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 가운데 발음은 같으나 뜻이 다른 말이 많이 있다. 감상(鑑賞)과 감상(感想)도 그 중 하나다. 鑑賞에서의 鑑은 ‘쇠’의 뜻인 金과 ‘보다’의 뜻인 감(監)의 합자다. 鑑은 쇠붙이인 청동으로 만든 것으로 사람의 모습을 비춰보는 물건이라는 데서 ‘거울’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또한 자신의 미추(美醜)를 알아보기 위해 거울에 나타난 모습을 자세히 비춰 본다는 데서 ‘살피다’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鑑賞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살피어 완상하다’라는 뜻이다. 완상(玩賞)한다는 것은 즐기며 구경한다는 것이다. 주로 예술작품 같은 것을 살피어 그 성질이나 효과나 가치를 음미(吟味)하고 이해할 때 사용한다.
感想은 그게 아니다. 感想은 마음속에서 ‘느끼어 생각한다’는 것이다. 感은 ‘느낀다’는 것이고 想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영어로는 feeling이고 thinking이다. 느낌이 오고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에 골몰해 있는 사람을 보고 ‘감상에 젖어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鑑賞이 대상물을 통해 외부의 자극(刺戟)으로 이루어지는 객관적인 교감작용(交感作用)이라면 感想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주관적인 사유결과(思惟結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미술 조각 같은 예술품은 鑑賞한다 하고 독후감 같은 것을 쓸 때는 鑑賞文이라 쓰지 않고 感想文이라고 쓰는 것이다. 책을 읽고 感想文을 쓸 때에는 반드시 자신의 생각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鑑賞의 대상이 되는 것은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인 것이다. 형이하학적이란 물리(物理)의 세계나 화학(化學)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물리 화학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이 형이하학에 속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형이하학이란 물질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물리 화학의 특징은 건너뛸 수 없다는 것이다. 생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나로그(analog) 세계이기 때문이다. 感想의 세계는 그게 아니다. 感想의 세계는 디지털(digital) 세계이다. 디지털 세계에선 건너뛸 수 있고 생략할 수 있다. 感想은 사유의 세계이고 심리(心理)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생각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은 물리 화학의 세계를 초월(超越)한다. 그래서 생략할 수도 있고 확장(擴張)할 수도 있고 건너뛸 수도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우주공간(宇宙空間)을 누빌 수도 있고 수억겁의 시간(時間)을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다. 다분히 심리적이고 주관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鑑賞의 대상이 하드웨어(hardware)와 관련이 깊은 것이라면 感想의 대상은 소프트웨어(software)와 관련이 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의 세계는 하드웨어만 잘 해서 되는 세상이 아니다. 하드웨어 분야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잘 해야 한다. 소프트웨어를 다룰 수 있는 기계나 장비도 잘 만들어야 하지만 그 기계나 장비를 이용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내는 일이 더욱 소중하다. 트위터(twitter)나 페이스북(facebook) 같은 앱[application program]개발이 그 같은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생각을 키워줘야 한다. 스스로 생각해내는 힘을 키워줘야 한다. 따라가기만 해선 안 된다. 암송(暗誦)만해선 안 된다. 상상력(想像力)을 키워주고 창의력(創意力)을 북돋아줘야 한다. 왜? 라는 질문을 달고 살도록 도와줘야 한다.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합리적(合理的)으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리고 가치관(價値觀)을 심어줘야 한다.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가? 무엇 때문에 돈을 버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일러줘야 한다.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남을 짓밟고라도 출세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무엇을 위해 출세하는가를 일러줘야 한다. 鑑賞만 잘 할 것이 아니라 感想도 잘 하도록 일러줘야 한다.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鑑賞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 感想에 몰두하도록 도와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