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런 글을 올려 고인과 유족에게 결례되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죽음에 대해 자유롭지 않다. 예약된 죽음 앞에 죽음을 준비해야만 한다.
“생의 아름다운 마무리가 죽음이다.”라고 감히 규정하고 싶다. '불가에서 죽음은 본래 없다.'고 했다.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없다는 죽음이 엄연히 존재하니 말이다. 생사의 경계선 너머 죽음 앞에 숙연해지는 것은 죽음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에 관해 여러 편 글을 써왔다. ‘기형도 작품에 나타나는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의 미학’이란 논문 머리말에 죽음을 언급한 바도 있고 전자책 수필집 ‘씨앗냄새’ 작품('꽃마차' ‘죽음에 대하여’)에도 죽음을 이야기했다.
“기형도 시집을 펼칠 때마다 원망, 책망, 절망 그리고 죽음이 떠올라 마음이 착잡하다. 그의 유일한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시제에서부터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또한 '죽은 시인들의 사회'에 등장하는 불운의 시인들(김민부, 임홍재, 송유하, 김용직 김만옥, 이경록 박석수, 원희석)의 죽음이 떠오른다. 생은 죽음 앞에 자유롭지 못하고 염라대왕은 순번 없이 생을 데리고 간다. 어떤 종교에서는 죽음을 부활이라고도 하고, 영혼불멸이라고도 한다.
또한, 죽음은 문학의 주제로서 모든 문학인의 연구대상이기도 하다. 모든 생명 있는 것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다.’ 또한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젊은 천재시인 한 사람이 또 세상을 떴다. 염라대왕도 무심하시지, 순서대로 데리고 가면 어디가 아프냐? 그도 시대에 따라 눈치 살피며 데려가는데 서열을 파괴하다니 너무하시다. 나는 언제나 죽음에 대한 상념에 여기서 멈칫한다.”
“죽음이란 이승과 작별하고 영혼과 결혼하는 성스러움이다. 너저분한 상갓집 신발들의 울음소리와 웃음소리가 뒤섞인 작은 공간은 단순한 인간의 감정일 뿐, 좁은 공간은 온통 어둠이었다. 어둠을 뚫고 죽음들이 다가온다.”
“아들의 책상 위에 책 몇 권이 놓여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월호 스님의 웰다잉(Well-dying) 에세이다. 아들이 왜 죽음에 관한 책을 읽고 있을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들은 현재 혈액 항암치료를 받는 중이다. 중간 치료검사결과 암세포가 거의 박멸되었다는 희소식이다. 하지만 혹시 내가 알지 못하는 충격적인 말을 병원에서 들었나, 두려운가? 별별 생각이 다 난다. “아들은 자신의 마음을 짓기 위해 책을 읽고 있을 거야!” 부정과 긍정이 뒤엉킨 착잡함을 진정시키고 슬그머니 책을 집어 들고 서재로 와 책 한 권을 단번에 읽었다.
이 책은 죽음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죽음은 삶의 가장 큰 화두이기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죽음에 관한 시(詩)도 짓고, 수필도 몇 편 쓰고 죽음에 대한 생각에 골몰하곤 한다. 어떤 스님처럼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시작일 뿐! 아무도 죽지 않습니다. 다만, 옷을 갈아입을 뿐입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 것처럼, 저 새싹이 돋아나는 것처럼….” 각자에게 죽음을 던져놓았다. 생이 아름다운 이유는 언젠가는 연기처럼 소멸하기 때문이다.
