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나에게도 목회에 대한 심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고민 끝에 평소 존경하던 은사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 상담 후에 중대한 결정을 내리려고 결심했습니다.
내가 정말 주의 종으로 자격이 있는지, 무기력이 내 전신을 싸고돈다고,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받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나는 함량미달(含量未達)이라고. 울먹이며 주절주절 넋두리를 늘어놓았습니다.
수표교교회를 담임하시던 윤주봉 목사님은 언제나 내 말을 먼저 끊는 일이 없으셨지요. 끝까지 다 듣고 난 후 예의 그러셨듯이 조신한 음성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정 목사, 난 정 목사가 자랑스러워. 자네가 우리 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하던 5년이 내겐 가장 즐거운 시절이었어. 그때 들려준 재미난 유머를 지금도 친구 목사와 교인들에게 사용하고 있는 걸… 난 자네가 자랑스러워.”
전화통을 붙잡고 크게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앉고 일어섬을 모르던 나를 위로하시던, 고인 되신 그 분의 음성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합니다.
<주홍글씨>의 저자 <나다나엘 호오돈>은 대학 재학 시절 3명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평소 이들 때문에 작가가 되었고 자신의 길을 걷게 되었다며 성공의 공로를 그들에게 돌리는데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첫째는 호오든이 다닌 <보든>대학에서 함께 수학한 거부 출신 <호레이쇼 브리지>인데 무명이던 그를 작가로 예우하고 출판비 전액을 지원한 사람입니다.
둘째는 훗날 미국 14대 대통령이 된 <피어스>인데 정계에서 기반을 닦자마자 그의 집필활동을 여러모로 도왔고 무명작가를 대작가로 미리 예우한 인물이었습니다.
셋째는 유명 시인 <롱펠로우>입니다. 그는 호오든을 위해 서론을 써주고 무명이던 그를 작가로 예우하며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은 인물이지요.
작가 호오든은 이런 3명의 친구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즉 그는 이미 대작가로서 이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렇듯 한 사람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기대하며 그에 걸맞는 이름을 붙여주는 걸 피그말리온 신드롬(Pygmalion Syndrome)이라 한다던가요.
비판과 질책이 난무하는 시대, 따스한 말 한마디 던지는 사람이 그립습니다. 제발 <피그말리온> 신드롬이 <피를 말려요> 신드롬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