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역사는 늘 보복 해 왔다. 진보가 절대 아닌 종북 세력들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이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통박만 재는 정치권을 바라보면서 국민들은 실망하고 답답해하고 있을 때 옛 역사를 돌이켜 봄으로서 가르침을 얻으려 한다.
1. 1963년 서독의 빌리 브란트 베를린시장은 동독과 자유왕래를 허용하는 통과 협정을 맺음으로 갑자기 유명인사가 될 수 있었다. 그 후 서독 총리가 돼선 1970년 대동독 포용정책의 결정판인 동방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결정하니 그러한 공로로 1971년 빌리 브란트는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브란트는 1974년 심복 부하직원이 동독의 간첩으로 드러나는 바람에 총리에서 물러나야 했고, 독일이 통일 전까지 서독에서 암약한 동독간첩과 정보원은 약 2~3만 명이었다고 한다. 국회의원, 정당간부, 대학교수, 총장, 언론인, 목사, 외교관, 장교, 과학자등이 공산주의 이념에 취하거나, 회유, 협박에 넘어가 간첩과 정보원 노릇을 했다. 그중에는 동독국적을 몰래 얻어 놓은 사람들도 있었다 한다. 독일은 동방정책과 더블어 사회전반에 좌파이념이 물결친 1970년대를 '붉은 10년'이라고 부른다.
2. 1973년 3월 미국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과 월맹의 레둑토가 프랑스 파리에서 베트남 전쟁을 끝낸다는 평화협정을 맺었다. 미국은 평화협정의 대가로 월맹에 40억 달러를 주어야 했다. 그리고 월남과는 방위조약을 맺었다. 월남이 월맹의 침공을 받을 때는 즉각 해군과 공군을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헨리 키신저는 이러한 공적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2년 후 월맹은 월남을 총 공격했다. 월남은 즉시 미국에 방위조약대로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굳게 믿었던 미군은 오지 않았다. 월남은 패망했다. 이것이 냉혹한 현 국가 간의 현실이다. 국방은 평소에 투철한 국가관을 국민에게 심어서 국민 과 정부가 굳게 뭉쳐 물샐틈없는 방위 태세를 갖춘 후에야 동맹국의 도움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월맹이 남침준비를 하는 동안 월남은 무었을 했는가? 월남은 민족,평화, 화해, 협력, 교류라는 평화협정 5개 원칙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현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슷하지 않은가. 월남을 낭만적 민족주의의 환상에 빠트려 내부에서 무너트린 것은 정부, 정치권, 재야, 대학, 종교 등의 각 단체에 침투한 간첩과 동조자들이었다. 그 수는 약 5만 여명 이였다고 한다. 우리의 현실이 그 당시의 월남과 같지 않기를 바란다. 독일과 베트남은 우리처럼 분단국가였고 치열한 체제경쟁을 벌여야 했고, 간첩들의 전쟁도 치열했다.
여기서 우리의 현실과 비교 분석해 보자,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과의 치열한 체제경쟁에서 우리가 크게 승리해 경제발전에서도 확실한 성공을 거뒀고, 많은 학생과 민주투사들의 희생으로 군사독재를 물리쳐 세계가 부러워하는 자유민주주의와 번영을 누리는 우리가, 백성을 굶겨죽이고 지구상에서 가장 나쁜정권,의식주도 해결 못하는 3대세습독재의 북한을 추종해야 할 어떠한 이유가 있단 말인가? 우리를 북한처럼 가난하고 자유가 없는 불행한 나라로 만들려는 세력은 악의 세력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악의 세력을 척결해야 할 책무가 현 이명박 정권에 주어졌다. 정치의 존재 이유가 국민을 편안하고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면 현 종북 세력은 존재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