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한내개울 마냥 평온하다. 많은 철새들 살찌워 보내고 몇 쌍의 오리가족과 함께 텃 새 들과 어울린다. 그들은 개울의 주인인냥 오히려 사람들을 맞아주니 귀엽고 고맙기 짝이 없다. 일석이조라는 고사성어를 다른 말로 대체하고 우리말 사전에서 쏘옥 빼 버리면 좋겠다. 그들에겐 너무 끔찍하고 잔인한 말 아닌가. 흥겨워 걷노라면 어림잡아 예일곱 마리의 잉어떼 행진에 개울이 일렁인다. 연비어약이란 옛 말처럼 활기찬 생태계로 복원된 것이다. 잉어들에 일러 주노니 멋쩍게 서 있는 두루미는 업신여기더라도 태공들의 낚시밥은 탐내지 말아라.
수 삼년 전만해도 죽음의 악취 뿐 이었던 한내였지만 오랜 시련 끝에 새들과 물고기의 축복으로 민초에게 돌아왔다. 한내천 맑아서 포천천을 일깨우고 영평천과 합세하여 한탄강에 이른다. 생명줄 한강도 새로 흘렀고 더 큰 시련 이겨낸 그득한 사대 강물은 민초를 적셔주어 축복이 넘친다.
이번에도 장학금을 기탁하신 분은 평생을 시련속에서 살아오신 고령의 위안부 피해자이시니 민초의 눈시울을 더욱 뜨겁게 한다. 반면 기득권층 비리는 들출수록 불어난다. 그들은 장학금 2천만 원의 몇 십 백배의 거금에도 통 크고 태연하다. 구속 되면서도 자신이 지금 시련 중이라는 발언은 민초로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국민을 위한 정의의 뇌물이란 있을 수 없기에 시련이란 말 어울리지 않는다. 혹시 고위층에서 통하는 연고의 말 아닐는지… 그런 시련의 정계라면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기원한다.