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현대인들은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국가나 민족을 운운하며 정치하는 자들의 행태를 보면 더욱 가관이다. 국민들의 손과 발이 되겠다며 악수를 청하고 절을 하던 자들이 국민들의 등 뒤에서 시커먼 거래를 일삼고 있는 것을 보면 정치란 한낱 속임수나 저질 코미디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회의감에 빠져들고 만다.
현 정권이 주장하던 깨끗한 정치는 대통령 측근들이 줄줄이 이권개입이나 뇌물 수수에 걸려 쇠고랑을 차고 있다. 한편 도덕적 우위를 자랑하던 진보 측도 비례대표 경선에서 선거부정이 드러나면서 진보 정당의 최대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이 모든 부정적 사태는 나쁜 만남이나 마주침에 비롯되고 있으니 이를 극복하는 비법은 좋은 만남과 마주침이지 않겠는가.
“솔아 솔아 푸른 솔아”를 쓴 박영근 시인은 「김미순전」이란 서사적 장시를 쓴 바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김미순은 공단의 노조를 파괴하려고 음모를 꾸미는 권력의 하수인 권도가의 푸락치가 되어 노조 정보를 빼내어 바치고 대신 돈과 향락을 누리려는 여공이다. 김미순은 노조원들을 끔찍하게 보살펴주던 선배 노조지도자 왈순마저 배신하고 철장신세를 지게 만들고 만다. 그러나 그녀는 나쁜 만남과 마주침을 통해 양심을 저버리고 자신의 배를 채우고 말초신경을 만족시키는 것이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양심의 소리에 마음이 움직여 왈순을 만나러 구치소에 면회를 간 미순은 왈순과의 좋은 마주침에서 오는 정화작용을 받을 수 있다. 절대양심의 상징인 왈순 앞에서 미순은 대부분의 비극의 주인공들이 육체적 파멸과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비극적 결함과 판단의 오류를 깨닫고 일종의 각성에 도달하듯이 참회를 하며 고백한다. 면회를 온 동지들에게 차마 조합소식을 묻지 못하고 글썽이는 눈물, 투쟁의 무용담 속에 떠오르는 이들에게 모두 우애의 편지를 쓰는 애틋한 모습, 답장이 끊긴 고독 속에 파묻힌 비극적 이미지, “슬프면 눈물 보따리/기쁘면 웃음보따리/늘 밥주걱이 헤픈 인정 보따리”의 주인공 왈순의 모성성과 인간미가 그득한 모습에서 오는 진정성이 그녀를 감동시켰던 것이다.
주인공 김미순은 정서의 변화의 과정에서 마치 가슴 깊이 숨겨두었던 양심의 물줄기를 퍼올리 듯이 고해의 제의에 돌입한다. 시인은 왈순의 영웅적 모습 앞에서 정신적으로 미약하기 짝이 없었던 미순을 한 마리 붉은 새가 되어 허공을 치솟아 오르는 반전의 주인공으로 표현한다. 그는 “핏속에 눈송이들 새 되어 / 붉은 새 되어 / 그 새 따라 치솟는다”라고 노래한다. 시인은 그녀의 영적인 반전과 그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묘사함으로써 그녀의 성공적인 정신적 성숙을 암시하고자 한다.
미순의 정신적 도약은 들뢰즈의 이론대로 전반부의 권력과의 나쁜 마주침에 의해서 “전형적인 슬픔의 체제를 세움으로써 권력을 확보”하는 권력자 같은 “맞지 않는 관계들과 마주치는 것을 최대한 피하기”를 시도함과 동시에 왈순과 같은 “맞는 관계들과는 최대한 합성하기”를 추구함으로써 육체적 고통을 극복하고 “자유와 이성의 결정 지점”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비극에서 깨달음이나 영적 반전은 고통이나 제물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박영근은 이 시의 반전이후에 위기에 따른 절정을 설정함으로써 극적 긴장감을 최대한 고취시키는 전략을 구사한다. 김미순이 프락치 상태에서 자유를 획득하는 모습은 부정한 권력가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고통과 희생은 불가피하다. 정보기관원은 왈순의 영향으로 흔들렸던 미순의 과오를 용서하고 회유를 하지만 영적 반전을 이룬 그녀가 완강한 것을 발견하고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녀에게 남아있는 것은 배신에 대한 가차 없는 징벌로 김미순의 파괴적 고통으로 치닫고 마는 것이다.
기관원이 김미순에게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가해도 왈순을 통해서 삶의 진실을 깨달은 그녀는 초인적인 위대성을 보여준다. 속물적인 권도가의 시각으로는 김미순의 영적 성숙을 이해할 수 없다. 무엇이 인간을 이토록 판이하게 변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파멸의 직전에 와있는 미순이지만 정신만은 살아서 “이미 육신에 죽음의 냄새가 풀풀 나는데/광채 하나가 번쩍 타는 곳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은 분명 김미순의 변화란 일시적이거나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고통을 통해서 진실은 깨달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정동임을 알려준다.
마지막 순간 정보기관원은 김미순의 진면목을 깨닫는다. 그녀는 이제 돈으로 회유할 수도 없고 폭력으로 협박을 할 수 없으며 그가 근접하기 어려운 위대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미순이 권력의 음모에 대한 정보를 너무 많이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조직의 보호를 위해서 제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미순은 자신의 생명이 경각에 달려있음을 깨닫는데 이에 대한 시적 이미지는 “부리도 꽁지도 없는 새 한 마리 / 애써 날다 날다 자꾸만 떨어져 / 눈밭에 우는 모습”으로 연상된다. 그러나 그녀는 쓰러지는 육신에 대한 미련을 가지지 않고 “이제 내 몸뚱아리 빈 껍데기일 뿐 / 피멍 시퍼런 이 알몸에 / 모가지에 너희가 명주띠를 걸어도 / 허나 빈 껍데기일 뿐”이라는 초월적인 인식에 이르고 있다.
김미순의 최후는 영웅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어쩌면 비극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배신에 대한 참회와 속물성에 대한 처절한 저항과 극복을 통해서 어릴 적 그녀의 어머니가 염원했던 순결성과 포용적 사랑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 깨달음의 세계에서는 구속이나 굴종이 없으며, 영혼을 더럽히는 영합이나 회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은 꿈에도 그리던 자유와 절대적 미, 우정과 사랑이 충만한 낙원이다.
시인은 치열한 각성을 통해 다다른 낙원을 우러르며 미순의 목소리를 빌어 “굴종의 운명을 끊어 / 자유로운 바람이 되리 / 아아 허공에 저렇게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들 / 하나둘 춤추는 벗들의 얼굴 / 나를 부르는 왈순 언니 목소리/눈물도 고운 아아 우리 어머니”라고 노래한다. 그녀는 나쁜 마주침으로 오염되었던 영혼을 어머니나 왈순과의 좋은 마주침과 만남을 통해 치유할 수 있다. 그녀는 비록 육체적으로는 권력의 희생물로 전락하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오염된 자본주의의 부정적 요소를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