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독재정권에 시달리고 있던 미얀마에 민주화의 꽃이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그 꽃은 아웅산 수치 의원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1989년부터 2010년까지 15년간 가택연금을 당한 채 꽃으로 피어나지 못한 채 짓밟혀있었다. 그 억압의 발은 미얀마 군사정권이었다. 그녀에게는 긴긴 연금의 시절들은 인동초의 인고의 세월이었다. 어느 누구도 억압의 빗장을 열지 못하고 짓밟힌 민주의 꽃을 구해내지 못했었다. 그러나 신은 억압과 부정한 세력을 영원히 허락하지는 않았다.
세계 여러 곳에서 독재정권의 폭정에 시달리던 나라들이 민주화의 횃불을 높이 치켜들었다. 리비아, 이집트 등을 위시해서 민주의 꽃들이 거대한 바위 같던 잔인한 억압의 발들을 밀어내고 작은 꽃들을 여기저기 피워내기 시작하였고 드디어 거스를 수 물결이 되어 퍼져나갔다. 총칼을 앞세우고 서슬이 시퍼렇던 미얀마 군사정권도 국제사회의 요구에 무릎을 꿇고 연금 상태의 수치 여사에게 자유와 정치참여를 허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치 의원이 이끄는 민족민주동맹이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어 당당히 정치의 일선에 나서는 쾌거를 보여주었다.
수치 여사는 그녀의 민주화 투쟁의 공로로 1991년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었지만 군사정권이 수상식에 참석하는 것을 막아 두 아들이 대리로 받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미얀마 군사정권은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며 그들의 비인권적 조치들로 인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고 경제적 제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국제적 고립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군사정권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민주화 조치로 수치의원에게 정치적 활동을 허락하게 된 것이다.
유럽 5개국을 순방길에 나선 우치 의원은 마지막 방문국 프랑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미얀마에 대한 민주화의 비전을 밝혔다. 그녀는 ‘언젠가 미얀마를 이끌어나갈 태세가 돼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녀의 미얀마 민주화에 대한 소신을 밝히면서 “모든 정당 지도자들은 진정으로 민주절차를 믿는다면 국가를 이끌 가능성에 대비해 준비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대답하였다. 더 이상 독재자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그녀를 지지해준 국민들에게 민주화의 의미를 확인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억압의 대상인 군사정권에 대한 보복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수치 의원은 인식하고 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투쟁을 해온 것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 준비해온 것이라는 것을 그녀를 지지해준 국민들에게 알리고자 하였다. 수치 의원은 “내가 국가를 이끌어나가는 문제만을 항상 생각하는 것은 아니며, 미래를 준비하되 현재 일에 집중해야”함을 강조하면서 민주화운동이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비전이 없다면 현재의 투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한 현재의 민주화 운동이 미래의 결실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제 그녀는 군사정권의 연금에 의해서 막혔던 24년 전 과거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그녀는 남편과 두 아들을 영국에 두고 떠나서 만날 수 없었던 비극적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비극의 여주인공인 아웅산 수치는 독재라는 한계상황을 이겨내고 초월적으로 과거의 아픔들을 치유하고자 한다. 옥스퍼드대는 그녀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기념하여 19년이나 지체된 명예박사 수여식을 마련하였고 그녀는 옥스퍼드대 강당을 가득 메운 청중들에게 영웅적인 소감을 밝혔다.
그녀는 "옥스퍼드에서의 추억은 고난을 극복하는 힘이었습니다. 추억들은 작은 것들이지만 행복한 시절이었기에 생생합니다. 이런 기억이 열악한 상황의 미얀마의 젊은 세대를 잘 이해하는 밑거름이 됐습니다"라고 과거의 옥스퍼드 학창시절의 의미를 정의하고 있다. 그녀는 옥스퍼드 학창시절이란 과거와의 만남을 통해서 미래에 있을 새로운 도전을 맞설 힘을 얻었다고 고백하기도 하였다.
사실 한국에도 미얀마처럼 어두운 독재정권의 억압을 경험하였고 이게 분연히 투쟁하던 민주인사도 있었다. 김대중과 김영삼이라는 민주화의 거목들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금의 수준으로 만드는데 헌신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수치 의원과 비슷한 과정을 통해서 대통령이 되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지역주의 망령이 그를 평가절하하고 매도하는 분위기가 잔존하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투쟁의 결실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삼당합당이 야합의 결과이었기에 존경의 대상에서 멀어져 있다. 우리는 빵보다는 자유를 달라고 외치던 시절을 망각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 국민들은 민주세력에게 철퇴를 가하던 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산업화라는 명분을 덧씌워서 그 딸인 박근혜를 차기 대통령으로 지지하는 분위기에 젖어있다. 깊게 생각해볼 일이다. 한국판 아웅산 수치는 불가능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