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어 바깥 날씨를 살펴보니 상상한 것보다 훨씬 쌀쌀하고 추운 날씨여서 시내를 돌아다니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체크하기 위해 메모지를 꺼냈다.
고국에 다시 이민 온 셈이니 한 가지씩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우선 당장 의식주와 관계된 필요한 품목부터 장만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추위에 견디기 위한 옷과 잠자리에 필요한 시트와 이불커버 그리고 살림 그릇과 밑 반찬 등 몇 가지를 적고 보니, 거의 이십여년 전 이민을 떠나 호주에 도착해 사흘 만에 방을 얻자마자 말도 잘 안 통하는 남의 나라에서 두려운 듯한 표정의 6개의 까만 눈동자가 엄마, 아빠를 쳐다보는 어린아이들에게 “누가 문을 두드려도 절대 열어 주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고 밖으로 나와 아내와 함께 집을 얻을 때 보아 둔 동네 쇼핑센터를 돌아다니며 우선 먹고 살기 위한 품목부터 이것저것 구입해 방안에서 초조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해 허겁지겁 돌아오던 기억을 떠 올리면서 이제 노후를 한국에서 살아보려고 아내 먼저 돌아온 내가 다시 살림 장만을 하려고 생각하니 어쩐지 국제 떠돌이가 된 듯한 슬픈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곧 바로 마음을 고쳐 먹고 “그 때와는 달리 무엇이든지 말만하면 통하는 고국에 돌아와 조금만 돌아다녀도 사고 싶은 것 거의 다 살수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집 주인에게 “간단한 산림 살이를 사고 싶은데 이 주위 수퍼마켓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집에서 삼사분만 가면 재래시장이 있으니 사고 싶은 것 있으면 대충 다 구입할 수 있을 거에요”라고 대답을 하기에 “ 참 잘 됐네. 시장이 이 근처라니”라고 말하며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호주에서 출발할 때 아내 말처럼 “한국에 가면 시드니 같이 물건 하나 살래도 꼭 자동차 타고 쇼핑몰로 갈 것 없이 집에서 한 발짝만 나가며 사방이 가게인데 뭐가 걱정이야.
물건 값이 비싼 호주에서 가지고 나갈 것도 없고, 한국에 없는 양모이불이나 사가지고 가서 혼자 덮으면 되지. 이불커버나 시트도 훨씬 싸고 좋을 텐데”라고 말한데다 또 비행기에 가지고 갈 수 있는 일인당 수하물의 한도도 30kg이어서 평소에 입던 양복과 셔츠 그리고 양모이불 한 채만 들고 나왔기에 필요한 것은 모두 사야 했다.
밖에 나와 보니 사람들 모두 두터운 점퍼나 오버코트 등을 입고 다니고 있어서 겨울 양복만 덜렁 입고 나온 나 자신의 모양새가 이 날씨에 어울리지 않다고 느꼈으나, 호주에서 생각하기를 한국의 이월 날씨가 이렇게 추우리라고는 미쳐 생각을 못했고, 또 너무 오랜 외국 생활을 하다보니 한국 날씨를 완전히 까먹어서 “좀 쌀쌀한 봄 날씨 정도겠지”하고 대비를 안 해온 탓이었다. 그래서 “이월에 나오지 말고 한 달만 더 있다 나올 걸”하고 후회스런 생각도 들었지만 기왕 이렇게 된 바에야 두터운 점퍼라도 한 벌 사서 입고, 추위를 견디어야하지하고 마음 먹었다.
물건을 사기전에 오랜만에 재래 시장부터 구경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열십자 도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시장을 돌아보니 침구점, 기억도 생생한 쌍방울 대리점과 수퍼도 둘이나 있고 밑반찬, 생선, 채소가게들과 닭 튀김집, 정육점 등이 쭉 늘어서 있어서 구경하는 시장 풍경이 너무 정겨웠다. 한 바퀴 쭉둘러보고 나서 메모지를 꺼내 적어, 놓은 물건을 살때마다 나 자신도 모르게 모두 달러로 환전하여 계산하고 있는 나 자신을 깨닫고 픽 웃음이 나왔다.
월래 이민가면 어느 나라 사랑을 막론하고 자기 출신 국가의 돈 값어치와 비교하므로 그 버릇이 없어져야 정착이 된다고 말을 하는데 나도 한국돈과 달러를 비교하는 일이 없어져야 한국에 정착한 셈이 되리라. 물건을 사면서 느낀 점을 물건 값이 시드니와 비슷하거나 비쌌는데, 특히 쌀과 육 고기는 터무니없이 비싸 놀랬다. 슈퍼에 들러 진열된 쇠고기 사골에 붙어 있는 가격이 자그마치 사만원이 넘어서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갔었던 “우리 동네 정육점의 게리(Garry)한테 가면 양끝에 살점과 물렁뼈가 너덜너덜 붙은 걸 그냥 공짜로 얻어가지고 왔는데” 하면서 “이제 한국에서는 사골 사서 국물먹기는 영 글렀는 걸”하고 중얼거렸다.
시장에서 사온 반찬으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난 후, 오후에 날씨가 조금 풀려 침구류와 겉옷을 사려고 지리는 대충아는 동대문시장을 옛날과 같은지 구경도 할겸 둘러 봤더니, 가게 모양과 장사하는 모습은 변함이 없었으나 가격은 시드니 보다 싼 것은 거의 없어서 순간적으로 “처음 호주에 갔을때는 한 국의 물건 값이 훨씬 쌋는데 이젠는 반대로 시장 물건 값도 더 비싸니 앞으로 한국서 누후를 산다는 것이 상당히 힘이 들겠구나 고국에 돌아온 내가 잘 못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한국에 돌아온 일이 기쁘지만은 않았다.
# ‘프리즘으로 본 한국’은 ?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호주로 이민을 떠나 17년동안 생활한 후에 다시 고국에 돌아 온 박석호씨가 한국사회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것을 정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