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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에세이=최유정] 『피그말리온』 vs 『마이 페어 레이디』

[문화에세이=최유정] 『피그말리온』 vs 『마이 페어 레이디』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2년 06월 20일
↑↑ 최유정 대진대 대학원 영어영문학 석사과정
ⓒ (주)포천신문사
새로운 가정을 이루기 위해, 태어나서 30년 넘게 지내온 부산을 떠나 경기도로 온 나는 ‘주부’이라는 신분과 더불어 ‘대학원생’이라는 신분도 얻게 되었다. 다시 학생이 되어 대학원 수업을 들으며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희곡『피그말리온』을 읽을 기회를 갖게 되었다.

희곡 『피그말리온』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가 1913년에 발표한 드라마이다. 중년의 독신주의자인 음성학자 헨리 히긴스 교수가 거리에서 만난 꽃 파는 천박한 소녀 일라이자의 사투리를 3개월 내에 고치고 예의범절을 가르쳐 상류사회의 귀부인으로 변신시킨다는 내용의 페미니즘 드라마이다.

그는 자신의 친구인 피커링 대령과의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혼신을 다해 일라이자를 가르치게 되고, 마침내 내기에서 이기게 된다. 어느새 일라이자는 히긴스 교수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히긴스 교수는 그녀를 이성으로 대해 주지 않는다. 결국 일라이자는 자신이 히긴스 교수의 언어학적 실험물이 아니라 사랑의 감정이 있는 여성임을 주장한다. 그녀는 이기적인 언어학 교수를 떠나 자신를 흠모하는 프레디를 연인으로 저항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희곡을 접해 본 경험이 거의 없던 나에게 등장인물의 표정과 모습을 머릿속으로 자세히 그려볼 수 있다는 점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더불어 극의 내용이 모두 등장인물 간의 대사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들의 감정과 말투를 통해 나만의 드라마 한편을 만들어 보는 재미도 있었다. 극의 말미에 일라이자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히긴스 교수에게 화를 내는 대사를 읽으며 그녀의 답답함과 좌절이 그대로 느껴졌으니 말이다.

한편, 우리가 흔히 접해온 소설 속의 여주인공은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사랑을 이루거나 연인과 함께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의 남녀 주인공은 희극적 결말도, 비극적 결말도 아닌 모호한 결말로 마무리하고 있다. 일라이자는 낭만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이루려는 감상적 결말보다는 애정도 없던 프레디를 선택하여 자신의 히긴스 교수에 대한 심리적 환멸을 보여준다.

히긴스는 일라이자가 떠난 후 공허함을 느끼지만 잠재적 사랑을 찾아 돌진하는 낭만적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매우 사실주의적 결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버나드 쇼가 자신의 비명에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말을 남긴 것처럼 그의 재치와 비범함이 극에 녹아든 결과라 생각한다. 일반 대중이 모두 원하고 예측 가능한 평범한 결말을 작가 자신은 원하지 않은 것이다.

희곡을 읽으면서 이 작품이 내가 어릴 적 보았던 한 영화의 원작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곤 ‘영화도 다시 한 번 꼭 봐야지’ 생각했는데, 오늘 남편을 출근시키고 마침 그 기회를 얻게 되었다. 1964년에 조지 쿠커 감독의 연출로 상영된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오드리 헵번(일라이자 역)의 발랄함과 사랑스러움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작품이다. 영화의 초반에 오드리 헵번이 길에 서서 꽃을 팔며 나누는 대사를 들으니 마치 그녀가 길들여지지 않은 망아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놀라거나 흥분했을 때 내는 ‘와우-’같은 소리는 말을 배우기 전의 아기 혹은 어린 동물이나 냄직한 소리에 가까울 지경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라이브 가수의 음이탈을 연상시킬 정도로 불안정하며 옆에 있다면 당장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로 예의라곤 모른 채 시끄럽게 떠들어 댄다. 순수하고 고귀한 이미지의 오드리 헵번이 소위 ‘망가지는’ 연기를 하는 것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그런 모습조차도 큰 눈망울의 사랑스런 오드리 헵번이기에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원작과는 달리 일라이자와 히긴스 교수의 해피앤딩을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일라이자를 교육시키면서 어느새 그녀의 모습과 말투에 익숙해진 히긴스 교수가 그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일라이자가 곁에 있을 때는 귀찮은 물건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녀가 떠난다고 생각되자 비로소 그녀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버나드 쇼가 1950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이 영화의 존재를 알리는 없다. 만약 그가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끝을 맺는 이 영화를 봤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버나드 쇼는 극의 결말이 낭만적인 엔딩으로 끝날 것을 우려하여 장문의 ‘후일담’을 통해 일라이자와 히긴스 교수의 결합을 막았을 정도이니 말이다. 작가의 의도야 어찌되었든, 마지막 장면에 일라이자와 히긴스 교수를 그의 집에서 재회시킴으로써 이 영화는 우리에게 핑크빛 설레임을 선사한다. 나 또한 입가에 미소를 걸고서 이 영화를 보았다.

여러분에게 기회가 된다면 희곡으로 된 『피그말리온』을 읽어보며 극의 생생함을 느껴보기 바란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그 생생함을 화면으로 확인해 보길 바란다. 비록 결말이 다르긴 하지만 희곡을 통해 느꼈던 감정을 한 번 더 되새김질하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니 말이다.

최유정 / 전 부산 맹학교 교사, 대진대 대학원 영어영문학 석사과정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2년 0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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