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정보 없이 떠난 길,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나니 정확한 대상도 모르게 아득한 밑바닥에서 심통이 벌벌 기고 있었다. 카메라도 오래 쓰다 보니 신기종에 대한 부러움에 내 카메라는 너무나 보잘 것 없는 폐기물이 돼버린 느낌이다. 그러니 사진을 찍어 봐도 맘에 들 리가 없다. 찍을 대상이거나 장비거나 새로움에 대한 갈망만 커질뿐.
그 즈음, 전에 함께 활동했던 사진동호회에서 새벽공기를 마시며 연밭에서 아름다운 모델이 춤을 추고 정해진 인원이 마음껏 촬영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하기로 하였다.
어두운 새벽길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덜커덩 소리에 놀라 정신을 차려보니 커다란 전봇대가 눈앞에 서있고 급하게 핸들을 꺾어 위기는 면했지만 요란한 굉음과 함께 조수석 앞뒤 타이어는 완전히 주저앉고 말았다.
일행들에게 전화해보니 뒤에서 오고 있는 중이라 하여 적당한 곳에 주차해 놓고 일행들과 합류하여 목적지로 향했다. 동이 트기도 전 촬영이 시작되니 차분히 가라앉은 회색하늘과 먼 산 능선을 뒤로하고 초록연잎 위에 선녀인지 연꽃인지 나비인지 의상을 차려입은 모델은 몽환의 세계를 연출해 준다. 사람들이 왜 자신과는 관계도 없는 모델을 찍는지 전에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점심을 먹고 일행들과 헤어지고 나서야 보험회사에 전화해서 사고처리를 했다.
문제는 마음이었다. 붙잡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며 생겨났다가는 강물같이 흘러 사라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마음은 사람을 한없이 쳐지게도 하고 어느 순간 정열을 일으키기도 한다. 모델출사가 변화에 얼마만큼 원인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그저 현실을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자는 다짐으로 고물덩어리 같이 느껴지던 카메라는 A/S센터에 맡겨 핀조정과 청소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