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빨려드는 벽은 캄캄하다. 소리들이 자박자박 울린다. 아직 마감 덜 된 벽의 모습은 미숙하다. 저쪽 끄트머리에 세워놓는 반달 같은 통로는 닫혀있는 듯 열려있고 열려있는 듯 닫혀있다. 벽은 공간과 공간 사이에 작용하는 경계이다. 벽의 작용을 통한 공간은 비로소 차이를 가진다. 차이는 벽의 성격을 규정하고 그 성격은 공간을 구분 짓는다.
공간은 물리적으로 나누어질 수 없는 실재이다. 그렇다면 벽의 작용은 어떻게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성격을 부여하는가? 공간을 나눈다고 할 때 나누어 질 수 없는 공간은 상호 작용하는 문장의 단어처럼 전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생성한다. 그래서 벽은 공간과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공간 사이에서 작용한다는 것이 된다. 따라서 벽에 가하는 힘의 행위는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벽의 작용을 강화하려는 의지의 표출이다.
내가 벽 앞에 서있을 때 나는 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벽 너머를 보고 있다. 이런 생각은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80년대의 벽화 운동과 대형 걸개그림들은 단순한 정치적 운동의 수단이었단 말인가? 삶의 구체성을 예술의 구체성에 연결하지 못할 때 벽화는 광고가 된다. 벽을 가로지르며 벽 너머에 존재하는 환상이 우리의 욕망과 향유가 될 때, 벽은 구체적인 삶의 공간에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벽면에 살아있는 색채는 벽의 화장인가? 벽의 덧칠인가? 아니면 그 무엇인가? 내 안에 경계가 소홀한 벽이 있다.
벽 김형출
내 안에 경계가 소홀한 벽*이 있다 그 벽은 검고 희다 검고 흰 것은 가볍고 단단하다 벽은 어둡지도 밝지도 않다 그렇다고 잿빛 모래성도 아니다 공간과 공간 사이에 작용하는 벽은 열려 있고 닫혀 있다 무던한 경계를 쌓아올린 벽은 ‘모순’이란 단어처럼 분리될 수 없는 실재이다 안아주고 애무하면 사랑처럼 살살 녹아내리듯 예쁜 것 벽, 질투하고 미워하면 부글부글 들끓듯이 넘쳐버리는 벽, 그 비밀은 모순이다 이쪽저쪽을 갈라놓을 수밖에 없는 변명들 이미 내가 모르는 고백(告白)이다 견고한 벽면에 우람한 남근을 그린다면 너는 주체할 수 없는 욕정의 대상이리라 나와 널 위한 사랑의 대상으로 벽 너머에 대한 상상까지 차단할 수 없는 공공성의 매개를 허물고자 벽은 벽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진경(眞境)이다.
*때를 허물은 상징물.
공간 사이 공간에 작용하는 수많은 행위들 틈새에 바람이 불고 그림자가 깔려있다. 그림자는 빛이 존재에 의해 형상이 있고 형상이 없다. 인간도 빛과 그림자의 구속된 관리자에 불과하다. 그래서 벽은 공간 사이 공간에서 고민하는 것이다. 만약 이 세상에 벽이 없다면 살맛날까요? 글쎄요, 아마, 벽이 없다면 우리네 삶은 무미건조할 게 틀림없다.
벽은 비밀의 보호막이다. 비밀이 없는 세상,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물론 나는 무덤까지 가지고 갈 비밀하나 없는 무미건조한 사람이지만, 비밀을 보호해주고 비밀을 상상하면서 벽을 쌓기도 하고 허물기도 한다. 그래서 벽은 답답하겠지만 우리 곁에 존재하는 것이다. 벽은 묵직하고 단단해서 웬만해서는 저절로 무너지거나 허물어지는 일은 별로 없다. 벽을 쌓는 일, 벽을 허무는 일,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