우주의 이치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순리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인식해야만 한다. 생과 사는 분리가 아닌 하나이다. 한순간 들숨과 날숨의 간격에 불과하다. 목숨은 한 호흡 간에 달렸다. 숨 한 번 들이쉬었다가 내쉬지 못하면 이 세상과 이별하는 것이다. 즉 생과 사는 찰나의 간격이다. 그 간격조차도 착각일 수 있다. 그러기에 죽음은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죽음을 노래한 시인이 한 명 더 있다. 며칠 전(2012.3.12) 심장마비로 타계한 김충규 시인이다. 김충규 시인의 시는 대부분 무겁고 착잡하다. 그의 시집과 인터넷에 올라온 발표작 거의 모두가 그렇다. 시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어쩌면 시편들이 일편단심 애잔하게 무거울까, 생을 예감이라도 한 듯 죽음을 즐기려는 듯한, 강한 느낌에 우울하기까지 했다. 그의 시편들은 자신만의 개성이 녹아있는 감히 함부로 흉내 낼 수 없이 독특하다. 그래서 많은 시인은 그의 죽음에 대하여 안타까워하고 애도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참으로 시를 제대로 알고 있는 아까운 시인이다.
나는 김충규란 시인을 알게 된 계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시집 ‘달거리’(2010) 출판을 계기로 교열과 교정 때문에 많은 전화가 오갔다. 나도 융통성이 없을 정도로 원칙을 좋아하는 성격인데 김충규 시인도 원칙과 소신을 갖춘 사람이라 믿음이 갔다. 시집이 출간되고 작년(2011) 제1회 석파문학상 공모에 시집 ‘달거리’가 당선되어 시집을 출판해준 김충규 시인께 고마움을 전하고자 메일 한 통을 보냈다. 바쁘지 않으면 시상식에서 한번 뵙고 싶다고 했다. 장담은 못하겠지만, 그때 가봐야 알겠다는 답변이었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2011년 6월 시흥동에 있는 티뷰크사회복지재단(회장 석파 홍사옥/ 이사장 홍대선) 사옥에서 시상식이 있었다. 많은 문인과 함께한 시상식이 끝나고 뷔페 식사 때 김충규 시인을 잠깐 만났다. 처음에는 누군가 했다. 처음 뵙는 얼굴이고 해서 몰라 뵙다. 그때의 만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의 문학상을 축하하는 뜻에서 상패까지 준비해온 김충규 시인이었다. 뜻밖의 일이었기에 깜짝 놀랐다.
‘문학의 전당’ 출판사와 문예지 ‘시인시각’을 함께 운영하는 저력은 참 대단하다. 출판사의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면 두 가지를 다 한다는 것은 사명감과 열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출판시장의 어려운 여건을 참작하면 그 고충은 알만하다. 그의 열정만큼이나 그가 운영하는 출판사나 문예지는 점점 인지도가 높아지고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 후 ‘문학의 전당’ 카페 회원이 되고 가끔 글도 올리고 했다. 지난 일요일 오전 카페에 들렀다가 김충규 시인의 사망 소식에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교통사고인 줄 알았다.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가 남긴 적지 않은 문학의 업적은 세상에 날개를 달고 우리의 가슴에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이 분명할 것이다. 이제는 김충규 시인을 편안하게 보내드리고 치유할 때이다. 그의 깊은 상처에 시(詩) 싹이 돋아나고 시향이 흘러넘칠 때 그는 편안하게 영면할 것이다. 그가 멀리 떠나서 정말 아쉽다. 망자의 시 한 편 감상하면서 그의 죽음을 다시 한 번 애도한다.
아무 망설임 없이
살얼음 같은 어둠을 쪼개며 나비가 나아왔다 그 틈새로 딱딱해지지 않은 액체의 어둠이 주르르 쏟아졌다 날개가 젖어서 나비의 비행이 기울었다 관을 열고 온몸이 얼룩진 시신이 나와 나비 쪽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아무 망설임 없이 관 속으로 나비가 들어갔다 펄렁임을 멎고 나비가 누워 눈을 감았다 쪼개졌던 어둠이 봉합되는 소리 미세하게 허공을 긋고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스스로 관이 닫히는 소리 시신이 관을 짊어지고 숲으로 사라졌다 질척한 흙길에 발자국 하나 남지 않고 고체가 된 어둠이 숲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