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외곽에서 숙박을 하고 아침 6시 30분부터 걷는데 안개가 자욱하여 조금은 불안하다. 고석정 공원이 안개에 묻혀 전시된 전차 비행기 등 장비가 희미하게 보인다. 모내기가 한창이라 트랙터 이앙기를 실은 자동차가 씽씽 달려서 큰길 걷기가 무섭다. 철원에는 직탕폭포에서 시작된 한 여울길이 있어 다행이었다.
승일교는 2개의 교각설치로 다리가 절반쯤 완성될 즈음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북한군의 퇴각으로 공사는 중단되고 남쪽 부분은 교각도 없이 덩그러니 남게 됐다. 이후 국군이 임시 목조 가교를 설치했다가 1958년 12월 한국 정부에서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마무리했으니 다리 하나에 두 가지 공법이 어우러진, 분단과 전쟁이 빚어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주)포천신문사
지금의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와 갈말읍 문혜리를 잇는 승일교는 이름에 얽힌 두 가지 설이 동시에 전해지고 있다. 첫째는 남북한이 시차를 두고 완성한 합작 다리라는 의미를 간직한 이름이다. 남한의 이승만과 북한의 김일성 가운데 자를 따서 ‘승일교’라 불렀다는 것. 목조 가교 때에는 ‘承日橋’로 표기됐으나 현재 ‘승일교’라고 새겨져 있다. 이 다리는 분단과 전쟁의 역사를 상징하는 대표적 현대문화의 역사적 산물이다,
승일교를 건너니 승일공원이 있어 참전 기념비에서 묵도를 하고 문혜리로 향해 빨리 걷는다. 문혜리에서 아침을 먹어야 한다. 문혜리는 포 사격장이 있어 포사격을 하는데 귀청이 먹먹할 정도다. 식당은 몇 군데 있는데 개업은 했으나 휴업상태다. 물어물어 한식당에서 아침을 취나물 무침으로 맛나게 먹고 헌병사거리에 도착하니 안개도 걷히고 넓은 길이 펼쳐진다.
갈현고갯길을 올라 정상에 이르니 “필사즉생 必死卽生 죽고자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이라는 글이 있고 “살아도 백골 죽어도 백골”이라는 하얀 백골상이 보인다. 우리는 백골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부대 앞 벚나무 밑에서 간식을 먹으며 재미나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휴식도 했으니 “걸으면 승리할 것이요. 걷지 않으면 패자다“는 마음으로 되새기며 김화를 향해 열심히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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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차량이 많이 다니지 않아 좋다. 군 차량만 분주히 다닌다. 이곳 지형은 아주 익숙하다. 청아리쪽으로 능이버섯 따려고 온산을 두루 다닌 적이 있다. 김화읍에 도착해서 늦은 점심으로 쭈꾸미 식당에서 쭈꾸미 정식을 주문해 맛나게 먹으며 주인 아주머니와 대화중 우리 부부는 걸어서 여행중이다고 하니 부러워하며 후한 대접을 해주신다. 농사지은 땅콩을 싸주시면서 가시다가 간식을 하라고 하신다. 세상에는 인정이 많은 사람이 참 많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어가는데 포천하우징 임성환 사장님한테서 전화가 온다. 저녁 식사 대접을 하겠다고.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와수리 소고기집에서 맛나게 고기를 구어 먹고 영양보충 잘했고 격려의 말도 듣고 한결 힘이 난다. 나는 많은 사람에게 빚진 자다. 이제 두고두고 갚을 일만 남았다. 서산으로 넘어가는 지는 해가 붉게 물을 드리며 넘어간다. 다리는 아프지만 지는 해를 촬영하기 위해 전봇대를 피해 강 쪽으로 걸어가 몇 장의 사진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