잡는가 하면 함정을 파서 산짐승을 잡기도 하였으며 쇠창을 만들어 잡는 기술이 있다고들 하였다. 가난한 만석이 아버지는 만석이의 사냥하는 것이 대견하였으며 마을 사람들도 산짐승 고기를 싼값에 사서 먹고 더러는 거저 얻어먹는 터이라 만석이네를 부러워하였다.
산돼지를 비롯하여 노루, 토끼, 꿩 등등 많은 짐승들이 만석이네 집으로 잡혀갔으며 생업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비가 아니 오고 가뭄이 드는가 하면 저수지가 터져서 마을이 물바다를 이루는 난리를 겪었다.
모두들 산신령님이 만석이의 산짐승 남획을 꾸지람하는 이변이라고들 하였다. 다시 말해서 만석이가 산짐승을 많이 잡는 바람에 산신령님이 노해서 마을에다 재앙을 가져다 주었다고들 수군거렸다. 그래서 마을 촌장님은 만석이에게 산짐승 사냥을 그만두라고 하였으나 만석이 부자(父子)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고 더욱 기승을 부리며 산짐승을 잡아서 장에다 내다 팔기도 하였다.
드디어 심판의 날이 왔다.
시름시름 앓더니 그만 자기가 놓은 ‘옭무’에 걸려 죽고 말았다한다.
어떤 사람은 마을 촌장님의 당부를 어긴 죄라고도 하였으며 산신령님과 국수당 할머니신의 노하심이라고도 하였다.
그 후, 산짐승 잡기는 뜸하였다.
마을 당제사도 늘 산의 신령을 생각하며 살았다. 왕방산 국수봉은 일제시대 일본의 학자들이 동식물을 표본 조사 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그 기록을 찾을 길이 없어 유감스럽기 그지 없다.
6.25전만 하여도 왕방산 기슭, 물어고개 근처는 동식물의 보물창고였다.
두드리면 소리나는 피아노 바위, 부싯돌로 이름난 부싯돌 바위, 범의 형상을 한 범바위, 신선이 장기를 두었다는 신선바위, 산신령(암호랑이)님이 추석 무렵이면 금강산에서 하산하여 당제사를 드시러 온다는 물어고개 신당은 옛 모습 간데 없고 약수 애호가들의 인파로 붐빈다. 사냥꾼 만석이는 산신령님의 벌을 받고 저 세상으로 갔다. 제2의 만석이가 되지 말고 왕방산 기슭은 보호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